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황제들이 사자를 기른 이유는?

[내가 만난 아프리카 ⑩] 곤다르 왕궁을 찾다

등록 2007.01.11 18:11수정 2007.01.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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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다르 왕궁을 세운 파실라다스 황제의 궁전 모습 ⓒ 김성호

아프리카의 카멜롯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 교회를 나와 곤다르 왕궁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벨레게즈 펜션이라는 민박집 같은 여행객 숙소이다. 배낭을 방에 놓고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때우다 자전거로로 세계 일주를 하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남자여행객을 만났다. 빨리 점심을 먹고 곤다르 왕궁을 걸어서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바로 헤어졌다.

식당을 나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200년 동안 수도였던 옛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을 비롯한 곤다르 유적지는 랄리벨라 지하암벽 교회와 악숨 유적지 등과 함께 유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현지인들이 파실 게비라 부르는 곤다르 왕궁으로 걸어가는 데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2명이 영어로 "내가 도와주겠다"며 따라 붙는다. 혼자서 구경하겠다고 하자 자신들은 돈을 요구하는 안내자가 아니라 영어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여행객들을 상대로 실전 연습하는 것이었다. 고맙지만 혼자서 여행하는 배낭여행객이라고 말했다.

왕궁입구에 들어서니 매표소 뒤쪽의 언덕 위에 들어서 있는 오래된 궁전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곤다르 왕궁은 엑스칼리버 전설로 유명한 영국 중세시대 아서왕의 궁궐이었다는 카멜롯에 비유해 '아프리카의 카멜롯'으로 불린다.

왕궁은 900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도시인데, 궁전 뿐 아니라 법원, 교회, 수도원, 도서관, 목욕탕 등 복합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왕궁을 1636년 처음으로 지은 파실라다스 황제와 그 후계자들이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200여 년간 수도로서 살던 곳이다.

여러 곳을 헤매다 곤다르(영어식 표기:Gonder)에 정착된 수도를 건설한 것은 오래된 에티오피아의 전설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에는 파실라다스 황제 이전부터 한 천사가 왕국의 수도를 이름이 'G'로 시작하는 지역에 세우라는 계시를 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왕궁 터에 들어서면 궁전 등이 모두 중세 유럽의 왕궁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실제로 왕궁 등은 에티오피아의 고대 악숨 왕국의 전통 뿐 아니라 인도와 아랍, 그리고 포르투갈 예수회에 의한 바로크 양식 등의 영향으로 이국적인 혼합 건물이다.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는 파실라다스 황제의 궁전

매표소에서 오른쪽으로 첫 대면하는 건물은 바로 파실라다스 황제의 아들이자 후임자인 요하네스 1세가 세운 법원과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조금 들어가면 가장 오래되고 웅장한 파실라다스 궁전이 나온다. 둥근 천장 모양의 4개의 돔 형식 탑과 아치형 성문을 한 3층짜리 궁전이 딱 버티고 서 있다. 돔 형식의 탑으로 인한 달걀 모양의 지붕형태로 말미암아 계란성(Egg Castle)이라고도 한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1층은 연회장과 공식 접견실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파실라다스 황제의 기도실이 있고, 3층에는 왕의 침실이 있다. 지붕 위는 종교적인 행사장으로 사용되었고, 황제가 백성들에게 연설하던 곳도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지붕 위의 4각형 탑에서 바라보면 타나 호수의 아름다운 물이 보인다고 해서 지붕으로 올라가기 위해 2, 3층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참을 헤맸다. 지붕 위로 올라가는 통로를 찾기 위해 10여분을 보냈는데, 백인 남자 여행객 2명도 역시 나와 같이 지붕으로 가는 통로를 찾느라 분주했다. 나는 3층 통로에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문을 간신히 찾았다. 그러나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내가 내려오는 데 역시 백인 남자 여행객 2명이 올라오면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느냐고 묻는다.

내가 "closed(닫혀있다)"고 하자 그들이 "oh, the door is locked(오, 문이 잠겨 있네)"이라고 말한다. 나는 속으로 "그래 이 경우에는 출입문의 열고 닫는 행위보다는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어 못 올라가니까 'closed'라는 표현보다는 'locked'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라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실수를 통해 실용영어도 배우게 된다.

