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난생처음, 비행기도 처음?

촌아줌마가 보고 싶은 건 뒷골목에 있었다

등록 2006.12.30 19:41수정 2006.12.3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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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가 불안정하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벨트를 다시 확인하시고 착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가 이따금씩 흔들렸다. 몸이 흔들리자 나는 불안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유리창엔 물방울이 맺혔다. 사람들은 태연하고 조용했다. '괜찮은 건가?' 나는 두리번거리며 허리에 꼭 맨 벨트를 슬쩍 만져봤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 이를 즈음 기압차이로 내 귓속은 온통 시끌벅적, 전쟁이 났다. 먹먹하게 꽉 막혔다 싶으면 뻥 뚫리기를 반복했다. 빈 페트병이 자동차바퀴에 짓눌리는 소리, 빠작빠작 살얼음 깨지는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여기 정말 일본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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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안의 눈을 감고 있는 젊은이, 아예 고개를 푹 숙인 사람도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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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었던 거리의 포장마차 ⓒ 한미숙

신주쿠 뉴시티호텔까지 가는 동안 외국에 왔다는 특별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은 소곤대며 얘기를 나누고, 눈을 감고 조는 듯 자는 듯한 풍경도 비슷했다. 다만, 만화책을 열심히 보는 어른들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거리는 골목만 돌아서면 서울역 뒤쪽 서부역일 것 같기도 하고, 종로의 낙원동 악기상가 주변의 순대를 파는 가게가 나올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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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아쉽게 지나쳤던 공원의 벼룩시장입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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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라는 글이 보이세요? 시간을 돌려 우리나라 소읍에 와 있는 듯했습니다 ⓒ 한미숙

비행기를 2시간쯤 타고 왔을 뿐인데 일본의 날씨는 우리의 한겨울과 달리 가을의 한 가운데 있었다. 노란은행잎이 깔린 바닥을 걷다가 공원길의 녹색이 우거진 이파리를 보면서 우리와 계절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늦은 저녁 호텔로 들어가는 길 한 구석에는 종이박스로 칸막이를 친 노숙자들의 잠자리가 놓여있었다. 한 노숙자의 머리맡에는 한뎃잠을 위로하듯 트랜지스터라디오의 빨간 불빛이 껌벅거렸다.

방 배정을 받고 짐을 푼 다음, 저녁을 먹으러 동경시내를 걸을 때는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은 장날을 맞은 듯 북적거렸다.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한층 우리와 닮은 모습들이 보였다.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우리동네에서도 볼 수 없는 '전당포'라는 글이 전봇대 위에 붙어 있었고 떡볶이를 팔기도 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다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밥을 먹었다. 호텔 맞은편 공원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거리의 어딜 가도 까마귀가 보였다. 두어 발짝 떨어져 직접 보기도 처음이었다. 음산한 울음소리에 사람마저 뜸했다면 까치보다 두 배나 더 큰 까마귀는 저승사자가 보낸 심부름꾼으로 보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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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먹고 사는 곳엔 빠지지 않는 쓰레기입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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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려고 내려가는 길목에 누가 얌체짓을 했군요 ⓒ 한미숙

집과 동네주변을 벗어나면 공간감각이 마비될 정도여서 같이 다니는 시민기자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북적거리는 지하도 한켠에서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젊은 부부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아기는 잠들었고 남편은 사람들로부터 아내를 감싸 안듯 보살폈다. 내가 사진을 찍자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웃었다. 아기 아빠도 나를 보고 그냥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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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아빠의 보살핌이 느껴졌던 따뜻한 풍경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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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인 듯한 할아버지를 황궁 근처 공원에서 만났습니다.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었던 모습이었습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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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비는 아사쿠사 풍물거리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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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보자 고향친구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 한미숙

티케팅 순서를 잠깐 놓쳐서 나와 다른 시민기자들과의 자리가 벌어졌다. 나는 혼자 뚝 떨어져 낯선 일본 남자와 같이 앉았다. 창가에 둘이 앉는 자리였다. 승무원이 다니면서 밥을 주는데, 내 옆 사람은 밥을 받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자니 옆 사람이 신경 쓰였다.

밥을 먹을 때마다 김치가 없어서 허전했던 나는 기내식으로 나온 김치를 으적으적 씹었다. 누가 뭐라 해도 김치는 먹어야 했다. 밥을 다 먹고도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몸이 거북했다. 허리는 밸트로 '안전'하게 매었지만 뱃속이 전혀 편안치 않았다.

도착하기 30분전, 귓속에서는 다시 공사장에서 나는 온갖 소음이 들렸다.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귓속이 까마득하다가 뚫릴 때는 아릿하고 아팠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도 이럴까. 나는 아픈 귀를 손으로 감쌌다.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아이는 뭐라고 소리쳤다.

"귀가 아파, 귀가 울려, 귀가 울린다구..."

떼쓰는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는 비행기가 땅에 닿을 때까지 계속 됐다. 귀가 아파서 울고 있는 아이가 내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처럼 그렇게 아팠는데. 귀가 다시 뻥 뚫리자 울음소리는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들렸다. 울던 3살 정도의 여자아이 얼굴은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룻밤을 친정에서 보내고 다음날 대전 집으로 달려왔다. 식구들은 모두 나가고 없다. 문을 열자 우리집 냄새가 확 풍긴다. 주방 한 구석에 퀴퀴한 음식물 쓰레기가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좋다. 거실 벽에 걸린 사진 속의 식구들 얼굴이 반갑고 사랑스럽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고 한숨 돌리는데 작은애가 들어온다. 식구들 중에 처음으로 나라 밖 여행을 한 엄마에게 숨차게도 물어온다. 거기에선 뭘 먹었는지, 어디를 가고 뭘 봤는지, 우리나라와는 뭐가 다른지... 한참을 듣던 녀석이 입이 삐죽 나오더니 불만스런 오리주둥이가 되어 묻는다.

"나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잔데 왜 엄마만 갔어?"

덧붙이는 글 | (나만의 특종) 사람사는 곳은 특별히 더할 것도 덜한 것도 없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올 한해 바쁘게 살아온 보상으로 일본여행의 기회가 온 것이려니 생각한다. 책으로만, 말로만 보고 듣던 가깝고도 먼 일본. 짧은 일정이었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로 촌아줌마의 ‘나만의 특종’을 정리했다.

덧붙이는 글 (나만의 특종) 사람사는 곳은 특별히 더할 것도 덜한 것도 없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올 한해 바쁘게 살아온 보상으로 일본여행의 기회가 온 것이려니 생각한다. 책으로만, 말로만 보고 듣던 가깝고도 먼 일본. 짧은 일정이었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로 촌아줌마의 ‘나만의 특종’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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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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