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떠도는 부평초의 삶일지라도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88] 물개구리밥

등록 2007.01.03 19:12수정 2007.01.03 19:2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물개구리밥을 찾아왔다 연잎에 앉은 개구리 ⓒ 김민수

개구리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부평초'는 얽매임 없이 이리저리 유랑하는 자유로운 삶을 떠올리게 하는 풀이다. 뿌리는 있으되 흙에 내리지 않음으로 인해 물결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삶을 보면서 자유 혹은 유랑을 생각했을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애절한 노래가 싯구가 아니더라도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면서 살아온 길과 살아가야 할 길을 생각해 보면 이리저리 떠돌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삶과 부평초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대다수의 식물들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평생 그 곳에서 살아간다. 사람들도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가는 삶이 뿌리를 상실한 삶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a

부평초 위에 살포시 앉은 빗방울 ⓒ 김민수

최근 몇 년간 세 번의 이사를 했다. 한 번 이사를 할 때마다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전학을 해서 친구들을 사귀는 일과 학교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마치 뿌리채 뽑혀 다른 곳에 심겨지는 나무의 고통을 주는 듯해서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어느 곳이라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했지만, 이사한 곳이 고향처럼 느껴지기까지도 힘든데 정이 들만 할 때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절망을 하기도 했지만 삶의 정황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질 않았다. 서울에 정착을 한 이후 직장 문제로 인해 또 한 번의 이사를 고민하면서 무기력증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또 다시 이사를 강요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아 조금 먼 길이지만 홀로 감당하기로 하면서 이사의 꿈(?)을 접었다.

a

부평초와 연잎 ⓒ 김민수

개인적으로 적응을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곳이든 한 달 내로 적응을 잘 하는 편이었는데 저 남녘의 섬에서 내 삶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향인 서울로 이사를 한 후 한 해를 넘겼는데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간혹,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착각일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의 정황을 겪으면서 떠올린 것이 '부평초'였다. 물결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부평초, 그의 삶과 내 삶이 많이 닮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a

오밀조밀 빈틈없이 자란 부평초 위에 연밥의 흔적이 남아있다. ⓒ 김민수

그런데 그들의 생명력, 번식력은 대단했다. 물개구리밥을 한 줌 얻어와 인공연못을 만들고 그 곳에 넣어두었더니 얼마간은 있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 어느새 연못을 가득 채우고는 더 이상 비좁아서 못살겠다고 사로 밀치며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다.

'소걸음' 혹은 '달팽이걸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걷는데 천리 길을 넉넉히 가고, 느릿느릿걸음이지만 어느 새 숨어버린 달팽이처럼 그들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 위를 떠도는 삶일지라도,
그 어느 곳 하나 든든히 붙잡지 못하고
바람불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면 물결치는 대로 이리저리 더밀려 사는 삶이지만
보아라!
어느새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또 다른 네가 되어
자유를 찾아 떠난다.
떠나는 것조차도,
내 마음대로 휘적휘적 갈 수 없는 몸이지만
나는 살아가리라.
그렇게
네가 되고 또 네가 되어 살아가리라.
- 자작시 '부평초'


a

겨울이 되면 부평초도 자유롭지 못하다. ⓒ 김민수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부평초도 겨울, 얼음이 얼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봄이 올 때까지 푸른 빛 꽁꽁 얼어 붉은 빛으로 혹은 갈색으로 추운 겨울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자유와 부자유, 둘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이다. 혹은 자유의 삶을 살아가지만 현실의 벽으로 인해 부자유의 삶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삶이다. 두물머리 연꽃이 피어있던 못이 얼어 얼음판 위에서 바짝 얼어붙은 부평초를 볼 수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들은 여전히 새 봄을 꿈꾸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볼품 없는 모습이지만 새 봄이면 다시 푸릇푸릇한 신선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자유를 잃은 삶이지만 새 봄이 오면 다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자유의 삶을 품고 있다는 것, 지금은 비록 아니지만 그것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다.

지금의 내 삶은 얼음 속에 갇혀 있는 부평초의 삶을 닮았다. 그러나 내 안에 들어 있는 자유,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물개구리밥, 부평초, 그 작은 것들이 아우성치며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도 그렇게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감으로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오늘 소개해 드리는 '물개구리밥'과 '개구리밥'은 다른 식물이지만 편의상 부평초로 소개를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오늘 소개해 드리는 '물개구리밥'과 '개구리밥'은 다른 식물이지만 편의상 부평초로 소개를 드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노후 대비 취미로 시작한 모임, 이 정도로 대박일 줄이야
  2. 2 나이 들면 친구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
  3. 3 오스트리아 현지인 집에 갔는데... 엄청난 걸 봤습니다
  4. 4 일본이 한국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바꾼 이유
  5. 5 최근 사람들이 자꾸만 신안으로 향하는 까닭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