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동자들의 끝나지 않는 노래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를 뒤돌아 보다

등록 2007.01.02 18:42수정 2007.01.0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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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옥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났다."

저 한마디가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 노동자의 피와 땀을 착취해 성립한 자본주의 사회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봉건주의와 절대주의, 군국주의가 붕괴되면서 토지와 인신적 예속에서 해방된 대다수 무산층들이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파는 임금 노예로 전락한 것은 자본주의의 생태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다.

아마도 자본주의 체제가 변화되지 않는 한 영원히 나와 같은 노동자들과 자본가와의 대립과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럽과 러시아의 봉건 체제 붕괴로 농노와 농민들은 신흥 산업도시로 유입되어 노동력을 파는 도시노동자로 전락되었다.

그들의 노동 환경은 극도로 열악했으며 그것은 19세기 미국, 일제 하 조선, 그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악조건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단행하기로 결의하고 횃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우리도 이제 노동일은 않을 테야
일해 봐도 보람도 없는 그런 일은 않을 테야
겨우 연명할 만큼 주면서 생각할 틈조차 안 주다니
진절머리가 난다네
우리도 햇빛을 보고 싶다네
꽃내음도 맡아 보고 싶다네
하나님이 내려 주신 축복인데 우린들 아니 볼 수 없다네
우리는 여덟 시간만 일하려네…


@BRI@만국의 노동자들이 함께 일어설 것을 독려하며 부른 저 노래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끝맺음을 하지 못한 채 노동자들의 마음으로 불려지는 노래일 것이다.


1886년 5월 5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항의 집회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으려는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잡아들여 비열한 음모를 꾸며 그들을 모두 처형했다.

그 희생자 중 한명인 스파이즈는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진술을 남기고 교수대의 처형으로 사라졌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서, 뒤에서, 사면 팔방에서 불꽃은 꺼질 줄 모르고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그렇게 타오른 불꽃과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핏값은 전세계 노동자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자신들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축제의 날로 메이데이가 자리잡을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40여년이 뒤진 1920년대야 비로소 조선 노동자들의 권리 투쟁이 시작되었고 그 투쟁은 사회주의 사상과 함께 널리 확산되었다. 그렇게 1920년대 뜨거워진 메이데이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의식은 더욱 고양되고 기념투쟁도 더욱 활발해졌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해질수록 일제는 어찌하든 노동자들의 규합을 막으려고 온갖 술책을 다 동원해 노동자들을 탄압했지만 그들의 투쟁정신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노동운동은 항일투쟁으로 이어졌으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조직력을 동원하여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을 강조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며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그러나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알려지며 온 나라가 반탁과 친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자 전평도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여 버린다.

어쨌거나 메이데이 60주년인 1946년 서울에서는 전평이 주체가 되어 전국의 노동자들이 메이데이의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여 노동자들의 단결과 계급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하 대한노총이라함)의 등장과 전평의 탄압과 해체로 메이데이의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했으며 1960~70년대는 메이데이가 실종되고 어용노조에 의해 노동운동사의 암흑기가 펼쳐진다.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 불꽃이 된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개발독재의 허상과 노동자들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진다. 그의 희생을 발판으로 노동자들의 '노동 해방' '인간 해방'이 선언되고 노동자들은 다시 의식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시 불붙은 노동운동은 YH조합의 투쟁으로 이어졌고 19살의 꽃다운 나이로 사라져간 노동자 김경숙의 죽음은 유신체제 붕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민주노동조합운동은 1980년대 노동운동을 가능하게 만든 밑거름이 되었고, 1987년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민주노동조합이 전국 조직을 건설하므로 1989년 드디어 메이데이를 노동자들의 힘으로 다시 찾는 쾌거를 이루어 낸다.

비록 메이데이 100주년 기념대회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총공세로 무산되었지만, 그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노동자의 염원이 실현될 메이데이를 향한 진군은 계속되고 있다.

부와 물질에 편승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자본가들과 어찌하든 정당한 대우를 받으려는 노동자들의 대립은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너무도 확실한 것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행동하지 않는 한 자본가들이 권리를 스스로 내어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100년 전 8시간의 노동과 빵과 일자리를 위해 일어섰던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조건을 위해 지금도 노동자들의 애타는 함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자는 절망하지 않는다.

행동하는 순간 이미 한걸음 나아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한 패배나 좌절이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성취와 희망의 빛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나, 그 노래를 함께 불러야 하는 또 다른노동자인 나는 결코 슬프지 않다.

덧붙이는 글 |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역사연구소 지음/서해문집

덧붙이는 글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역사연구소 지음/서해문집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 서해역사문고 3

역사학연구소 지음,
서해문집,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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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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