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빨라졌지만 매연 때문에 죽겠다"

[주장] 도로 중앙 버스 정류장 매연 문제 해결해야 한다

등록 2007.01.23 16:26수정 2007.01.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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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거 같긴 한데... 매연 때문에 죽겠어."

며칠 전 어머니와 함께 경기도 일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최근 일산에 도입된 중앙버스전용차로제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는 "확실히 버스가 빨라졌다"면서도 "버스 기다리다가 숨이 막혀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BRI@올해 60대에 접어든 어머니는 "중앙으로 빨리 다니려다 매연에 중독돼 하늘나라로 빨리 가는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이제 정류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도로 위 '섬'에서 매연에 속수무책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 위의 '섬'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양쪽 차로에서 질주하는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에 속수무책이다. 정류장 한쪽 일부분에 안전판이 설치돼 있지만, 매연을 막지는 못한다.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매연을 피하려 고개를 이쪽저쪽 돌려봐도 목의 따끔거림과 코 막힘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이나 대학로 정류장에서는 매연 피할 곳은커녕, 서 있을 곳도 마땅치 않아 차도로 지나다니기 일쑤다. 좁은 정류장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은 기다리는 버스가 오기 전까지 꼼짝 없이 '매연 세례'를 맞고 있어야 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철창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승용차도 그렇지만, 시커먼 매연을 배출하는 주범은 무엇보다 경유를 사용하는 버스. 3년 전 서울시의 중앙버스전용차로제 시행 초기 서울환경연합은 강남대로, 수색로 중앙에 있는 버스 정류장의 이산화질소(NO2) 양을 측정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이산화질소의 평균검출량은 약 148ppb(ppb는 농도 단위로, 10억분의 1을 뜻한다). 서울시가 규정한 환경기준치인 70ppb보다 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이산화질소는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 특히 경유차에서 많이 배출되는 물질로 각종 호흡기 질환과 두통을 일으키며 폐암의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대도시에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오염된 공기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런 불만 자체가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 한가운데 설 때마다 느끼는 불쾌감은 지울 수 없다. 아무런 대책 없이 '매연굴'로 내몰린 것 같다.

천연가스 버스를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10월 27일부터 고양시 대화와 서울시 수색을 연결하는 중앙버스전용차로제가 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27일부터 고양시 대화와 서울시 수색을 연결하는 중앙버스전용차로제가 실시되고 있다.고양시
정부에서 매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울시는 2010년까지 서울 시내버스 7000여대를 경유버스보다 오염물질 배출이 훨씬 적은 천연압축가스(CNG)버스로 바꿀 예정이며, 경기도도 2014년까지 도내 전체버스 7000여대 중 39.5%를 CNG 버스로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지역 자치단체들도 대기를 오염시키는 경유버스에서 오염도가 덜한 CNG 버스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또한 차량 운행을 줄이기 위한 공공부문 승용차 요일제 운행, 승용차 요일제 참여자에게 인센티브 부여 등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이는 대기오염을 줄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 되는 방안이다.

하지만 CNG 버스 보급 완료와 차량 운행 감소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그 전에라도 중앙버스전용차로제 실시로 피해를 보고 있는 버스이용객을 배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매연을 막아 주는 가림막을 모든 방향에 효과적으로 설치하거나 마스크 사용 홍보 같은 방안을 강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앙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되면서 버스가 제때 오고 속도도 빨라진 것은 인정한다. 직접 일산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가보니 예전보다 10여분 더 빨리 광화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꽉 막힌 자가용 차로에 비하면 중앙버스전용차로는 급행이다.

지난해 10월 27일부터 대화-수색 간 중앙버스전용차로제를 실시한 고양시는 지난해 12월 시민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9.3%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있는데도, 버스 정류장에서 마시게 될 매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기가 망설여진다.

서울시는 중앙버스전용차로제 시행 초기 강남대로의 버스 수용능력을 잘못 예측해 정체시간이 길어져 '버스기차놀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곧바로 일부 간선버스와 경기도 버스를 끝 차로로 통행시키는 대책으로 버스 속도를 회복한 바 있다.

이 같이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매연 문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했으면 좋겠다.

빨리 가는 건 좋다. 그렇지만 너무 빨리 가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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