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전쟁? 아니 행복한 시간!

한 편의 공연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등록 2007.01.07 09:05수정 2007.01.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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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1일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도 4주간의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방학이라며 좋아라하는 아이와는 달리 한숨부터 튀어나왔다.


"휴우~~ 또 뭘하며 한 달을 보내나?"

방학이면 당연하게 찾아갔던 친정도 이번에는 사정상 가지 못하게 됐으니, 할머니 집에서 하던 조개파기, 모래놀이, 나무하기, 게 잡기, 낚시하기 등으로 채웠던 시간들을 매연 가득한 이 도시에서 어떻게 메워야 할지 걱정됐다.

그런 엄마들의 마음을 아는지 유치원에서는 방학생활 중 유의할 점 등을 적어 보낸 안내문 뒤에 가볼만한 공연, 관람에 대한 안내문까지 친절하게 적어줬다.

과학체험전에서 구름다리 완성
과학체험전에서 구름다리 완성주경심
올록블럭놀이터에서 직접 조립한 자동차에 시승
올록블럭놀이터에서 직접 조립한 자동차에 시승주경심
안내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광고의 카피에서 "어린시절 보았던 한편의 영화가 집으로 오는 길에도, 집에 와서도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중략)...잘 만들어진 한편의 공연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한 것처럼 좋은 영화 한편, 좋은 연극 한편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그려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 연극은 또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가끔 라디오 프로에 살아가는 얘기를 써서 방송을 타고, 상품을 받던 내 눈에 라디오의 또 다른 매력이 보인 것이다. 그건 바로 애청자들에게 배포하는 공짜 초대권들이었다.


생전 공으로는 500원짜리 복권 한 장도 맞아본 적도 없는 나였지만, 노니 염불한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초대권 응모란에 이름 석자와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를 적어놓고는 기다렸는데, 역시나 전화가 온 것이다.

그리하여 날짜를 정하고 초대권을 받아서 지금까지 영화 2편과 체험관 2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와 체험관이라 어른은 가봐야 심심할 것이라고만 생각하고는 봉사하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음으로 갔는데, 가서보니 아이들보다는 내가 더 신이 났다.


이 나이 먹도록 TV에서 해주는 만화영화 외에는 대형스크린으로 만화영화를 언제 봤겠으며, 어디 가서 체면 다 잊고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손으로 만져보고, 던져보고, 쌓아보는 그런 놀이다운 놀이를 해 봤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난 공짜손님이 아니던가? 매표소에서 돈을 내고 표를 끊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공짜티켓을 수령하는 그 짜릿함은 아마 공짜공연을 구경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본전생각하며 재고 따지는 번거로움 없이 오직 체험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그 체험이 어찌 살이 되고, 피가 되고, 힘이 되고, 추억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각종 블럭으로 만든 작품앞에서...
각종 블럭으로 만든 작품앞에서...주경심
그런데 두어 번 체험관을 다니다보니 이젠 슬슬 다른 체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는 이유로 내 돈 내고는 영화 한편도 구경 못한 이 문맹인이 드디어 내 돈 내고 체험관 신청을 한 것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외출을 하는 나를 남편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노는데 재미 붙였으니 이제 뜨신 밥은 다 얻어먹었네"라며 토로를 해 오곤 한다.

"당신 정말 몰라서 그래? 한편의 공연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이 얘기 하려고 그러지? 아이들 운명만 소중하고, 내 운명은 왜 뒷전인데?"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남편은 바쁘지 않는 한 공연장 앞까지 태워다 주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같이 공연을 즐기지는 못해도 아버지의 자리만은 꿋꿋하게 지켜주는 남편만의 아이들 사랑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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