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간호원이 여러가지 도움말을 줬다.전희식
어머니를 직접 모시기로 하고 향과 물과 그릇과 음악과 그림과 색과 꼴을 준비하고 어머니의 몸 상태를 생각하며 집을 아예 새로 고치고 있는 내 눈에 노인시설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환경운동가가 원장인 노인병원이지만 누운 자리에서도 문만 열면 하늘이 보이고 나무도 있고 새들의 지저귐도 들리는 집을 만드는 내게 그 노인병원이 눈에 찰 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왜곡된 삶의 선택이 부모를 노인시설로 보내고 있다는 내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원장선생뿐 아니라 수석 간호사와 오래 면담을 했다. 여러 사례들도 들었고 내 조건에서 선택해야 할 경우들에 대해 조목조목 물어가며 적었다. 간호사는 종이접기나 밀가루 반죽으로 모형 만들기가 좋다고 권했다. 노인이 소일거리를 갖고 대화상대가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였다.
이곳의 노인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과 섬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묻어나는 것은 오직 돈의 힘이고 원장선생의 고귀한 정신 때문으로 보였다. 모든 병원 관계자들은 얼굴이 환했고 친절했다. 원장은 병실 순회 진료를 하면서 참 유쾌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가위바위보 게임도 했고 수수께끼 풀기도 했다.
나의 현장실습을 흔쾌히 받아 준 원장선생은 그랬다. 유산이라도 좀 있는 노인네들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노인네들은 자식들로부터 받는 대접이 다르다고 했다. 병원을 찾아오는 횟수나 장례식 때 빚어지는 풍경들도 적나라하게 말해 줬다.
홀대하던 부모가 죽었을 때 자식들이 홀연히 나타나 소중한 '상품'으로 대하는 경우에 대해 들었다. 명절이나 연휴가 있으면 부모의 임종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호흡기를 사용하는 자식들 이야기도 들었다. 호흡기가 있으면서 안 쓰면 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 병원장은 생명에 대해 오랜 연찬과 고심 끝에 호흡기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단다.
한 할아버지는 물리치료실에서 내 도움을 받으면서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고지를 누비던 이야기를 했다. 총알이 사람을 피해 다닌다고 했다. 절대 사람이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총알이 사람을 피해 다닌다? 그렇다면 병과 늙음도 한 동안 우리를 피해 주는 것이고 절대 사람이 피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그 할아버지는 재산을 모아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요양비를 다 대고 있다고 했다. 이때 <나라야마 부시코>의 뒷부분이 떠올랐다. 70살이 다 된 아버지 '오린'은 안절부절 못하는 아들 '다츠헤이'를 보다 못해 자기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멀쩡한 이빨을 부러뜨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자식에게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어버이들의 선택도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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