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고건 불출마'를 막지 못했나"

고건 최측근 김용정씨 "작년 연말 마음 굳혀... 리더십의 한계"

등록 2007.01.17 14:14수정 2007.01.1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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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6일 오후 대선불출마를 선언한 고건 전 총리가 지지자들의 반발로 인해 기자회견을 못한 채 승용차를 타고 여전도회관을 떠나는 가운데, 한 지지자가 기자회견장에서 "불출마선언은 무효"라고 외치고 있다.

16일 오후 대선불출마를 선언한 고건 전 총리가 지지자들의 반발로 인해 기자회견을 못한 채 승용차를 타고 여전도회관을 떠나는 가운데, 한 지지자가 기자회견장에서 "불출마선언은 무효"라고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전격적인 것이었다. 16일 뉴스속보를 통해 알게 된 그의 지지자들은 "지난 2년을 우리가 어떻게 해왔는데,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럴 수 있는가"라며 기자회견장을 막아섰다. 고 전 총리는 이 같은 상황을 예상했던 것 같다. 미리 준비한 성명서와 예상되는 질의응답지를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형식으로 끝내 불출마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새해 첫날, 전직 대통령 예방 일정을 소화한 이후 2일부터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만남은 가져왔다. 측근 참모들과 가까운 정치인들과는 접촉을 지속했다. 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고 전 총리는 이미 작년 연말께 불출마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마음을 그렇게 몰고 간 결정타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회견장 진입을 막아선 지지자들에게 "평생 죄를 짓고 간다"고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 이유 말이다.

고 전 총리의 육성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 그는 현재 지방 모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준비한 회견문에서 "기존 정당의 벽이 높아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간접적으로 정치인들에게 대한 실망감도 전했다. 민영삼 공보팀장은 "정치인들이 날 이용하려고만 한다"는 고 전 총리의 말을 전했다. 연초 그를 독대한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은 '돈 문제'를 토로하더라고 전했다. 대통령 후보가 된 뒤 후원회를 조직할 수 있는 현실 정치의 여건상, 외곽의 후보의 진입장벽은 높을 수밖에 없다.

"고건 전 총리, 연말 벌써 마음 굳힌 것 같았다"

@BRI@누구보다도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해온 김용정씨(다산연구소 이사)에게 물었다. 그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고건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17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김씨는 "연말에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며 "그동안 괴로운 마음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을 간파한 김씨 역시 지난 연말부터 괴로운 마음에 술자리가 잦았다. 그런 와중에도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종 결정은 14일께 났다고 한다.

"고건 전 총리는 국민대통합 신당을 만들려고 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면서도 현실정치의 폐해를 극복하는 신당이어야 성공한다고 봤다. 따라서 자신과 열린우리당 일부, 민주당, 국민중심당 수준의 '소통합'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완전한 헤쳐모여식 신당을 만들어야 국민에게 감동을 생각이 확고했다. 그래서 원탁회의를 띄우기도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나는 일단 '소통합 수준의 독자신당을 띄우고 나서 대통합의 과정을 밟아 가면 되지 않냐, 긴 싸움이다'라고 설득했지만 안됐다."

아직 대선까지는 시간이 적지 않게 남았다. 왜 시간을 좀더 견디지 못한 걸까? 김씨는 "떠난 사람 비난할 생각은 없다"고 전제한 뒤, 조심스럽게 '고건의 리더십'을 지적했다.


"빨리 결정을 내린 것은 역시 고건답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설사 대선에서 진다하더라도 새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절박감, 각오가 있다면 지지율 저하가 무슨 이유가 되겠는가. 1% 후보들도 버티고 있지 않나. 결국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우선 설득의 리더십이다. 현실정치에 좌고우면하면서 '정치인들이 날 이용하려고만 한다'는 푸념은 자기 위로밖에 안 된다.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을 견인하려면 비전과 논리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과감하게 행동해 자신의 뜻을 대세로 이끄는 게 정치인의 덕목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낀 것 같다. 리더십의 부재와 함께 온몸을 던지겠다는 사즉생의 각오가 부족했다."



고건 전 총리의 선택에 대해 '엘리트주의 한계 아니냐'라는 지적도 들린다. 그는 총리까지 해본 행정가로서, 특정세력과 척을 지거나 자기 이력에 흠집을 내지 않아왔다. 김씨는 "본인이 판단하기에 명예퇴진이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70 평생 쌓아온 이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리더십 부재, 사생즉의 각오 부족이 불출마 선언으로"

김씨가 "꼭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느냐, '장렬한 전사' '아름다운 패배'도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설득했지만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정치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건 전 총리는 준비한 회견문에서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제3 후보나 선거용 정당 설립의 전철을 결과적으로 초래해선 안 된다"고 말한 대목과 닿아 있다.

30분여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김씨는 "지지자들은 물론 국민과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라며 "비참한 죽음" "정치적 자살행위" "장례절차" 등의 격앙된 표현들도 나왔다. 그만큼 이번 결정이 지지자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을 터. 김씨는 "어찌 보면 잘 한 결정이다"며 "다른 제3의 후보에게 기회가 되지 않겠냐"고 반어적으로 말했다.

미래와 경제, 희망연대, 중청련, 고건피플, 우민회 등등 '고건 대통령 만들기' 조직은 아직 해체를 선언하지 않았다. 김씨는 "오늘 오후에 대표자 회의가 있다"며 "고건은 뜻을 접었지만 우리는 '중도신당'의 깃발을 내릴 수 없다. 뜻을 접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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