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버리고 혁명으로 가자

[태종 이방원 31] 흥국사에서 있었던 일

등록 2007.01.22 20:12수정 2007.01.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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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발톱을 발견한 하륜, "왕기를 잉태하겠소이다"

북쪽으로 송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남쪽으로 용수산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고을이 개경이다. 용수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이방원의 집이 있었다. 일직이 이방원의 그릇을 알아본 하륜이 친구 민제에게 이방원을 사위 삼을 것을 강력히 추천하였고 혼사가 성사되자 집터를 잡아준 사람이 하륜이다.


하륜은 이색의 문생으로서 이숭인, 정몽주 등과 같이 고려의 사직을 지키려는 학자들과 생각을 같이하여 이성계 일파로부터 핍박을 당하자 시름을 달래려고 몰입한 것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과 관상학(觀相學)이다. 이것이 불교와 도참설(圖讖說)을 배척한 정도전의 집중 견제를 당했다.

중앙권력으로부터 밀려나 세월을 낚으면서도 믿는 것이 있었으니 이방원의 용의 발톱이었다. 훗날 등극한 태종 이방원의 핵심 참모중의 참모가 하륜이다. 정도전이 조선을 설계했다면 하륜은 태종의 치세를 설계했다.

당시 개경에는 왕(王)씨, 전(田)씨, 강(康)씨, 고(高)씨, 김(金)씨 등이 서로 통혼하며 기득권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민제도 이들과 혼사를 맺어 권문세족에 진입하고 싶었다. 이때 이성계의 아들 방원을 강력 추천하며 "어은(漁隱)의 따님이 왕기를 잉태하리오"라고 천기를 묻어둔바 있다. 훗날 어은 민제의 딸은 세종대왕을 낳는다.

이방원이 명나라를 다녀오기 전에도 그의 사랑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명나라의 천자를 알현하고 돌아왔다"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더욱 많아졌다. 고려의 모든 정보는 방원의 사랑채에 모여 들었다.

귀중한 첩보에서부터 허접한 쓰레기성 정보에 이르기까지 가히 정보의 홍수였다. 이들 정보를 정리하고 분석하느라 방원의 참모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로부터 조선건국에 이르는 긴박한 시대상황에서 이방원의 사랑채는 '정보참모본부'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보검에 실어 보낸 재기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BRI@11월 14일. 팔관회가 열리는 날이다. 14일은 육재일(六齋日)로서 재가의 신도들이 선(善)을 기르고 악(惡)을 막아 스스로 근신하는 포살(布薩)의 날이다. 팔관회는 우리의 민속신앙과 불교의 팔관재계(八關齋戒)가 어우러진 축제였다.


팔관회(八關會)는 신라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 건국초기부터 거국적으로 진행하는 왕실행사였다. 창왕은 친히 법왕사(法王寺)에 거동하여 천령(天靈)과 용신(龍神)을 위무하며 왕실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했다. 전국각지의 지방관과 신하들은 봉물과 선물을 가지고 왕에게 하례를 올렸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가무백희(歌舞百戱)가 베풀어지고 있는데 도모의 대상 이성계가 보이지 않았다. 거사를 굳게 다짐했던 곽충보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김저와 정득후는 난감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이요?"

김저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역력했다.

"곽충보에게 변고가 생긴 게 틀림없소. 이성계의 집으로 쳐들어가 요절을 내도록 합시다."

우왕이 곽충보를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왕실의 보검을 내주며 이성계를 도모하라 명 했건만 곽충보는 그 검을 가지고 이방원에게 찾아가 밀고했던 것이다.

이방원의 첩보를 전해들은 이성계는 팔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집 주위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이성계는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호구에 찾아 든 김저와 정득후는 이성계의 군사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반란군 괴수 이성계를 내 손으로 처치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 원통하오. 살아남더라도 관련자를 토설하지 마시오."
유언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정득후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죽음마저 선택하지 못한 김저는 결박당하여 심한 고문을 당했다.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
"괴수를 도륙내지 못한 것이 철천지(徹天之) 한이라는 정공과 단 둘이 한 행동이오. 연루자는 없으니 빨리 죽여주시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우왕이 보내온 보검이 이성계의 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는 김저는 완강히 버티었다. 사형(私刑)으로 죄인이 죽으면 문제가 될 것이라 의식한 이성계는 김저를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다.

