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억압에서 해방? 근데 왜 쓸쓸할까

코 끝까지 오는 머리를 자른 형이 군대 가던 날

등록 2007.01.03 14:15수정 2007.07.03 18:0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전 6시 30분.

나는 가족들이 깨우는 소리를 듣고 눈을 비비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1월 2일. 오늘은 형이 군대에 입대하는 날이다. 형 덕에 나는 매우 일찍 일어났고 그 때문에 내 안에서는 '왜 내가 형을 바래다 주어야 하지'라는 불평의 생각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밥을 먹고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에서 앉은 내내 형의 얼굴은 뭔가 고민이 있는 듯 했다. 그렇다. 남자라면 한번쯤은 가는 군대지만, 형의 입대를 생각하고 집에서의 형의 빈자리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용산역에 도착 하고 나서도 형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한 것 같았다. KTX를 기다리는 도중에, 형은 나와 장난을 칠 정도로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나는 곧 형이 입대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KTX를 타는 동안에도 형은 나와 장난을 쳤지만 형의 속마음은 찢어지게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리면 코 끝까지 오는 머리를 3cm도 안 되는 길이로 깎고, 집에서의 그 많은 게임 관련 잡지들과 CD 그리고 고성능의 컴퓨터와 PS2. 이것들을 놔두고 2년간의 군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형도 분명히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KTX에서 내려서 맛있는 불고기를 먹는 동안에도 형은 나와 장난을 쳤다.

형은 코 끝까지 오는 머리를 자르고...

a

입영장 앞. 상인들이 시계, 수첩, 깔창 등을 구입하라 해도 형은 능청을 떨며 "준비했어요"라고 말했다.

입영장소에 가는 동안 그 많은 상인들이 시계, 수첩, 깔창 등을 구입하라 해도 능청을 떨며 "준비했어요"라는 말을 내뱉는 것 보면 형도 어느 정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입영장소에 도착한 뒤 엄마와 형은 도보로 훈련장을 돌아보고, 나와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좀 쉬었더니 형과 엄마가 왔다. 어느새 형의 수염은 없어졌고 머리는 더욱 더 짧아져 있었다. 머리와 수염이 아슬아슬하게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형의 더 짧아진 머리를 신기하게 만져보면서 뭔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아무래도 형이 나에게 잘 해주었든, 못 해주었든 가슴 속 추억이 살아나, 군대를 가는 연유로 더욱 짧아진 형의 머리를 만지면서 일말의 쓸쓸함을 느낀 것 같다.

약간의 훈련소 행사가 끝나고 우리 형과 우리 가족은 연병장으로 가 입소식을 보았다.

입소식 시작과 함께 모든 입영병들은 집합을 하였다. 우리 형도 얼마 안 돼 뛰어나갔다. 그것이 우리가 형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후 엄청난 숫자의 입영병들과 섞인 우리 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입영병들이 집합을 했는데도 늦게 들어가려 하다가 저지당한 사람들도 몇 명 보였다.

입소식이 진행되자. 우리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였으며, 우리 엄마는 얼굴이 술 취한 듯 엄청나게 빨개진 채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엄마는 자기 입으로 안 운다고 하면서 그래도 형이 입대하니 눈물이 터졌나 보다.

a

운동장에 모인 입영자들

그 후 연대장의 말이 끝난 뒤. 우리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하여 돌아갔다. 그 때 모든 입영병들이 각기 5조로 나눠져 연병장 모서리를 돌았다. 우리는 잠시 멈췄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 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멀리 있었고 너무 많은 인파와 섞였기 때문에 구분을 못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훈련소를 떠났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는 동안 졸았을 때도 일어났을 때도 형의 군대 생활이 어떻게 될 지 생각했다. 우리 집 식구가 한 명 줄어 식비는 덜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이제 형의 억압에서 해방되었구나 생각하다가도, 형이 나에게 가끔 사다 준 삼각 김밥이나 나에게 군대 가기 전에 많은 게임을 시켜준 자비를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났다.

아무리 나쁜 추억이라도 추억 속에 있던 사람이 떠나면 슬퍼지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나와 나쁜 추억과 좋은 추억을 함께한 형이 이제 우리 집을 떠나 군생활을 하러 훈련소로 떠나는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형은 군대생활을 잘 마치고 올 것이다. 형은 무엇보다 군대가 무섭다고 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형을 전적으로 응원한다. (우리 엄마는 억압에서 해방될 거 아니냐면서 나보고 좋겠다고 하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엄태현 기자는 초등학교 5학년 입니다.

덧붙이는 글 엄태현 기자는 초등학교 5학년 입니다.
#입대 #서명숙 #군대 #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2. 2 [단독] 순방 성과라는 우즈벡 고속철, 이미 8개월 전 구매 결정
  3. 3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4. 4 김용의 5월 3일 '구글동선'..."확인되면 검찰에게 치명적, 1심 깨질 수 있다"
  5. 5 빵집 갈 때마다 불편한 마음, 이걸로 해결했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