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2006년

좌충우돌 웹진 기자... 형편없는 글 솜씨 한숨은 푹푹

등록 2006.12.31 10:45수정 2007.01.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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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사, 첫 회의, 웹진에 내 기사가 오르던 첫 날…. '처음'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애틋한 추억으로 마음을 흔든다. 유난히 어려서부터 글쓰기엔 취미가 없던 나였다. 어쩌면 대학에 입학에서 학교 인터넷 신문 웹진에 들어온 것은 내 생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내가 처음 웹진에 들어왔을 때의 설렘과 각오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없이 높아 보이기만한 선배들 앞에서 내가 웹진 기자로 활동하겠다며 면접을 보던 날. 이제껏 글이라고는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잔뜩 겁을 주는 편집장과 선배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잘 할 수 있다고 다짐하고, 그렇게 '왕보영 수습기자'의 좌충우돌 웹진 활동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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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webzine@say ⓒ webzine@say 캡쳐

학교 기자에 대한 로망은 한 달의 교육기간이 끝나는 그 순간 철저히 무너져 버렸다. 텅 빈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려니 뻔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이야깃거리들과 식상한 아이템만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매주 기획회의가 있는 공포의 목요일, 그것도 6시만 되면 밀려오는 긴장감과 초조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매일 밤 12시까지 수정 보는 건 기본이요, 한없이 지친 몸과 밀려오는 피곤함은 초월한 지 이미 오래다. 거의 미치다시피 춤추며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풀었던 웹진 기자들.

TV에 나오는 웬만한 개그맨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서로 온갖 패러디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배꼽잡고 웃었다. 그러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서러워지면 금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기 일쑤였다.

수십 개의 기사가 올라가기까지 전쟁 같은 마감회의에서 나보다 더 힘들었을 선배들을 생각하면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였으리라. 형편없는 글 솜씨에 대해 매일 늘어가는 건 한숨과 걱정뿐이었다.

@BRI@선배들이 휴학과 졸업준비로 웹진을 다 떠나가던 2006년 1월. 그해 1월은 유난히 춥고 허전한 겨울이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던 선배들이 나에게 '편집장'이란 과분한 자리를 맡기고 떠났다. 그렇게 걱정 반, 자신감 반으로 시작한 편집장이라는 자리. 수습기자의 명찰을 떼고 정 기자, 팀장을 거쳐 편집장이 되기까지 매 순간이 그립고 아쉽지만, 한편으론 웹진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기는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조금 더 많은 기사를 줬다고, 쓰기 힘든 기사거리를 줬다며 짜증을 내던 내가 이제 후배들한테 기사거리를 내 주고 힘들다고 보채는 아이들에게 이것밖에 못하냐고 되레 핀잔을 주기까지 한다. 그 순간순간을 다 겪어 온 나는 아이들이 힘든 만큼 더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힘든 건 오히려 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사 좀 빼줄까?'라는 말 대신 '왜 못해, 이것밖에 못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다 큰 어른인 척 행동하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지만 말이다.

2006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문득,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언제였을까? 내가 수습기자의 이름으로 마지막 기사가 올랐을 때는. 마지막으로 팀장 언니, 오빠한테 수정을 받았을 때는. 늘 주목받는 첫 순간에 밀려 잊혀 버린 소중한 마지막 순간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더 좋은 기사로 발전한 모습을 선배들한테 자랑스럽게 보여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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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무서웠던 회의시간 ⓒ 왕보영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찾아올 일들을 여유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고 다그쳤던 그 순간순간들이 후회스럽다. 정 기자는 언제 되는 건지, 팀장은 언제 되는 건지, 팀장 되면 기사가 좀 적으려나?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마지막의 소중함을 모른 체 늘 '처음'에 대한 설렘만 기다리고 재촉한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이제야 깨달았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수습기자부터 편집장이 되기까지, 즉 내가 웹진에 몸담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마지막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이제부터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워져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늘 처음 시작할 때마다 쓰는 '처음'에 대한 진부하거나 또는 지루한 이야기보다 '마지막'에 대한 소중함이 더 크다는 것을 그 어느 해보다 크게 느끼는 한해였다.

또한 최고의 위치에 자리하면서 책임감과 인내심까지 배운 2006년이다. 때론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다 모른 척 하고 현실을 도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 많은 추억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에 차마 버릴 수 없는 'webzine@say'였다.

곧 새로운 2007년을 맞이한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하겠지만 나는 잠시나마 그런 설렘은 뒤로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2006년의 소중한 추억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새해에는 더욱 힘차게 도약할 webzine@say를 만들어가는 멋진 편집장이 되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나만의 특종

덧붙이는 글 2006년 나만의 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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