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원 선생, 이 땅 농부들의 큰 빛이셨습니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대부 1일 영면... "모든 삶의 중심에 농업을 두라"

등록 2007.01.08 17:33수정 2007.01.08 17:3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살아계실 때, 김영원 선생이 우리 농업 사랑에 열변을 토하고 계신 모습.

살아계실 때, 김영원 선생이 우리 농업 사랑에 열변을 토하고 계신 모습. ⓒ 이우성

14대째 한 지역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는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 산골마을의 김영원 선생이 지난 1월 1일 영면하셨다.


@BRI@18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투병을 하면서도 그 자신이 곧 자연의 일부분처럼 살면서 생명농업운동을 활발히 펼쳐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대부로 잘 알려진 선생을 잃은 것은 농사짓는 사람뿐 아니라 모두의 상실감이 크다.

모든 산업과 삶의 중심에 농업을 두는, 농업적 삶을 복원시키자던 선생의 목소리는 이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메시지를 줄곧 던져왔다.

선생의 빈소를 다녀오면서 몇 해 전 선생을 만났을 때 들려준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시 살아나온다.

선생은 만난 것은 2005년 신년이었다. 아직도 하실 일이 많으시다는 선생에게서 농부가 가야 할 큰길을 안내받은 것 같아 가슴이 부풀었었다. 그때 나눈 대화를 전한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 유기농업의 산증인이시고 농업 1세대 원로로서 오늘의 한국농업을 바라보는 생각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먼저 무엇이 땅을 갈고 사는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곡식 낱알 자체가 생명이고 이 낱알이 모든 생명을 살리는 근본 에너지입니다. 생명문화는 생명과 생활로 표현되는데 생명은 생명사상으로, 생활은 생명문화로 이해해야 합니다. 농경으로부터 시작되는 농업적 삶이 곧 생명문화인 것입니다. 농업을 소외시킨 결과가 농업의 위기를 초래했고, 곧 생명의 위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문화의 시작도 농사를 짓는 농경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화시대 농업은 선진농업대국의 세계지배 전략으로 말미암아 개도국의 전통 가족농은 소멸되고 있습니다. 힘을 가진 자가 지배하는 현대판 바벨탑신화가 재현된다면 온 천지가 반생명적이 될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우리도 무농업국이 됩니다. 이런 토양에서 생명사상과 생명문화가 싹트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 오늘의 생명위기의 본질이 있습니다.


생태계 파괴와 인간 소외로 인한 오늘날의 생명위기는 농업을 소외시킨 어리석음이 자초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따라서 생명문화의 복원 없이는 미래도 없습니다. 생명산업인 농업을 복원시켜야 합니다. 모든 산업과 삶의 중심에 농업을 두는 농경사회의 복귀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 땅을 갈고 닦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준비를 해야 합니까?
"대량 실업시대에 다른 기술이 없는 농민이 땅을 떠나면 고기가 물을 떠난 것과 같습니다. 지금 세상은 흔하고 싼 것 천지이지만 식량자급도가 줄면 진짜 위기가 온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국제유기농운동연맹(IFORM)에서도 식량 지급도가 20%로 떨어지면 자주국가로 존속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쌀농사 포기정책으로 곧 떨어질 것이고 머지않아 자주국가라고 할 수가 없겠지요.

먼저 의식변화가 제일 중요합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직거래운동이 확산되어야 하고 획기적인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국내 생산자들이 효과적으로 유통할 수 있도록 정부지원이 시급하다는 것을 조직적으로 제안해야 할 것입니다."

유기농업만이 살길인가?

a 삶의 가치, 제1의 위치에 농업을 두라는 말씀을 새겨 듣는다.

삶의 가치, 제1의 위치에 농업을 두라는 말씀을 새겨 듣는다. ⓒ 이우성

- 무엇이 제대로 된 유기농업인가요. 이 땅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하늘이 준 직업이 농업입니다. 태초에 흙으로 빚어 사람을 만들었으니 모름지기 사람이란 땅을 갈고 거기에서 열매를 취하고 죽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이 곧 유기적인 삶입니다. 그렇게 하늘이 준 천직을 인간이 천한 직업으로 만들었습니다.

농민도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행심은 곤란합니다. 유기농업해서 부자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농촌은 농촌다워야 합니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농사에 임해야 합니다. 돈 벌지 않고 돈 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문화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어떤 정신으로 살 것인가. 정신과 가치관이 바로 서도록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가장 필요한 농업정책은 무엇인가요. 정부 관료들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요?
"패배주의에 빠진 관료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철학을 갖고 떳떳하게 일하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농업은 이미 세계화 분업체계에 편승했습니다.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 기업들은 그 나라 농업을 지배하면 그 나라를 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로 경쟁력 없는 것은 도태되도록 악랄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대형화, 규모화, 시설화 위주의 미국식 논리에 흡수되면 농업식민지가 될 것이 뻔합니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한국 농업도 망했습니다. 농지를 없애고 골프장이나 도로를 닦고 아파트를 지으면서 더 이상 복구가 힘들 정도로 환경을 파괴했습니다. 한국 농업을 지킬 곳은 소농, 가족농입니다. 생계가 달린 문제이므로 최후의 보루인 가족농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 것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전통농법과 현대과학을 접목해야

