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대통령은 누구인가?

[지역언론 별곡-169] 저널리즘에 투영된 '대통령담론'들

등록 2007.01.12 15:22수정 2007.01.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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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언론이 벽두부터 함께 바빠졌다. 대통령의 개헌제안 발언이 거센 역풍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통합과 희망을 강조한 신년사에 이어 불과 며칠 만에 던져진 '개헌의제'가 분열과 갈등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마치 크레모아 격발기를 누른 순간 불어 닥친 후폭풍과도 같다. 앞뒤 전후좌우 구분 없이 막막하다. 미디어 메시지는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온통 집중돼 있다. 현상을 분석적으로 고찰하는 틀을 제공하기 보다는 표현방법과 시기에 문제가 있음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거친 표현들도 눈에 띈다. 진정성보다는 정략적이라고 못 박는 보수채널은 해독기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진보채널과 지역채널들도 대통령저널리즘에 관한 한 더 이상 상관조정기능에 한계를 느낀 모양이다. 보수채널과 궤를 함께 하는 모습들이다.

때 되면 이슈 챙겨주는 '참 좋은 대통령'?

a 조선일보는 12일 사설에서 '개헌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이야기하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12일 사설에서 '개헌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이야기하라'고 주문했다. ⓒ 조선닷컴

여느 때 같으면 연두기자회견에 초점이 모아질 때다. 대통령이 신년 연두기자회견을 갖고 국정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힐 시기다. 장밋빛 청사진으로 가득차야할 지면과 영상은 대통령 발언파문과 말꼬리 잡기로 얼룩져 불신과 불화가 고조되는 시점이다.

지난 9일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뼈대로 한 '원포인트 개헌'이 빌미를 제공했다. 나흘 연속 신문의 1면과 사설, 해설은 '개헌' 문제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방송사들도 정규뉴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토론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의 개헌제안을 주요 의제로 삼고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때 되면 이슈를 챙겨주곤 하는 참 좋은 대통령'으로 내비칠 정도로 신년 대통령 화법은 당분간 파생의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선에 문제가 생겼다. 변화인가, 반란인가. 화들짝 놀라게 한건 오히려 보수가 아닌 진보다.


개헌이 사실상 물 건너간 듯 태연한척하면서 압박을 가하는 보수언론에 비해 거센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쪽은 진보와 지역이다.

<한겨레신문> 12일자 사설에서 묻어난다. '개헌론, 여론지지 없으면 접는 게 순리'란 제목에서다. "여러 상황을 따져볼 때 노 대통령이 개헌론을 더는 밀어붙이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정치는 현실인 모양이다. 이 사설은 "아무리 뜻이 좋고 내용이 옳더라도 여론이 수용하지 않으면 접을 줄 아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자 용기"라면서 "현 제도의 문제점과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0일자 사설 '개헌, 당리당략 아닌 국익차원에서 논의를'에선 "5년 단임제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여야는 당리가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개헌 문제를 차분하고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그게 성숙한 정치"라고 했던 <한겨레>다.

경향·한겨레, 사설서 개헌정국 부정 '눈길'

a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우회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우회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 동아닷컴

<경향신문>은 10일 '4년 연임제 개헌보다 시급한 것'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원포인트 개헌'이니 '개헌의 최적기'니 하는 구호만 앞세울 게 아니라 개헌 자체에 대한 국민의사부터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정당체질과 문화로는 아무리 그럴 듯한 권력구조를 짠 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더니 다음날 사설 '개헌정국 빨리 끝내야 한다'에선 "현실성 없는 문제를 무한정 소모적 논쟁으로 끌고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략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반면, <조선> <동아> <중앙>은 수위를 낮추며 은근히 우회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조선>은 12일 사설 '개헌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이야기하라'에서 뜬금없이 수학과 과학교육을 들고 나섰다. 사설 말미에서 <조선>은 "대한민국 대통령 입에서 난데없는 개헌 이야기가 아니라 수학과 과학교육의 혁명이란 국가 백년대계에 관한 소신을 들을 기회는 영영 없는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런가 하면 이날 <동아>는 '대통령, 개헌보다 '하이닉스 이천 투자' 되게 해야'라는 사설에서 "지금 시급한 개혁은 기업을 옥죄는 사슬을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설은 "노 대통령은 국민이 반대하는 개헌에 매달리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개헌보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이천 투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개헌 논의로 국력을 허비할 게 아니라 하이닉스의 이천 투자 허용으로 진정한 개혁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은 '더 이상 개헌 문제로 국민 피곤케 말라'는 사설 제목대로 개헌논쟁을 현 정권에서는 접자는 논리를 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언론이 한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보기 드문 사례다.

가급적 대통령을 화나게 하지 말자?

