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 혼자만 보다가는 죄 될 것 같아서

눈 내린 다음날 찾은 무등산 서석대의 설경

등록 2007.01.01 11:18수정 2007.01.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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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서석대 설경, 흰눈꽃과 푸른 하늘, 푸른 하늘에 돋아난 반달, 모두가 완벽한 조화였답니다. ⓒ 서종규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쉬웠습니다. 아니 혼자만 보다가는 죄 될 것 같았습니다. 흰눈꽃과 푸른 하늘, 푸른 하늘에 돋아난 반달, 모두가 완벽한 조화였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을 혼자만 보다가는 진짜 벌 받을 것 같았다니까요.

원래는 그냥 무등산에 올랐습니다. 무등산 풍광에 관한 기사를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올랐던 것이지요. 한 달 전에도 무등산 첫눈의 기사를 올렸거든요. 그래서 기사를 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름다운 설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 있죠? 그래도 처음에는 혼자만 감상하면서 오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산행에 의례 준비해 간 카메라를 도무지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환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설경이 눈앞에 펼쳐졌다면, 그 아름다운 설경을 눈으로만 감상할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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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의 설경, 이걸 혼자만 보고 그대로 두었다면 죄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 서종규

12월 29일(금)에 원래는 학교에 나가려고 준비했답니다. 방학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조금 있었거든요. 그래서 점심 무렵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하늘이 너무 맑은 거 있죠?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 말예요.

28일 호남지방에 많은 눈이 내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답니다. 광주에서 거의 10cm 정도로 쌓였으니까요. 하루 종일 내린 눈으로 빙판길까지 되었으니 집에서 점심까지 기다렸다가 학교로 출발한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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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이 이렇게 순백의 물결 속에 가득하다면 ⓒ 서종규

나무 위의 하얀 눈 너머로 비치는 푸른 하늘이 너무나 맑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지요. 차를 멈추었답니다. 무등산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지요. 어림짐작으로 무등산 쪽 하늘은 더 푸른 것 같았고요. 하얀 설경과 푸른 하늘의 조화라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병이 다시 도진 것이지요. 차를 다시 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출발했지요. 설경을 빨리 보고 싶어서 원효사가 있는 무등산 산장행 버스를 기다렸답니다. 아뿔싸, 무등산 높이 1187m를 따 붙인 시내버스가 왔는데, 눈이 많이 와서 무등산 산장에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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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지요. ⓒ 서종규

그래서 지산유원지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1시에 산행을 시작하였답니다. 혼자 하는 산행이어서 조금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2시에 바람재에 도착했고, 3시에 동화사터(809m)까지 올랐답니다.

그런데 조금 실망했습니다. 동화사터까지 가는 동안에 기대했던 눈은 그리 많이 쌓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내에 내렸던 눈보라에 비하면 무등산은 더 많이 왔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산된 것이지요. 날씨도 갑자기 풀려서 길의 눈이 녹아가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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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일대는 모두 하얗게 옷을 입은 나뭇가지들의 환상이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 서종규

동화사터에서 중봉까지 나무들에 눈이 붙어 있었답니다. 그렇지만 저 멀리 무등산 서석대와 천왕봉의 모습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습니다.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하얀 봉우리 위 하늘은 너무나 파랬습니다. 그 파란 하늘 위에 흰 달이 떠오르고 있었고요. 오후 3시경에 떠오른 달, 하얀 눈과 파란 하늘과 한 점 흰 달의 모습이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답니다.

중봉을 지나 군부대 복원 터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서석대가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본격적으로 서석대로 오르는 길에 접어들자 나무에 온통 하얗게 눈이 붙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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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의 돌기둥들도 하얀 나뭇가지들로 둘러싸인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었답니다. ⓒ 서종규

친구들이 말했던 흰사슴의 하얀 뿔처럼 생긴 나뭇가지들은 파란 하늘에 하얀 뿔들을 드리우고 있었답니다. 바람이라도 한 점 불어오면 그 흰뿔들을 푸른 하늘에 마구 휘두르기도 하였답니다. 그런데 무등산 천왕봉과 서석대 일대는 모두 하얗게 옷을 입은 나뭇가지들로 환상을 연출하고 있었지요.

햇살을 받은 하얀 가지들은 더욱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었답니다. 아, 세상이 이렇게 순백의 물결 속에 가득하다면, 그리고 푸른 하늘이 감싸고 있다면, 그 푸른 하늘에 반달님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면, 아마 천사들이 내려와 흰 가지마다 튀는 햇살을 더 많이 묶어 놓았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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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무등산 천왕봉에서 서석대로 흐르는 능선엔 온통 하얀 눈이 뒤덮여 있었으니까요. ⓒ 서종규

오후 4시, 늘 육중하게 다가온 서석대의 돌기둥들도 하얀 나뭇가지들로 둘러싸인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었답니다. 햇살을 받고 더욱 하얗게 빛을 발하는 나뭇가지들과 어우러진 돌기둥 하나하나가 꿈의 궁전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지요.

서석대는 원래 그 어깨 위로 햇살을 내리꽂아 서석(瑞石)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상서로운 서(瑞) 자로 상서로운 빛이 쏟아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 상서로운 빛이 내리쪼이는 고을이 바로 광주(光州)지요. 빛 광(光) 자와 고을 주(州) 자로 '빛고을'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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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받은 하얀 가지들은 더욱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었답니다. ⓒ 서종규

그런데 오후 4시경의 서석대는 빛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받고 있었다니까요. 하얀 나뭇가지들에 비치는 빛으로 하얀 눈꽃들의 풍광이 드러나고 있었지요. 무등산 서석대의 설경이 바로 선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설경을 혼자만 보고 그대로 두었다면 죄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어쩌면 조그마한 사진 속에 그 설경을 가두어버리는 것도 죄가 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수백 장 찍어도 아쉬운 설경을 단 몇 장만으로 표현하려니 더욱 기막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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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서석대, 햇살을 받고 더욱 하얗게 빛을 발하는 나뭇가지들과 어우러진 돌기둥 하나하나가 꿈의 궁전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지요. ⓒ 서종규

설경에 젖어 추운 줄도 모르고 있었지요. 어느 새 해가 광주 시내를 건너 산 너머로 숨으려고 하고 있었답니다. 2006년도 같이 저물고 새해가 되어 갑니다. 새해에는 저 푸른 하늘처럼 맑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저 하얀 눈처럼 깨끗한 세상이 되구요. 그 정신을 늘 상서로운 빛으로 쏟아내고 있는 서석대처럼요.

또 두 시간 이상 눈길을 헤치고 내려가야만 하다니요. 밤길이겠지만요. 항상 산이 주는 절경에 빠져서 헤매다가 결국은 야간 산행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니까요. 그래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요. 오늘 따라 서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주 시내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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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주 시내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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