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0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개헌 제안에 대해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의원총회에서 강재섭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가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수시로 이뤄지는 선거는 주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국민의 의사가 표출되는 과정이며, 국정운영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선거문화를 바꿔나간다면 사회적 비용의 발생도 굳이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금권정치가 문제이지, 선거가 자주 있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4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경과한 뒤에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면 그 과열양상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미국 연방의 대통령 임기는 4년이지만, 의회 하원의원 임기는 2년, 상원의원은 6년이다. 상원의원은 2년마다 3분의 1씩 개선되어 2년마다 의회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의 정책수행에 대한 중간평가가 이뤄진다. 수시로 이뤄지는 선거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또 생각할 수는 없을까?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현재의 제도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 장점만 나타나고 단점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제도를 바꾼다고 현재의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불식한다고 할 수도 없다.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대통령 4년 중임과 국회의원과 대통령 임기의 일치 등 의제에 집중하여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과 의무를 행사하지 않아야 할 뚜렷한 사유가 없는 한,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헌법이 부여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하니 노대통령은 조만간 개헌을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개헌은 단순한 문구의 수정이나 조금 더 나은 제도로 만들고자 하는 단순한 발상에서 이뤄질 것은 아니다. 개헌은 그 대상이 헌법의 중요한 사항에 대한 것이어야 하고, 그 내용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요성이 있어야 하며, 그 사항에 대한 국민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개헌을 하는 과정에서는 부수적인 내용의 개헌도 함께 이뤄질 수 있는 것이겠지만, 개헌을 추진하려면 우선은 이러한 중요한 대상과 그 개헌의 필요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임기와 선거일정의 조정이 다른 것보다 앞서서 개헌을 해야 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의제일까?
헌법이 가진 기본권 제약요소부터 제거해야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를지 모르지만,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대통령 임기와 선거일정 조정 등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헌논의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헌법이 가지는 기본권 제약요소를 찾아내고, 국민이 보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군사문화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일반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군사재판 권한(제27조 제2항), 평등권을 침해하는 군인·군무원 등의 국가배상청구권 제한(제29조 제2항), 법관의 관료화·서열화를 초래하는 법원구성의 방법인 대법원장의 대법관임명제청권(제104조 제2항),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정당국고보조(제8조 제3항) 등 조항을 폐지 또는 개정하는 것은 몇 가지 예이다.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정말 중요한 조문들의 개정이 없이, 그 장점이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 없는 내용만을 위한 개헌이라면, 대통령이 그토록 우려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할 때 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년 중임제로 바꾸면 5년 단임제가 나타내는 문제점을 없앨 수 있는가? 과연 다른 것을 미루고 그 내용을 바꿀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는가? 좀 더 임기를 계속해서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할 만한 정치인을 우리는 가졌던가? 단임제가 초래하는 정치왜곡이 그리도 심각한가? 국회와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켜 두 기관을 균질화하는 것이 그리도 필요한가? 오히려 국회의 의정활동의 내용을 바꾸는 게 먼저 필요한 게 아닌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헌법은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그래도 잘 손질하고 적절하게 메꾸면 우리 시대의 삶을 담아내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헌법을 바꾸면 정치가 바뀔 것이라는 안이한 환상은 금물이다.
일반적으로 헌법의 개정은 정치의 변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지금 굳이 개헌을 하자면 우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정치적 계산은 그 다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송기춘 교수는 전북대 법대에서 헌법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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