그러나 우연의 일치일까. <중앙>의 지난해 연말 칼럼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12월 27일 '대통령의 '막말' 대처법'에 관한 칼럼이 나오면서부터 보수언론의 날선 공격은 우회전술로 바뀌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칼럼은 "우선 대통령의 말에 국민이 좀 둔해질 필요가 있다"며 "공연히 민감하게 반응해 봤자 국가적으로 에너지 낭비"라고 하면서 대처법을 제시한 바 있다.

"대통령을 너무 코너로 모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특히 임기 말의 레임덕이라고 깔보고 밀어붙이려다가는 큰 낭패를 부를 것이다. 오히려 마음 느긋하게 먹고, 잘한 것도 많다고 추켜 주는 것이 대통령의 막말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심리상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는 이 대처법은 한 템포 늦춰가자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이 칼럼이 경계하는 대목은 "대통령이 실력이 늘었다는 점을 명심하자는 것"이다. "가급적 대통령을 화나게 하지 말자"는 칼럼 말미 강조구절은 이후 보수언론의 색채에 투영된 듯하다.

지역언론, 모양은 같으나 색깔만 다를 뿐

a 임동욱 충주대교수의 기고문이 지역신문에 공동으로 실렸다.

임동욱 충주대교수의 기고문이 지역신문에 공동으로 실렸다. ⓒ 부산일보

지역언론들도 전체적인 모양은 같으나 무늬와 색채만 약간 다르다. 일자리 창출과 지방분권 등 참여정부가 끝내야 할 일이 더 급하다는 논리다. 지역신문 사설을 들여다보자.

<부산일보>는 12일 사설 '국민 여론은 개헌할 때가 아니라는데...'에서 개헌 논의가 소모적 정쟁에 치우쳐 민생의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올 상반기 동안 개헌 논쟁이 계속될 경우 민생 경제는 뒷전에 밀려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이 사설은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제신문>도 '여론지지 없는 개헌추진 강행할 건가'란 이날 사설에서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에 전념해 나라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보다 노 대통령 스스로 개헌 제안을 거둬들이는 것이 국민을 가장 안심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남일보>는 일찌감치 10일자 사설 '대통령 연임제 논의해 볼 만하지만…'에서 "개헌이 '미래를 위한 국가적 과제'라고 생각했다면 시기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며 "다만 8%대의 낮은 국정지지도와 부동산정책, 민생 어려움, 양극화 등 실정에 대한 국면전환용 카드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우려했다.

<매일신문>은 12일 '개헌이 아니라 일자리가 필요한 때'란 사설에서 "개헌 논의는 국회에 넘기고 경제에 전념하면서 임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반문한 뒤 "지금 국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좋은 헌법'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다"고 강조했다.

<대전일보>도 이날 '대통령 '개헌예찬' 끝을 봐야 직성 풀리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주창해온 대통령이라면 민심의 소재지를 정확하게 짚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도일보>는 '투정과 말싸움으론 개헌 어렵다'란 사설에서 "대통령 자신의 개헌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땐 임기 단축이라는 무기를 꺼낼지도 모른다고 국민들이 의심하는 한 대통령은 콩으로 메주를 쑤기도 어렵게 된다"고 분석했다.

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는가?

a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 박주현

이밖에 <부산일보>와 <매일신문> <대전일보> 등 지역신문에 공동으로 실린 임동욱 충주대 교수(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의 '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는가'란 글이 시선을 끈다.

임 교수는 공동기고문에서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탄핵을 비롯해서 정치에 관한 한 지금의 대통령은 메가톤급 뉴스제조원"이라며 "한 해를 시작하는 달에 대통령발 초대형정치 뉴스를 접하고 나니 올해 말 새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중요하게만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그는 또 "내년은 이러한 대한민국이 건국 60년을 맞는 해이니 올해에는 이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며 "세계 최빈국의 하나에서 출발해 빛나는 성공을 거두며 발전한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은 제3의 도약을 창출하려면 무엇보다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노무현과 자존심', '노무현은 배신자', '노무현 살리기', '노무현 죽이기' 등에서 '노무현화법'과 '노무현학'을 한국학으로 발전시켜 온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차제에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볼까.

강 교수는 지난 1월 8일 <새전북신문>에 기고한 글 '소통의 죽음'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대통령이 말이 많다는 비판은 이젠 방송뉴스를 넘어 전국민적 상식이 되었다. 노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노무현 시대'는 훗날 지금보다는 더 나은 평가를 받겠지만, '소통의 죽음'이라는 꼬리표마저 떼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23일 <한국일보>에 실린 강 교수의 칼럼 '바보 노무현과 교주님 노무현'에서는 "노무현만 보아선 노무현이 보이질 않는다. '노무현학'을 '한국학'으로 발전시키는 슬기를 발휘하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훗날 노무현 대통령은 그가 걸어온 '역사'와 '자질'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에 관한 연구가치가 충분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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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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