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당사수파는 개혁모험주의자"

[현장] 정동영 팬클럽 출범 대선출정식 방불... 김 빠진 사자후

등록 2007.01.21 20:06수정 2007.01.2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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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연합뉴스) 이상학기자 = 21일 오후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팬클럽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출범식 행사에서 정동영 전 의장이  팬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학기자 = 21일 오후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팬클럽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출범식 행사에서 정동영 전 의장이 팬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권노갑을 치던 정동영은 어디 갔나?'
'손학규가 여권 주자라니, 기가 막히다.'
'반성도 이제 지겹다. 당신의 정치를 보여라.'


최근 정동영 전 의장을 향해 던져진 질문들이다. 장고 속 더딘 행보를 보여온 정동영 전 의장이 동면에서 깨어났다. 5·31 지방선거 뒤 반성과 침묵 모드로 지내온지 7개월여 만이다. 대한(大寒)인 21일 그의 팬클럽인 '정통'(정동영과 통한 사람들) 출범식에 참석해 "앞으로는 정동영의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본인 자신도, 그의 참모들도 "바닥을 쳤다"는 판단이다. 당 진로를 둘러싸고 선도탈당, 전대무용론, 당헌개정 무효소송 등 당은 부글부글 끓고 있어도 그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지난 연말 김근태 의장을 만나 '분열 없는 신당'을 합의하는 선에서 울타리만 쳤고, 신년 초에는 용광로에 다 녹이자는 대통합의 상징 의식으로 포항제철소에 다녀왔다.

@BRI@두루뭉수리한 행보를 놓고 '정동영의 입장은 뭐냐'는 압박과 질문이 괴롭혔지만 본인의 표현대로 "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으로 말할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정통' 출범식에 앞서 인근 기사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이 저에게는 새 출발하는 의미가 있다. 물론 저를 지원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팬클럽('정통')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주로 침묵하고 때때로 현안에 대해 소극적인 발언을 하는 입장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어떤 경우든 제 이름을 걸고 정동영의 정치를 시작해야 하는 의미를 준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그가 정치에 입문한 지 12년째. 그는 "숱한 도전에 몸을 던져 응전했다"며 "때로는 실패, 때로는 성공했지만 실패해도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뛰었다"고 말했다. 그가 진단한 "절체절명의 위기"는 이렇다. 자신이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역사학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3.1 독립선언, 4.19 혁명, 5월 광주,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역사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역사성이 부정되고 잃어버린 10년으로 치부되고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낼 때 평범한 사랑들의 희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당헌 개정 무효소송은 해당 행위"


현안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기간당원제를 기초당원제로 바꾼 당헌 개정에 대한 무효 소송을 언급하며 "해당행위"라고 규정했다. 소수 기간당원에 의한 "지분과 기득권 투쟁"이라고 비난했다. "소수 개혁모험주의자"라고 칭했다. 당 사수파, 좀더 구체적으론 김두관 전 최고위원을 겨냥한 것으로 들린다.

그러면서 어젯밤 4시간 회의 끝에 나온 비대위 결정을 "마지막 비상구"라고 표현했다. 비대위는 내달 14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치르되, 오는 29일 중앙위원회를 다시 소집해 기초당원제를 골자로 하는 당헌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결정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마지막 비상구에서조차 소수 개혁모험주의자에 의해 좌초된다면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결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탈당 배수진인가? 그는 "글자 그대로 해석해 달라"고 말을 아꼈다. '29일 이후 탈당 결행'이라 해석하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그의 한 핵심 참모는 "정동영은 창당의 주역이고 어찌보면 장례식(열린우리당 해체)의 상주 노릇을 해야 할 입장인데 당장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명분 쌓기 과정으로 봐야 맞을 것 같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도 그의 발목을 잡는 문제다. 노 대통령은 개헌을 자신의 마지막 국정과제로 삼고 '올인'하고 있는 상황. 그는 "개헌의 방향은 옳다"면서도 "지금이 때가 아니라는 것 아닌가, 노 대통령이 주도권을 갖는 것이 문제라면 주도권을 바꿔야 한다"고 갈라 세웠다. 그러면서 "대선 예비후보들의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주도권은 국민과 국회에게 있다. 대통령의 발의권은 두 번째다. 국회의 발의권이 우선된다. 민주주의는 토론이 기본이다. 국가 장래가 걸린 문제를 한국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토론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2007년이 개헌 적기라는 말이 생생한데 그냥 설명도 없이 넘어갈 수 있나. 대선 예비후보들이 모여서 충분히 토론하고 국민의 뜻을 묻자."