- 제대로 유기농사를 지으려면 어느 정도의 면적이 필요할까요?
"지역에 따라, 작목에 따라 유기농사에 적당한 면적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만 대략 0.5∼1.5ha 정도가 이상적인 규모라고 봅니다. 기계도 대형기계보다는 소형기계를 쓸 것을 권합니다. 쇄토할 때에도 대형기계를 쓰지 않도록 하고 관리기도 천천히 돌리는 것이 땅에도 이롭습니다. 먼저 흙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땅의 단일구조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지혜가 발휘되면 좋겠지요.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전통농법을 잘 연구하고 계발해야 합니다. 학계와 단체가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지역마다 토질에 따라, 기후에 따라 농기구도 다르고 농법도 조금씩 다릅니다. 각 지역에 노인들이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재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고 학자들을 끌어들여 연구하게 하면 현대과학과 접목할 수 있을 것이고 학자들을 현장 속으로 파고들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기농업 하는 사람들 사례를 모아보면 지금은 유기농업의 생산력은 올라가고 관행 농업은 떨어지는 시기가 되었어요. 생산력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유기농업 초창기 현상만 갖고 제기하는 일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돌아오는 농촌을 위한 시급한 정책은

a 선생은 후계자를 길러놓은 신 것을 제일 즐거워 하셨다.

선생은 후계자를 길러놓은 신 것을 제일 즐거워 하셨다. ⓒ 이우성

- 돌아오는 농촌을 위해 귀농자들을 제대로 자리 잡게 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귀농해야 할까요?
"귀농자들이 계속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나 이상적인 생각만으로 귀농해서는 안 됩니다. 농사는 낭만이 아닙니다. 농사로 몸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나는 먼저 똥장군 지게를 수백 차례 져보고 귀농하라고 말합니다. 똥분(糞)자를 파자해 보면 밥(米)이 변해서(異) 똥이 되고 똥이 순환해서 쌀이 됩니다. 똥을 우선 공부해야 유기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귀농은 자신의 가치관의 문제이지 소득 갖고 따져서는 안 됩니다. 땅으로 돌아가는 마음가짐의 문제입니다.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의 부인들은 시골 가면 마치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결사반대합니다. 부인이 적응하지 못해 돌아가는 예도 많습니다. 그래서 예비 귀농자들이 오면 먼저 부인을 설득하라고 말합니다.

21세기는 밭으로 돌아가는 세기입니다. 흙만이 삶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습니다. 산업사회의 새로운 전자기기들이 풍요와 편리, 쾌락은 주지만 쌀은 주지 않습니다. 쌀은 밭에서, 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밭으로, 논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선생님은 생태적이고 유기적인 삶을 몸으로 보여 오셨습니다. 선생님 삶을 되돌아보면 아쉽고 후회되는 시간은 없었습니까?
"다시 태어나도 유기농사를 짓겠습니다. 다만 힘을 과중하게 써서 몸이 골병든 것이 후회라면 후회지요. 힘에 넘치는 일만 해서는 늙어서 후회한답니다. 나는 아들에게도 항상 얘기합니다만, 힘이 열이 있으면 여덟만 쓰고 둘은 남겨 축적해야 노후까지 쓸 수 있습니다. 노년에 골병만 남아 후회하는 것보다 오래도록 일하도록 여유를 갖고 항상 힘의 20%는 저축한다는 기분으로 남겨두기 바랍니다."

- 앞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것들은 무엇인지요. 선생님이 일궈놓으신 것들을 이어가게 하는 후계자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유기농업 하는 1세대들은 반드시 후계자를 키워야 합니다. 후계자 한 명 못 키우는 운동은 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젠 팔 힘도 없어 글자도 잘못 쓰지만 3대가 같은 집에서 살면서 유기농사를 같이 짓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자식에게 유기농업이 전수되었으니 할 일은 다한 셈이구요. 또 초등학교 5학년인 손자도 커서 '쌀농사 많이 짓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니 손자까지 농사를 계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참 편안합니다."

a 선생의 사과밭은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것이었다. 사과재배를 유기농사로 지었다.

선생의 사과밭은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것이었다. 사과재배를 유기농사로 지었다. ⓒ 이우성


고 김영원 선생은 어떤 분인가?

▲ 생전의 김영원선생.전통농업 발굴에 대해 하실 일이 많으시다고 하셨는데...
ⓒ이우성
토착 농사꾼, 농민운동가, 생명운동가인 김영원 선생은 1931년 경북 의성군 효선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농사를 지어온 분이다. 독실한 크리스천. 마을에선 김 장로로 통한다.

고학으로 신학대학에 다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가업인 농사를 물려받았다. 78년 농약에 중독되어 쓰러진 이후부터 생명사상에 눈떠 자연스럽게 유기농사를 지으면서 귀농운동, 농민운동, 민주화운동, 유기농업운동에 앞장섰다. 한해 100여 차례나 강연하러 다니기도 했다. 15년 전 파킨슨씨병에 걸려 투병을 하면서도 생명농업운동을 활발히 펼쳐 그를 한국 유기농업의 대부로 아낌없이 칭한다.

선생은 2남 1여를 두었는데 맏아들 정욱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아버지 곁에 돌아와 유기농사 일은 물론이고 지역 농민회 일까지 맡아 농민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선생은 논 1200평과 밭 1500평, 산을 개간한 사과 과수원 2000평에 유기 농사를 짓는다. 선생의 밭에서 나오는 35가지 채소로 담은 채소효소 '풀의정'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기농업의 산증인이신 김영원 선생이 새해 첫날 작고하셨습니다. 올곧은 농부의 길을 걸어오신 분을 기억하는 건 우리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재작년 새해에 만나본 선생의 말씀을 정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유기농업의 산증인이신 김영원 선생이 새해 첫날 작고하셨습니다. 올곧은 농부의 길을 걸어오신 분을 기억하는 건 우리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재작년 새해에 만나본 선생의 말씀을 정리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