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효자보다 악처'란 말이 생각났을까?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등록 2007.01.16 14:59수정 2007.01.1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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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바뻐?"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친정 전화번호를 눌렀는데,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동생이 받더니 대뜸 하는 소리다.

"너, 거기 왔니?"

아들네와 함께 살면 서로 불편하다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웃에 따로 사시는 부모님이시다. 그런데 평일에 동생이 느닷없이 친정집 전화를 받는 것이다.

직장생활 때문에 늘 바쁘다며 집안 행사에 제대로 참석 못하는 누나인 내게 바쁘냐고 물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안 바쁘면 들르라는 동생의 말을 들어보니 친정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거다.

@BRI@평소에는 팔순의 연세에도 늘 건강하셔서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청춘"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깜짝 놀라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했더니,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한다. 경황이 없어 집 단속을 못 하고 병원에 가서 이제 막 돌아와 전화를 하려던 중에 내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며칠 감기 기운에 입맛이 없다고 하시긴 했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숨을 못 쉬시며 피를 토하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충북 충주에 있는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하고, 응급차량으로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하기까지의 급박했던 일을 듣다 보니 나도 몰래 식은땀이 난다. 나중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더 걸작이다.


"힘들어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히 돌아가실 거지…."

너무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안쓰러워 그런 생각마저 하셨다고 딸인 내게 말씀하셨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한 번도 큰소리를 내신다거나 다른 의견으로 다투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어른이 되어 농담으로 "엄마는 우리 안 볼 때 어디 가서 아버지하고 싸우시나?" 했을 정도다. 자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한 아버지였지만 엄마에겐 다정한 지아비였음이 틀림없다.

a 건강하실 때의 부모님 모습

건강하실 때의 부모님 모습 ⓒ 허선행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원주행 버스를 탔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겼기 때문에 면회시간에 맞춰 오라고 해서인지 버스가 더욱 더디게 느껴졌다.

오후 12시부터 30분간만 면회가 된다고 했는데, 고속도로가 밀려 오후 12시 10분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외투를 벗고 손을 씻은 후 가운으로 갈아입고 아버지 성함이 적힌 이름표를 달고 가리키는 쪽으로 가니, 거기에는 생판 남처럼 보이는 웬 할아버지가 누워 계신다.

평소에 건강하시던 우리 아버지가 바짝 마른 몸으로 산소 호흡기까지 꽂고 누워 계시니 못 알아볼 정도다. 복받치는 설움을 참고 내 딴에는 활짝 웃는 얼굴로 아버지를 대했다.

겨우 모기만한 소리로 "어떠세요?"하니, "난 괜찮다. 바쁠 텐데 여기까지 오느라고 애썼다"며 오히려 나를 걱정하신다. 의식을 찾은 아버지를 뵈니 속으로 조금 안심은 되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다 그런 건가. "내가 아픈 게 낫지, 자식 힘든 건 못 본다"며 서로 중환자실 대기실에 있겠노라며 자식과 옥신각신한다.

"엄마까지 병나면 우리는 어떡하냐?"는 아들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돌아서는 엄마! 잠깐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도 병실을 여러 번 돌아보며 걱정을 하시는 모습에서 왜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는 말이 생각나는 걸까?

오늘도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근무를 하고 있다. 전화로만 아버지의 상태를 물었을 뿐이다.

응급차량에서 병원으로 후송할 때 아버지 신발을 못 챙겼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머니! 신발을 찾으러 갔던 병원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신발이 섬뜩하기조차 하더라며 다시는 그곳에서 신발을 찾지 말아야겠다고 하신다.

"제가 편한 신발로 사 드릴게요."

하루빨리 아버지의 병환이 회복되길 마음뿐인 딸이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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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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