'고건 불출마'를 계기로 호남에서 그의 지지도는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명박, 박근혜 뒤를 잇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김대중,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호남 민중의 선택을 지역주의로 말하는 것은 모독"이라며 "호남에서 정동영이가 개혁적 지지세력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즈음해서 나올 수 있는 질문. 대선 출마 선언인가? 그는 기자들에 앞서 재빨리 자문자답했다.

"다음다음의 일이다. 흩어진 여권의 전열을 모아 대통합을 이루는데 밀알이 되고자 한다. 백의종군의 자세로 밀알의 역할을 할 것이다. 끝내 썩어버릴 수도 있고, 밀밭의 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차후의 문제다."

그는 "대통합은 진화의 길"이라고 말했다. "진보는 끊임없이 변할 때 가치 있다"며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은 또 다른 수구일 뿐"이라고 당 사수파와 결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단은 "마지막 비상구를 통과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겠다"고 말했다.

역사, 평화, 복지... 모호한 정체성은 여전

하지만 명분을 현실화하는 단계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대통합'이라고는 하지만 고건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대통합이란 실질적으로 민주당과의 통합이다. '도로민주당'이라는 공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 반(反)한나라당 전선이라고 하지만 '한나라당에 어떤 비교우위를 갖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역사, 평화, 복지를 내걸며 차별화했지만 시쳇말로 꽂히지 않는다. 그는 "내가 제안한 실용적 개혁주의 노선으로 지지기반을 확충했어야 했다"고 통탄했지만 노선의 문제인지 주체의 문제인지 대중의 평가는 다르다. 그는 또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통합"을 말하지만 한나라당 주자들에서도 그런 얘기는 나온다.

'정통' 출범식으로 이동할 시간이 됐다. 그는 "오늘 다 얘기하면 내일 할 말이 없다"며 기자들과 자주 만나겠다고 했다. 최근 이사 온 서울 홍은동 집의 문도 열어놓겠다고 했다.

정통 출범식에는 2000명의 지지자들이 모였다. 김명자, 장복심, 장영달, 김현미, 정청래, 박영선, 박명광, 이미경, 채수찬, 정의용, 민병두, 김춘진 의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귤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상징수인 귤나무에 전국에서 떠온 흙과 물을 붓는 합수합토 행사도 가졌다. 동서남북 화합의 상징이란다. '델몬트 오렌지'와 대비해 "한국적 세계화를 상징한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김대중, 노무현을 탄생시킨 노란색은 귤색으로 진화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팬클럽은 몽땅 저리로(한나라당) 간 줄 알았는데 이 자리에 서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겨울에는 양지가 좋다. 지금은 야당이 양지다. 여러분은 스스로 음지로 걸어들어온 바보들이다. 하지만 세상 이치는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동영 전 의장은 또 한번 사자후를 토했다. 작년 2월 자신을 당의장으로 당선시킨 백범기념관에서 다시금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정동영의 말과 행동으로 평가하고 응원해 달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그의 참모들은 "김대중, 노무현을 합친 만큼의 열정적인 대중연설이었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또 "사실상 대선 출마선언 아니냐"는 기자들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곡소리만 나던 당에 간만에 징소리 북소리가 나서인지 모여든 사람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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