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왕의 남자> 아카데미 탈락 예견됐다

아카데미위원회 16일 발표 후보작서 탈락... <괴물> 추천했어야

등록 2007.01.20 16:08수정 2007.01.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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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2006 한국 영화계를 빛낸 두 개의 걸작 <왕의 남자>와 <괴물>은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에서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후한 점수를 받으며 한국영화가 '끝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음을 입증했다.

영화 <왕의 남자>는 '안방극장용'이라는 사극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120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을 뿐만 아니라, '동성간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다소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소재를 해학적인 각본과 역사적인 주제로 융화시켜 작품성을 무한대로 끌어올렸다.


영화 <괴물> 역시 5개월만에 <왕의 남자>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국내 3D 영상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입증함과 동시에 화려한 영상, 긴장감 넘치는 각본, 정치적 풍자라는 삼박자를 절묘하게 가미해 영화 최고의 완성도를 이루었다.

이 두 작품은 2006년 국내 양대 영화제인 '대종상영화제'과 '청룡영화제'를 휩쓸고 세계로 눈을 돌려 '한국 대표 아카데미상 후보 진출권'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왕의 남자>, <괴물> 아카데미상 진출 놓고 막판까지 접전

결과적으로 한국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안정숙)는 '정치적(반미적) 요소'를 지니고 국제단체와 언론, 미국을 비판한 <괴물> 대신 전통과 현재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외국에 한국 문화 전파를 할 것으로 본 <왕의 남자>를 출품했으나 16일 발표된 1차 후보작 9편에 들지도 못하는 망신을 당했다.

a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왕의 남자>의 한 장면

문제는 이것이 몇 년째 되풀이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마유미>(신상옥 감독. 1991),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정지영 감독. 1995), <춘향뎐>(임권택 감독. 2000), <오아시스>(이창동 감독. 20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 2004), <웰컴투 동막골>(박광현 감독. 2005)등 국내와 유럽권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을 줄줄이 출품했지만 수상은커녕 후보로 지명된 작품조차 없다.

이에 따라 '작품의 미학적 질이나 상업적 잠재력보다는 아카데미 노미네이션 가능성을 중심에 두었다'는 진흥위원회측의 설명과 후보작 선택이 일치하는지에 커다란 의문이 남는다.


세계의 영화제는 각기 독특한 색깔과 취향이 있다.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 모스크바 영화제 등 유럽권에 출품하는 영화들 역시 이러한 영화제의 '색깔'을 보고 출품하고 주최측 역시 심사위원들을 그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인들로 선출하고 있다.

<씨받이>와 <서편제> 등 전통을 소재로 한 우리 영화가 이런 유럽 영화제에서 경쟁력이 있음이 입증되었고 <올드보이>와 같이 실험적인 작품 역시 유럽에서 환영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스카상(아카데미상을 달리 이르는 말)은 다르다. 이번 제79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1차 후보로 뽑힌 9편을 보아도 아프리카 알제리의 <영광의 날들>을 제외하고는 캐나다의 <워터>, 덴마크의 <애프터 더 웨딩>, 프랑스의 <애비뉴 몽테뉴>, 독일의 <다른 사람들의 삶>, 멕시코의 <팬의 미로>, 네덜란드의 <블랙 북>, 스페인의 <귀향>, 스위스의 <비투스> 이렇게 아메리카 대륙 또는 유럽 영화다.

이는 '너무 이질적'이거나 '잘 모르는 것'에 무관심한 미국인의 특성상 할리우드 입맛에 맞춰 영화를 보내야 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카데미상 한국 작품 후보로 최종 선택한 세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김기덕 감독의 <시간> 중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괴물>이었다.

영화제 특성이나 영화 소재로 볼 때 미국 아카데미상 – <괴물>, 프랑스 칸 영화제 – <왕의 남자>, 독일 베를린 영화제 – <시간>을 출품하는 것이 정석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상품성과 흥행을 중시하는 미국 시장을 고려해도 이웃나라 일본에서마저 최근 흥행에 실패한 <왕의 남자>보다는 국내 관객 동원 1위를 한 <괴물>을 출품하는 게 옳았던 것이다.

아카데미 특성 파악 못한 채 출품

아카데미상 후보 지정 심사위원들이 61편의 후보작 중 <왕의 남자>에 깔린 자막을 보며 '연산군과 모친' 등의 역사적 사건들과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다.", '인형 놀이 장면' 등의 해학적 철학, "종 4품의 벼슬은 너무 낮지 않나요", '벽보 장면' 등의 번역상 한계, "장님인 게 그리 좋니?", "(왕에게)그놈 얘기 한번 들어 보겠느냐?" 등의 풍자 등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그들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보는듯한 장면들을 어떻게 이해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영화 자체의 내용이 50%라도 전달되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마 영화 상영 30분 정도 지나 모두 '오 마이 갓(Oh my god)'하며 탈락시켰을 것이다. 단시간 내에 61편 중 9편을 우선 추려야 하는데 각 영화별로 배경공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들의 무식을 탓할 수 있으랴!

a <괴물>의 한 장면

<괴물>의 한 장면

확실한 '반미', '반제국주의', '실제 사건 배경', '공감 가는 유머', '할리우드 이상의 영상 효과', '가족이란 소재(미국에서 가족 영화는 시상이나 흥행에서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흥행률 1위 기록,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소재의 <괴물>로 할리우드 문을 두드리지 않았나 못내 아쉽다.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가 비판을 받는 마당에 '반미'라는 소재는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고 '색깔 없는 상업적 영화제'라는 오명을 탈피하고 싶은 아카데미 주최측에 오히려 '정치적'으로라도 이용 가능성이 있는 소재였다. 지레 겁먹고 '지네 나라 욕하는데 <괴물>은 힘들어'하고 <왕의 남자>를 선택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괴물'이 탈락했으면 '반미' 때문에 그랬구나 싶어 국내 영화인들이나 팬들이 이렇듯 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영화제용'과 '북미 영화제용' 더 나아가 '국내 영화제용'과 '아시아 영화제용' 영화를 분간 못 하고 유럽형 모델을 미국 기준에 막무가내로 출품해 '예정된'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안목 확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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