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야

박준성이 들려주는 1987년 노동자 투쟁 20주년의 역사

등록 2007.05.13 10:23수정 2007.05.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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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작은책> 창간 12주년과 노동자 투쟁 20주년 기념 열린 강좌 2번째 순서에 강사로 나선 박준성씨는 교육을 통해 ‘노동해방’과 탈자본주의 대안사회를 꿈꾸는 현장형 노동운동가다. 그의 강의의 핵심인 왜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이 되고 싶은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 시작되다


동아일보가 현대사에 지표가 된 사건 100가지를 연표로 만들었는데 거기에 노동운동에 관한 사건은 단 두 가지가 포함 되어 있다. 첫 번째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고 두 번째는 ‘YH 여공 사건‘이다. 그것은 노동운동의 역사가 미약했다는 증거도 되지만 사회가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심이 적다는 반증도 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루어진 6.29 선언 뒤, ‘민주화운동세력’이 주춤하는 사이 맨 처음 투쟁의 불길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벌어진 투쟁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컸으며 독점 재벌 계열기업을 비롯한 대공장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까지 연대하면서 노동운동의 폭을 넓혔다.

7월 5일 울산 현대엔진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세우고 시작한 파업투쟁은 경남공업지대인 부산, 마산, 창원, 거제와 전국이 공단지대로 퍼져나간다. 그 7.8.9 노동자 투쟁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며 ‘주인선언’ 이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자도 인간이다’라고 외롭게 외친, 17년 뒤 10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동자도 인간이다,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a 투쟁중인 여성노동자들에게 오물을 뿌린 사건은 부끄러운 과거 역사이다.

투쟁중인 여성노동자들에게 오물을 뿌린 사건은 부끄러운 과거 역사이다. ⓒ 이명옥

“노동자의 제 이름 찾기?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 고 반문하지 말라. 노동자들이 자기 이름을 찾는 다는 것은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는 의식의 자각이자 ‘인간선언’이기 때문이다.

5년뒤인 1991년 봉제업체에 다니던 노동자 박미경이 자신의 팔에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의 팔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을 전전하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K대 경영학과에 적을 두고 국내 최대 기업이라는 S그룹에 입사해 스타가 된 사람이 매스컴에 나와 몇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유명한 S그룹 사무실이 마주 바라다 보이는 곳의 자그마한 개인 사무실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하얀 와이셔츠 위에 자랑스럽게 카드를 목에 걸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직원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꼭 저기 직원이 돼서 일을 하리라” 별렀고 실제 그는 거기 입사해 그들처럼 카드를 목에 걸고 나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소속감과 신분을 보장하는 아이디카드가 지닌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80년대 노동자 해방운동은 한때 ‘복장과 두발 자유화’를 외쳤다. 대부분 사람들은 ‘두발과 복장 자율화’가 도대체 노동운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80년대 제조업체를 비롯한 생산업체에 근무하던 생산직 노동자는 통일된 제복을 입었고, 출퇴근 시에도 제복을 입도록 회사와 사회로부터 강요당했다. 교복으로 학생의 신분을 보장받듯이 그들 역시 공장 제복으로 사회적 신분이 노출되어 ‘ 공돌이, 공순이’라는 비하된 호칭으로 불렸다.

생산직에 종사하는 남자 노동자들의 경우, 군인머리와 비슷한 상고머리를 하도록 강요했다 ‘군발이(군인을 비하하는 말)’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듯 자연히 생산노동자도 역시 사람이 아닌 그저 ‘공돌이’일 뿐이었다. 사람이 아닌 ‘공돌이 공순이’에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들은 ‘복장과 두발의 자유화’를 외치기 시작했다.

a 전국노동자조합의 상징이 된 '노동해방'

전국노동자조합의 상징이 된 '노동해방' ⓒ 이명옥

그렇게 인간선언을 시작한 100만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전국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제 많은 이들이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멀어져 ‘노동해방’이라는 전노협의 상징적인 문구마저 노동현장서 사라진 지금 과연 누가 87년 노동자들의 투쟁 장소에서 빠지지 않고 불려졌던 <총파업가>를 기억하는가?

<총파업가>

팔칠년 칠팔구 투쟁을 동지여 기억하는가
거제에서 구로까지 족쇄 깨고 외쳤던 날을
우리는 뼈저린 각성에 드디어 깨달았노라
천만형제 단결 없인 노동해방 없다는 것을
나가자 형제여 방방곡곡 대동단결로
말하라 형제여 총파업 투쟁으로 말하라
노조 깃발 피에 젖어 삼천리 날릴 때까지
싸우리라 하나 되리라 기필코 승리하리라
태우리라 꽃피우리라 죽어간 동지의 피를
아~ 해방 그날까지 총파업 투쟁으로