왕궁 한 가운데 지어져 있는 사자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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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파괴되고 성벽 일부가 파손된 이야수 1세 황제의 궁전 ⓒ 임상권

파실라다스 궁전을 나오면 바로 옆에 요하네스 1세 황제의 아들인 이야수 1세 황제가 세운 3층짜리 이야수 궁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붕의 모양이 말안장과 비슷해 '말안장의 궁전'이라 불리는 이야수 궁전은 과거 베네치아 거울과 황금 채색, 상아, 아름다운 벽화 등의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솔로몬의 성보다 더 아름답다는 찬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1704년의 지진과 1940년대 곤다르를 점령하고 있던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몰아내기 위한 영국군의 폭격으로 화려한 내부 장식은 거의 모두 사라졌을 뿐 아니라 궁전의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일부 성벽도 허물어져 쇠락한 왕국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야수 궁전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다위트 3세 황제의 행사장 건물, 바카파 황제의 궁전과 연회장, 터키식 목욕탕, 교회 등을 볼 수 있다.

여행객들이 궁전에 묻혀 지나치지만 에티오피아 역사와 황제들의 정통성과 관련해 중요한 유적이 바로 사자의 우리다. 곤다르 왕궁에는 황제들이 기르던 사자의 우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자의 우리는 왕궁에서도 한 가운데에 지어져 있다. 왜 왕궁에 귀여운 원숭이가 아닌, 무서운 사자를 기르는 철제 우리를 만들어 놓을 것일까. 바로 에티오피아 황제들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역대 황제들은 스스로를 왕 중의 왕, 유다의 사자(Lion of Judah)라고 불렀다. 성경에서 구세주, 즉 메시아는 하느님의 어린 양(Lamb of God)과 정복자 사자(Conquering Lion)의 두 얼굴로 나타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온 것이고 에티오피아 황제들은 정복자 사자, 또는 정의의 지배자 사자로 온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던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적 전통에 따라 황제 자신을 성경 속의 이야기에 포함시킴으로써 왕권을 신격화하려 했다. 왕권은 성경 속, 즉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을 나타냄으로써 이른바 왕권신수설을 주장했던 것. 유다의 사자를 상징하는 동물인 사자를 왕궁에 길러 황제 자신의 정통성과 권력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가 지난 1930년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대관식 연단 밑에 살아 있는 네 마리의 사자를 가져다 놓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궁전의 비밀통로, 음습한 권력 음모와 배신 보여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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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파 황제의 궁전-왼쪽은 마구간이고 오른쪽은 연회장으로 사용 ⓒ 임상권

이야수 궁전에서 바카파 궁전으로 올라가는 담벼락과 성안의 궁전에는 미로같이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비밀 통로와 문이 있는데, 곤다르 왕국의 음습한 권력투쟁을 연상하게 한다. 권력의 중심인 왕궁에는 어디나 음험한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곤다르 왕국은 이야수 1세 황제가 아들에 의해 살해된 뒤 왕국은 권력을 둘러싼 암살과 살해, 배신과 반란 등이 들끓었고 점차 암흑의 시대로 빨려 들어갔다.

에피오피아 역사가들도 곤다르 왕국의 말기를 구약성서의 판관기에 나오는 '심판의 시기'와 같은 무법과 무질서의 암흑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한때는 영광을 누렸으나 쇠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곤다르 왕궁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런 신비한 왕궁의 모습들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갖고 간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마구 눌러댔으나 나중에 재생화면을 보니 웬일인지 거의 찍히지 않았다. 평소 카메라 색맹인데다 작동 요령을 익히지 않고 여행을 떠나다보니 기본적인 조작을 잘못한 것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곤다르 왕궁의 모습이 생생한데 정작 사진기에는 왕궁의 모습이 2장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플래시를 작동하지 않고 실내에서 사진 찍는 기본적인 방법조차 모르는 등 사진기 조작 미숙으로 여행내내 곤욕을 치렀다.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반드시 최소한 사진기 작동 요령은 알아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얻었다.

더운 날씨에 오래 걷다보니 목이 말랐다. 4비르를 주고 물 한통과 5비르 어치의 오렌지 과일을 샀다. 곤다르 왕궁의 뒷문 밖에는 길가에 과일가게가 줄 지어 서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그동안 더렵혀진 바지와 속옷, 양말 등을 빨아 안마당의 빨랫줄에 널었다. 햇살이 뜨겁게 내려쬐니 바로 말랐다. 이 숙소는 왕궁 터가 가까운데다 안마당이 넓고 빨랫줄이 걸려 있어 배낭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배낭여행에서는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 수시로 자신의 옷을 빨아 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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