CMEK, 정신과 싸움 거는 골 아픈 사람들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의 가교, 한국현대음악상블(CMEK)

등록 2006.12.29 18:13수정 2006.12.2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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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MEK는 국악기를 활용한 한국음악의 영역확대를 위해 98년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문공연단체 집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3년간 작곡가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CMEK는 국악기를 활용한 한국음악의 영역확대를 위해 98년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문공연단체 집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3년간 작곡가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 김기


어쩌다 한두 마디 익숙한 선율이 나타나면 괜히 반가워지는 음악이 있다. 현대음악을 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 현대음악은 대관절 뭘 말하는 것일까? 우선 현대음악은 우리 귀에 익숙한 조성음악과 반대로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현대음악이 비조성음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성의 구조를 가지면서도 현대음악에 속하는 음악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적인 설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 될 것이다. 길지 않지만 현대음악을 듣고 또 작곡가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정리해본다면 현대음악은 감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신 혹은 하다못해 지적인 싸움을 거는 음악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BRI@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현대음악은 상식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이다. 예컨데 화음의 구조라던가, 작곡에 있어서 고전적인 방법 등에 대해서 개념을 넓히는데 이것이 해체라는 의미를 동반하는 까닭에 비조성이 현대음악인 듯한 오해도 수반한다. 그러나 그것도 현대음악가들의 범주 내에서의 현상일 뿐 그들의 관심사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현대음악의 경계는 훨씬 더 넓다.

현대음악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그래서 당연히 관심이 없고 그만큼 아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나 막상 눈을 뜨고 찾아보면 생각보다 현대음악 연주가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물론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통칭하는 음악들의 연주회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상상 밖으로 현대음악은 우리 주변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

a 왼쪽 CMEK 동인 피리주자 이향희가 양금을 연주하고 뒷쪽 타악 김웅식. 오른쪽 사진은 CMEK 대표 가야금연주자 이지영

왼쪽 CMEK 동인 피리주자 이향희가 양금을 연주하고 뒷쪽 타악 김웅식. 오른쪽 사진은 CMEK 대표 가야금연주자 이지영 ⓒ 김기

세종체임버 홀에서 지난 11월 26일부터 3주간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음악회를 연 한국현대음악앙상블(대표 이지영)은 매우 독특한 단체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부터 시행한 ‘공연예술단체 집중육성지원 사업’ 전통예술분야에 선정되어 3년의 중기 계획을 가지고 음악회를 시작한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현대음악은 서양음악인데 전통예술분야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현대음악앙상블 아홉 명의 구성을 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표인 이지영을 비롯해 다섯 명이 국악연주자이고 나머지 네 명이 서양악기 연주자이다.

단지 수적인 부분만 놓고 그들의 정체성을 논하는 것은 대단히 어설픈 시도이다. 인적 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시대의 새로운 한국음악을 창조하고 나아가 세계의 음악과 교류하고자 창단’되었기 때문이다.


1998년에 독일 베를린 세계문화회관에서 개최된 호랑이의 해 기념 '동시대의 한국 현대음악 연주회'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한 한국현대음악앙상블은 1999년 부암아트홀의 '국악기로 듣는 현대음악' 콘서트를 시작으로 2000년 통영현대음악제와 판아트홀 초청공연 그리고 직관음악을 주제로 한 지방 순회공연을 개최하였으며 2001년 통영현대음악제와 21세기악회 초청공연, 2003년 단독 콘서트 등 여러 현대음악공연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a  12월 3일 공연 전 리허설 중인 한국현대음악앙상블(CMEK)

12월 3일 공연 전 리허설 중인 한국현대음악앙상블(CMEK) ⓒ 김기

한국현대음악앙상블(아래 CMEK)는 올 중반 공연예술단체 집중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준비한 것이 <작곡가 시리즈>이다. 올해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들을 선정하여 ‘6인의 한국작곡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연속 3주간의 이색적인 음악회를 열었다.


두 명의 작곡가가 쓴 작품을 하루에 1,2부로 나누어 연주를 하였다. 듣기에도 어렵지만 현대음악은 연주하기도 상당히 까다롭다. 그것을 3주 연속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훨씬 더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한 작곡가의 곡을 대체로 네 곡씩 연주하다 보니 매회 연주 시간은 2시간을 넘겼다.

첫날인 11월 26일에는 강준일, 신수정, 12월 3일에는 백병동, 윤혜진, 마지막 날인 12월 10일에는 구본우, 김대성 등 총 여섯 명의 작곡가가 쓴 초연곡 열두 곡을 포함해 총 스물한 곡을 연주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청중들이 음악회를 찾았고, 3주간 큰 변화없이 객석을 채웠다. 또한 일반적인 뒷풀이는 없었지만 당일 연주에 대한 토론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좋다 나쁘다의 평도 없지 않았을 것이나 그것도 잠시 결국은 한국 현대음악이 가진 문제점 더 나아가 국악과 현대음악에 대한 열띤 토론들이 이어졌다. 여느 현대음악팀과 달리 CMEK가 주는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정체성'에 대한 화두이다.

물론 일반 현대음악에 있어서도 동일한 주제를 논할 수 있지만, 국악기가 필수적으로 편성되는 CMEK의 경우 더 분명하게 한국 현대음악에 있어서의 주체와 정체에 대한 토론을 부추기게 마련이다. 현대음악이 보통 듣는 동안도 그렇지만 그 후에 토론을 야기하는 까닭은 그 음악 자체가 정신과 싸움을 거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감성보다는 지적 접근이 빈번한 것이 현대음악이다.

a CMEK

CMEK ⓒ 김기


올 겨울의 초입을 뜨거운 토론으로 점화시킨 CMEk의 3주간 연주에는 한국 현대음악의 거목 백병동부터 30세의 신수정까지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곡가들이 선정되었다. 또한 한 곡의 길이가 무려 40분이나 되는 곡도 등장했다. CMEK가 이렇게 파격적인 음악회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년간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2006년을 마감할 시기에 새로운 이슈를 생산케 하였다.

현대음악은 분명 대중적이지 못한 음악이다. 3주 연속 연주를 모두 들었지만, 그것들을 흩어놓고 작곡가를 알아맞히라고 주문하면 솔직히 반도 자신이 없다. 그리고 총 여섯 시간이 넘는 감상이 감성적으로 모차르트나 바흐의 한 곡보다 감동이 더했다고는 양심적으로 말할 수 없다. 솔직히 감동은 없었다. 그러나 짧고 긴 연주를 들으면서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던 스스로의 의문 때문에 다른 어떤 연주보다 뇌의 활동은 분주했다.

정서적 감동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CMEK의 연주를 듣는 일은 모처럼 대단히 순수한 지적 탐닉에 빠지게 해주었으니 그것을 지적 감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악기의 영역이 그들의 연주만큼 조금 더 넓어지게 된 것은 놓칠 수 없는 공공의 성과라 할 수 있다.

CMEK는 내년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곡가들에게 위촉한 곡을 연주하고, 3년 계획의 마지막인 2008년에는 외국 작곡가들에게 한국적 주제를 맡길 예정이다. 그럼으로써 또 다시 국악기의 경계에 꽂힌 깃발을 몇 발짝 더 바깥으로 옮겨서 꼽게 될 것이다. 또한 세 번의 연주 모두 실황 녹음에 큰 공을 들인 것을 보면 조만간 음반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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