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보는 성서 인물>한울
사람은 책을 읽으며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배우기도 하고 예전부터 가진 생각이 옳았음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같은 책을 보고도 생각의 한계를 깨고 더 큰 세상에 눈을 뜨기도 하지만, 편협한 생각을 더욱 옹졸하게 붙들어 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류의 경전 <성서>라고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도 결국 나약한 인간이 읽기 때문이다. 나를 바꿔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던 바로 그 성경인데, 파고 파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달고 오묘한 말씀'이었고 나의 골수를 쪼갰던 말씀인데, 어느 순간 내 생각에 맞는 구절만 들어온다. 내 머리 속에 그려놓은 길로만 성서를 끌고 간다. 내가 성경 위에 군림한 순간이다. 나를 뒤집고 내 생각을 엎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민중신학자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가 쓴 <뒤집어보는 성서 인물>은 우리에게 익숙한 성서 속 인물들을 새롭게 보도록 인도하는 책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다시 성경을 읽어도 새롭게 만날 수 없는 오래된 연인 같은 인물들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끄집어낸다.
최 목사가 소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좇다보면, 어느새 '그이에게 그런 면이 있었어' 하는 탄식이 새어 나온다. 최 목사는 영웅으로만 가둬 놓은 인물의 고뇌와 절망을 읽어내고 용서할 수 없었던 악인의 행동에 연민의 눈길을 던지도록 우리의 성서 이해를 재구성한다.
우리와 너무도 닮은 성서 인물을 들춰내는 이유
성서는 애초부터 인간이란 그 누구도 홀로 온전한 존재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가 한사코 아브라함을, 모세를, 다윗과 솔로몬을 우리와 다르다고 보았을 뿐이다. 최 목사는 성서 속 인물은 우리와 다를 것 없다고 말한다.
우리를 닮은 성서 인물들을 거들떠보면서 우리를 되돌아보자고 하면서. 최 목사가 각 인물을 소개하는 서두마다 우리 시대의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도 성서 속 인물이 우리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공을 이루고 떠난 기드온에게는 대기업을 이루고 세습하지 않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 창설자 유일한 선생이, 바알의 시대 민중과 함께 꿈을 꾸며 살았던 엘리야에게는 실패한 정치인이지만 성공한 이승만보다 더 깊게 민중의 가슴에 남은 김구 선생이, 만악의 근원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걸었던 지도자로 재평가한 여러보암에게는 서구 기독교가 악마의 화신으로 몰았던 드라큐라 백작이, 영욕의 두 얼굴을 가진 다윗에게는 국민 인기투표 1위를 달리지만 독재자로 낙인찍힌 박정희 대통령이 짝패로 등장한다.
@BRI@최 목사는 구약 시대 20명의 인물을 다섯 명씩 네 개의 주제로 묶어 소개한다. 1부에서는 우리에게 늘 모범 답안으로 다가왔던 인물들-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엘리야 요시야-을 '꿈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다룬다. 신앙의 조상에게서 길 떠나는 방랑자를, 민족의 영도자에게서 때를 기다리며 낯선 땅을 떠도는 나그네를, 전환의 시기를 살았던 거인에게서 옛 시대와 새 시대의 모순을 발견한다.
2부에서는 우리에게 한 쪽 이미지만 각인된 인물-야곱 다윗 솔로몬 여로보암 예레미아-의 다른 면을 재발견한다. 그래서 이 장의 주제는 '뒤집으면 보이는 진실'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메마르다 규정하고, 솔로몬을 사랑을 만끽한 것 같으나 사랑에 굶주린 사람으로 바라본다. 게임의 규칙을 늘 얄밉게 어기며 인생을 쟁취한 야곱에게서 소수만이 특권을 누리는 '정상 사회'의 룰 자체를 뒤집는 낮은 자의 지혜와 용기를 캐낸다.
우리 생각을 뒤집어야 보이는 성서 인물의 진실
'내가 선 자리에서'라는 주제가 붙은 3부는 기드온 엘리사 이사야 느헤미야 요나를 내세워 자기가 선 자리와는 상반되는 듯한 역할을 감당한 인물이나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역할을 맡은 인물, 모순인 듯한 개성이 복합되어 있는 인물을 이야기한다.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지도자 엘리사를 그리는 것은 오늘 우리 삶이 각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식견을 믿고 권력의 울타리에 뛰어든 지식인이 권력에 포섭되기를 반복한 현대사를 가진 우리에게 현실에서 권력의 한복판에서 '뼈 아픈 고통을 동반한 내부자의 질타'를 퍼붓는 이사야는 희망이고 꿈이다.
4부는 '영욕의 여인사'라는 이름으로 다말 미리암 드보라 에스더, 그리고 룻과 나오미를 다룬다. 억센 여성의 상징이었던 다말을 '구차함을 강요하는 남성들의 음모를 통쾌하게 뒤집어엎는 주인공'으로 설명하고, 배신자 이단자의 멍에를 뒤집어 쓴 미리암을 민족 해방의 공동 지도력으로 복원하며, 룻과 나오미는 인종 차별과 출신의 한계를 거뜬하게 넘어서 자기 운명을 개척한 여성들의 연대로 풀어낸다.
성서는 습관과 싸우며 읽어야 한다
스무 명의 인생길 이야기를 편하게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최 목사의 말처럼 기독교의 교리적인 전제에 억매이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자신이 보기에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봉착해도 가능하면 그에 대한 서술을 피하려 했다고 말했다. 쉽게 이야기하려는 노력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 목사가 발표하는 글과 설교는 다른 민중신학자의 글에 비해 늘 쉬운 편에 속했다. 민중신학자이지만 민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민중을 이야기하고, 교회를 위한 학문을 한다는 신학자가 교회 공동체적 삶에 무심한 우리 시대 종교 지식인을 많이 보아서일까. 신학적 성찰을 담고도 쉽게 쓰려는 노력이 베인 책이 무척 반갑다.
최 목사가 뒤집은 것은 우리의 통념이다. 그렇게 해서야 성서의 진실이 보인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뒤집어진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으려는 고통스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더 많은 이들과 소통을 바라며 쉽게 쓰고 말하려고 노력한 지식인처럼, 우리도 단어만 봐도 결론부터 떠오르는 습관과 싸우며 성서를 대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뒤집어보는 성서 인물 (반양장)
최형묵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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