죄인에 대한 공식적인 심문이 시작되었다. 대간(臺諫)의 심문에 소득이 없자 악행이 가해졌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김저의 입에서 관련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흘러 나왔다. 조방흥, 변안열, 이림, 우현보, 우인열, 왕안덕, 우흥수 등이었다.

김저의 입에서 토설된 이들은 즉각 체포되어 유배 길에 올랐다. 칼을 내주며 배후에서 조종한 우왕은 여주에서 강릉으로 이배되었다. 이로서 이성계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우왕의 거사는 실패했고 재기는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 이 사건이 고려사(高麗史)와 조선실록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명사(明史)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태조실록은 조준이 편찬 책임자였고 고려사는 태조 원년 이성계의 명에 의하여 조준, 정도전, 정충 등이 편찬을 시작하여 정도전이 완성했다.

편찬된 고려사에 불만을 품은 태종 이방원의 명에 의하여 하륜을 책임자로 하여 고려사 개수 작업에 들어갔으나 하륜의 별세로 중단되었다. 이후 고려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종 조를 지나 문종 원년 김종서의 손에 의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우왕을 세가(世家)로 다루지 않고 신우전(辛禑傳)으로 다루고 있는 고려사다.

모두가 조선개국과 조선 왕실에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때문에 후대의 학자들은 이 사건이 이성계 일파가 역성혁명을 시도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하여 조작한 사건이라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개혁을 버리고 혁명으로 가자

이 사건을 계기로 이성계 일파의 생각이 확 달라졌다. 이성계 세력 중에는 이성계 추대론자가 있었지만 고려왕실을 보존하며 국가를 개량하자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즉 혁명세력과 개혁세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계의 목숨을 노리는 반혁명 사건으로 인하여 개혁세력의 설 땅이 없어져 버렸다. 우왕의 복수극은 결과적으로 이성계 세력에 빌미를 주어 고려를 타도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분수령이 되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는 명분을 내걸고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는 명분을 견지하기 위하여 정치문제는 초연한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이성계 자신도 태도를 바꿨다. 사건이 터지고 우왕을 강릉으로 보내던 날. 핵심 참모와 조정의 신하들을 흥국사에 모이도록 했다.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흥국사 회의'다.

흥국사는 추동 이방원의 집에서 탁타교를 지나 보정문 어귀에 있는 왕실사찰이다. 왕의 생일잔치가 벌어지던 흥국사에서 고려 왕실을 뒤엎는 회의가 열린 것이다. 주변에는 이성계의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펼쳤다. 회의의 성격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공포감을 유발했다.

자리에는 판자덕부사(判慈德府事) 박위, 정당문학(政堂文學) 설장수, 평리(評理) 성석린, 판삼사사(判三司事) 심덕부, 밀직부사(密直副使) 정도전, 찬성사(贊成事) 정몽주,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조준, 찬성사(贊成事) 지용기 등이 참석했다.

격론 끝에 창왕을 폐하고 정창군을 왕위에 올리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른바 조선 건국의 명분 폐가입진(廢假入眞)이다. 우왕과 창왕은 왕씨의 자손이 아니라 요승 신돈의 자손이므로 폐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성계가 옹립하기로 한 정창군은 20대왕 신종의 7대손이었다. 다음날 정창군이 왕위에 오르니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이다.

"우(禑)와 창(昌)은 본디 왕씨(王氏)가 아니므로 봉사(奉祀)하게 할 수가 없는데, 또 천자(天子)의 명령까지 있으니, 마땅히 거짓 임금을 폐하고 참 임금을 새로 세워야 될 것이다. 정창군(定昌君) 요(瑤)는 신왕(神王)의 7대 손자로서 족속(族屬)이 가장 가까우니 마땅히 세워야 될 것이다."<태조실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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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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