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맨이 사흘간 나를 따라 다니며 찍었다.전희식
한 달여 전의 일이다. 케이비에스(KBS)의 유명 프로그램인 '여섯시 내 고향'에 내가 나왔다.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기에 아랫집 할머니 댁에 가서 티브이를 보는데 방송이 채 다 끝나지 않아서 서울 사는 할머니의 큰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티브이에 할머니가 나온다며 얼른 티브이 보라는 전화였다. 할머니는 나도 보고 있다고 전화에다 큰 소리로 얘기했다.
@BRI@여든 다섯의 아랫집 할머니는 처음으로 티브이에 나온 당신 모습이 꾀나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머리 빗질도 안했다느니, 쪼그랑 밤송이 얼굴이라느니 타박을 해 가며 티브이를 봤다.
내가 할머니 집을 나서기 전까지 서너 군데서 더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아랫동네에서 시집 온 할머니는 친정인 아랫동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 사이에 나는 자리를 일어섰다.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드리는데 바로 이때 내 손전화가 울렸다. 이때부터 내게 쏟아져 들어 온 외부의 연락들은 한 주 내내 계속되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맨 처음 걸려온 전화는 그래도 아주 모범적인 전화였다. "여기 서울인데요. 케이비에스 여섯시 내 고향 봤거든요"라고 시작되는 전화였기 때문에 모범적인 전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날 밤에 걸려온 전화의 대부분은 막무가내 식 전화였다. 제일 많았던 유형은 이런 것이었다.
"거기 찾아가려면 어떻게 가요?"
"전희식씨죠? 귀농한지 얼마나 됐어요?"
"그렇게 집 지으면 평당 얼마나 됩니까?"
너무도 다급한 전화들이었다. 의례적인 인사조차 나눌 여유를 갖지 못한 분들이 당일 전화를 건 사람들인 것 같다.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걸려오는 전화는 집전화로도 걸려왔다. 전화를 꺼 놓을까 하다가도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냐고 물어봤다. 케이비에스에 전화해서 알았다는 사람, 케이비에스에서 안 가르쳐줘서 언젠가 <오마이뉴스>에서 글을 봤었기에 <오마이뉴스>에 물어서 알아냈다는 사람, 이도저도 안돼서 티브이에 나온 지명을 보고는 우리 동네를 찾아 내 이장님에게 전화해서 집 전화를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날도 계속 이어지는 전화에 나는 내 누리집을 가르쳐 주면서 우선 그곳에 들러 집 짓는 내용을 둘러 본 다음에 게시판이나 전자우편으로 자세한 사연을 남겨 달라고 했다.
무슨 놈의 티브이에 다 나갔냐고 핀잔을 주는 후배가 있었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최근 여러 해 동안 티브이에서 온 출연제의는 모두 다 거절했었지만 이번에 결국 내 마음을 꺽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사실 담당프로듀서가 강남의 집값 폭등 얘기를 하면서 이 비정상적인 사태에 대해 내가 쓰레기장과 고물상을 돌며 재활용품으로만 집을 짓는 모습을 꼭 소개하고 싶다는 말만 아니었다면 티브이에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핀잔을 주던 후배는 여전히 티브이에 나온 나를 못마땅해 했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려니 싶다.
언론을 탈 때마다 겪던 일인지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고물을 보물로'라는 부제가 달린 이번 '여섯시 내 고향'에 출연하고 나서 이처럼 많은 관심과 극성스러움을 겪을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