어쨌거나 스스로 의식을 높이고 연대의 조직을 확대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7.8.9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동운동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탄압하던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자는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날(5월 1일)은 근로자의 날(3월 1일)로 둔갑시켜 교묘하게 노동자들의 주인의식을 마비시켰다. 노동자의 날(메이데이 5월 1일)은 되찾았지만 아직도 되찾지 못한 이름 ’노동자‘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우리 노동운동의 현 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기억과 역사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와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차이만이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시대와 역사를 바라보는가, 다시 말해 어떤 사회화된 시각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과거의 기억을 장악하는 자가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한다. 노동자가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는 확인하는 것이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부끄러움을 기억해야하고 , 자신에 의식에 반하는 과거의 안일한 의식으로부터 철저한 탈의식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과거로부터 완전히 탈의식화 한 뒤, 현재를 놓지 않는 것은 미래에 비젼을 바라보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그 희망이 싹터 열매를 맺도록 돌보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식민주의와 독재가 가져온 거짓희망이, 현재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는 거짓 희망이 수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가려 시야를 어둡게 한다. 거짓 희망은 온갖 매체를 동원해 현실의 모순을 숨기려하고, 굳어진 체제를 옹위하며 그 체제 속에 노동자들을 안주시키려 한다.

‘국익’과 핑크빛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며 순응과 순종, 인내와 희생을 강요한다. '국익‘이라면 분명히 대다수 국민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라. 가난한 내 형제를 이라크에 용병으로 파병하여 피흘리게 한 것이 국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한미 FTA가 10% 상위층이 아닌, 90% 대다수 노동자인 국민의 국익을 위한 것인지를.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여기 지금, 희망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 -천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번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말은 수덕사 대웅전의 만공 스님 사리탑인 ‘만공탑’에 적혀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라도 오르듯 커다란 배낭에 영사기며 슬라이드를 가득 담아 8도의 구석구석에 ‘노동해방’의 그날을 위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노동자 박준성, 그를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실천의 발걸음을 떼게 만드는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어느 날 강의를 끝내자 자기 나이쯤 돼 보이는 이가 다가와, 양손으로 그의 손을 꼭 감싸 쥐고는 "선생님, 밑 빠진 독에 뭍 붓기라 생각하지 마시고 구멍 난 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는 이치를 잊지 마세요. 자갈밭에 물대기라고 떠나지 마시고 자갈밭에 씨 뿌리고 가꾸는 농부 같은 마음으로 노동자 교육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말에 바짝 긴장했었던 마음이 풀리며 고마움에 목울대에 울컥 감동이 치솟더라는 사람...

“나라고 왜 이 바닥을 떠나고 싶을 때가 없었겠나... 하지만 그렇게 듣는 한 마디 한 마디들이 내게는 교과서보다 더 큰 힘이었다. '노동해방'을 꿈꾸며, 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반 자본 대안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 아직도 내가 물주고 씨 뿌릴 일이 있다고 기억이 살아나 손짓을 하는 한, 누군가가 날 필요로 하는 한 나는 또 지체하지 않고 한걸음에 강연장으로 달려 갈 것이다.”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a 여기 지금 ,  희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이들로 인해 노동의 미래가 밝아온다.

여기 지금 , 희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이들로 인해 노동의 미래가 밝아온다. ⓒ 이명옥

아직도 거짓 희망이 아닌 참희망 세상을 꿈꾸는 이 땅 노동자들의 눈빛이 살아있는 한, 그가 꿈꾸는 대안 세상을 향한 꿈의 불길 역시 꺼지지 않고 타오르리라.

사람들은 이렇게 후회를 한다. “지금 아는 것을 이전에도 알았더라면... 아니, 어제라도 알았더라면...”

가만히 앉아 과거를 후회만 하거나 과거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희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누군가가 새로운 노동의 역사를 쓰고 있다.

한미 FTA를 온몸으로 반대하며 죽어간 허세욱씨, 자본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유언론을 외치는 시시저널 노조, 불의에 항거하며 어딘가에서 희망의 징검다리를 함께 건너는 이들이 미래의 새벽을 환하게 밝히며 달려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전노협 진군가>

새날이 밝아 온다 동지여 한발 두발 전진이다
기나긴 어둠을 찢어 버리고 전노협 깃발아래 총진군
잔악한 자본의 음모 독재자가 판쳐도
새 역사 동트는 기상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
총 파업 깃발이 솟았다 한발 두발 전진이다
노동자 해방의 그날을 위해 이제는 하나다 전노협


"힘 모아 싸우는 노동자만이 미래를 움켜 쥘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도움이 될 만한 책과 사이트*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역사연구소 지음/서해문집 
노동의 역사, 노동의 의미 
노동의 의미/청수정덕/한마당 강좌2 

노동자교육센터 http://laboredu.org

덧붙이는 글 도움이 될 만한 책과 사이트*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역사연구소 지음/서해문집 
노동의 역사, 노동의 의미 
노동의 의미/청수정덕/한마당 강좌2 

노동자교육센터 http://laboredu.org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 서해역사문고 3

역사학연구소 지음,
서해문집,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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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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