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우리집 옥상에 화초전(그림 쏙에 그림).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을 다 날릴 위기에서 극적으로 경매를 받았다. 이젠 세탁소 한 구석을 벗어나 옥상에서 아버님은 그림도 그리고 어머니는 화초를 가꿀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당신은 크고 어머니는 작게 그려져 있다. 여기도 누렁이가 끼어 있네...류해윤
행사가 끝나고 남편 동창 내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2차를 갔습니다. 누군가 어머님이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았는데, 고맙다는 말만 하셨다는 말을 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야말로 수고했다는 말을 들어야 할 분이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건 정말 그렇다. 아버지가 옷가지 몇 개 다려놓고 '됐지?'하고 옥상 작업실로 올라가버리면, 엄마는 '그래. 가소'라고 말하며 올려 보내고는 옷을 다시 다 내려 바지 주름도 다시 잡고 하는 거야.
아버지는 그림에 몰입하면 그만인 분이지만, 엄마는 그럴 수가 없어. 엄마는 세탁 일에만 갇히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은 분이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 감내하며 뒤에서 다 감당해 오신 분이지.”
세탁소를 하는 어머니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을 감내해왔다는 뜻입니다. 남편은 세 아들 중 어머니의 딸 노릇을 해왔다 할만하기에 이렇게 어머니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이 공사다망한 일로 격무에 시달리는 가운데도 어머니한테 다녀오고 종종 긴 전화로 어머님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상담 상대가 되어줄 때, 저는 남편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그만큼 남편에 대한 나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속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남자들에게는 없는, '딸 노릇'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성과 능력, 맘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점은 제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입이다.
남편을 두고 주변에서는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남편은 감성과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인데, 그건 바로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되었을 때나 형사들의 감시를 받을 때, 어머니는 형사들에게 조금도 꿀림 없이 그들을 감당해내고 많은 학생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답니다. 지금도 가끔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한 마디씩 하는 것을 들으면 그 통찰력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의 감성이 세상을 더 의미 있게 살도록 노력하게 만들어 왔고, 그래서 제게는 더욱 든든합니다. 제가 그에게 잘 설명하면 무엇이든 그가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그가 남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출중한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그런 감성과 직관력을 물려주고 계발해주신 어머님을 좋아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효부냐 하면 절대 그렇지는 못합니다. 만약 며느리로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곁에서 시부모를 모시는 형님(큰 동서)이라 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싫은 소리 안하고 하고 싶은 말은 편히 드릴 수 있게 받아주고 이해해주시는 편이라, 제가 어머니를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정도이지요.
얼핏 본 어머니 눈물 이야기, 한동안 코끝 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