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놀다가 우리집에 놀러 왔다.전희식
내가 빨래를 하는 동안 마당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그 후배에게 갔다. 빨래를 보여주면서 사과를 했다. 후배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후배는 싱긋 웃었다.
언젠가 서울 사는 형님이 우리 집에 왔다가 빨랫줄에 널린 장갑들을 보고는 장갑장수 다 굶어 죽겠다면서 몇 번이나 빨아 쓰냐고 물었었다. 요즘은 막노동하는 사람들도 장갑은 물론 작업화나 작업복도 흙탕이 되면 버리고 새것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게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자기 것이 아니고 고용주가 지급하는 것이라는 것도 원인일 수 있다. 내가 아는 바도 그렇다. 내가 아는 막일하는 사람들도 절대 장갑을 빨아 쓰지 않는다. 빨고 말리고 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헌 나무에 박힌 못도 빼서 다시 쓴다. 못 한 근을 철물점에서 사면 백 수 십 개가 넘는다. 단돈 2000원이면 산다. 그만큼 한 못을 빼서 쓰려면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지구자원이 고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껏 그렇게 한다.
노총의 모든 조합원들이, 막노동을 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공짜로 지급받는 장갑과 작업화를 집에라도 가져가 빨아서 다시 쓰는 날 세상이 뒤바뀌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사람대접 받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똥 묻은 팬티
빨래하면서 시린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물의 감촉이 계절을 실감하게 했다. 지하수로 흘러 해발 550미터의 이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올라 온 물의 경로가 잠시 나를 땅속 여행길로 안내 하기도 했다.
곧 입어야 할 속옷은 방에다 널었는데 유독 내 팬티 하나가 똥구멍 쪽에 얼룩이 져 있는 것이었다. 빨면서 물속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널다보니 눈에 띈 것이다. 다시 빨아야 하는가 싶어 잘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옷에 똥을 엄청 쌌던 일이 있는데 그때 똥물이 든 것이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내가 싼 것이 아니고 건너 동네에 사는 내 후배가 싼 것이다. 내 팬티에 어떻게 후배가 똥을 쌌냐면 사연이 아주 재미있다.
이번 달 초로 기억된다. 옆 마을에 놀러 갔었다. 김장을 하는 날이라 도우러 갔다가 밤에 술판이 벌어졌다. 지나치게 술을 많이 한 후배 하나가 술에 취해 집에도 못 돌아가고 그 집에서 자다가 똥을 싼 것이다. 새벽녘이었다. 질긴 남자 하나와 질긴 여자 하나가 남고 다 집으로 돌아간 새벽에 술을 거의 안 한 나랑 셋이서 차를 마시고 있던 때였다.
후배가 자는 방에서 야릇한 냄새가 나서 제일 정신이 맑은 내가 들어가 봤더니 아랫도리를 벗은 채 골아 떨어져 있었는데 똥을 싸서는 이불과 옷은 물론 벽과 몸에 다 똥칠을 해 놓고 있었다.
이때부터 내가 취한 조치들은 아주 눈물겨운 것이었다. 후배의 몸을 다 닦아주고 옷가지는 물론 이불을 두 채나 화장실로 가져가 똥 덩어리들을 긁어낸 후 빨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입었던 속옷을 다 벗어 후배를 입히고 나는 겉옷만 걸쳤다. 나는 10월이 되면서부터 내복을 입기 때문에 이 위급한 일에 대처하기가 유리했다.
이때 빌려 주었던 내 팬티와 내복, 티셔츠 등이 내게 돌아왔는데 그 후배의 후미진 똥구멍을 깨끗이 딲지 못했던 내 불찰로 내 팬티에 후배의 똥이 묻어났었던 모양이다.
어찌 웃음이 나지 않을쏘냐
그 후배를 그날 새벽에 목욕탕에 데려가 함께 목욕을 하고 해장국집에 가서 아침을 사 먹였는데 그때도 입에서 술 냄새가 코를 찔렀었다.
이틀 후에 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못 드는 후배와 약속을 했었다. 한 달 간 술을 끊자고 했다. 나도 동참하겠다고 하자 후배는 그러마고 했고 지금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그때의 풍경이 똥물 흔적이 남은 팬티를 널면서 되새겨졌다.
이렇게 손빨래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할 것이다. 하루 종일 걸렸다. 만약에 이 빨래 감들을 세탁기에 넣었다면 두어 시간 안에 다 해치웠을 것이다. 세탁기를 사용한 사람이 남긴 시간보다 손빨래 하면서 흘려보낸 내 시간들이 결코 아깝지 않다.
내 삶의 짧은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었기에.
덧붙이는 글 | <열린전북> 2007년 1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