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 밤벌레처럼 토실하네"-"왜 하필 밤벌레야?"

생생한 체험 속에서 나온 생생한 비유

등록 2007.01.09 19:02수정 2007.01.0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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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좀 들었다고 엄마나 아빠 따라 나들이 하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다는 아들 녀석들을 보며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이 새삼 느껴집니다.


중3이 되는 준수 녀석을 보면 귀여움 대신 든든하다는 느낌이 먼저 옵니다. 6학년이 되는 광수 녀석은 아직도 귀여운 티가 있지만 행동은 형을 닮아 예전처럼 살갑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BRI@그러다보니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엄마 등에 업혀 방긋 웃는 아이를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까꿍'하고 웃어주거나 살며시 볼을 쓰다듬어주곤 합니다.

"녀석 참 잘 생겼네."
"애기가 참 튼튼해요."

덕담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 말 듣고 아이 엄마의 얼굴이 금방 환해집니다. 등에 업힌 아이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는 아내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피어납니다. 아이 곁에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아내와 아이 엄마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그 정겨운 모습 보고 있으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준수나 광수 녀석이 엄마 등에 업혀 외가에 갔을 때의 기억입니다.


"고놈 밤벌레처럼 토실토실하네."

첫돌 무렵의 준수가 젖살 올라 포동포동 살이 오른 걸 보고 장모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아내는 그 말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엄마는, 왜 하필이면 밤벌레야?"
"밤벌레가 어때서?"
"징그럽잖아."
"징그러울 것도 쌨다."

밤벌레가 징그럽다는 아내의 생각과는 달리 내 기억 속의 밤벌레는 전혀 징그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벌레 먹은 알밤을 까서 딱 깨물어보면 포동포동 살이 찐 밤벌레가 그 속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알밤 속에서 알밤을 먹으며 사는 녀석입니다. 어릴 땐 밤벌레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장모님의 비유가 참 적절하다는 생각에 장모님을 응원했습니다.

"밤벌레가 얼마나 귀여운데."
"벌레는 벌레지 뭐가 귀여워?"

아내는 밤벌레가 귀엽다는 말을 수긍하지 못했습니다. 사위의 응원에 힘을 얻은 장모님은 그 뒤로도 귀여운 외손자들을 밤벌레에 자주 비유하셨습니다. 자꾸 들어 익숙해진 아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장모님의 화려한 비유는 밤벌레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한여름에 속이 비치는 얇은 옷을 입고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을 보면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하십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댕기네."

딱 어울리는 표현이지요. 책 읽고 글 쓰며 익힌 비유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보고 느낀 체험에서 나온 비유이기에 더욱 생생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아들 앞에 앉혀놓고 일을 하며 옛날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외씨 같은 전이밥에 앵두 같은 팥을 다문다문 넣어 지은 밥'이란 대목입니다. 어릴 때는 그냥 맛있는 밥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나이든 지금 다시 떠올린 그 말이 이제는 온전히 이해가 됩니다. 외씨처럼 새햐얀 쌀밥에 앵두 같은 팥을 다문다문 넣고 지은 밥이란 뜻이지요.

비유도 이 정도 되면 눈이 부십니다. 생생함을 넘어서 찬란하기까지 합니다. 험한 세월 땅에 삶을 묻고 온몸으로 땀 흘리며 살아온 분들의 생생한 삶 속에서 나온 찬란한 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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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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