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이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23일 오전 무죄를 선고하자 유가족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법원이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처형된 8명의 피고인들에게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무죄 선고의 의미를 제쳐두고라도, 사형이라는 형벌은 일단 집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로서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한데도 대법원 판결 다음 날 새벽에 형이 집행됐다는 점은 부당함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사형 당한 당사자만 억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가장을 떠나보낸 가족들에게는 '빨갱이의 아내',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지독한 유산만이 남았다.
당시 42살의 나이로 사형 당한 하재완씨의 아내인 이영교씨(71)는 법원의 인혁당 사건 재심결정 직후인 2006년 1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삶이 "적과의 삶이었다"고 말했다. 온통 적들로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삶이라고 했다. 빨갱이라는 "주홍글씨", 그것은 벗어던질 수 없는 업이요 족쇄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날 법원의 결정으로 이제 '인혁당의 시대'는 30여 년 전의 흘러간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해도 좋은 것일까? 그렇게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인혁당 사건 무죄'에 별 말이 없는 박정희의 딸
그 당시 그런 식의 '법살'(法殺)이 이뤄진 과정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절대권력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아버지 박정희의 유산을 당당히 내세우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아직 이 사건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듯하다.
박 전 대표가 초야에 조용히 묻혀 살고 있다면 모르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현 시점에서 만약 '인혁당 문제'에 대해 아무런 책임의식 없이 넘어간다면 '인혁당 문제'는 제대로 청산됐다고 할 수 없다.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명확히 이 부분의 책임에 관해 정치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
@BRI@둘째로는 검찰과 법원의 문제다. 그 당시 인혁당 사건에 관련된 검찰과 법원 인사들이 진실을 밝히고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 억울하게 사람을 8명이나 죽인 일이다.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최소한 그 당시에 벌어진 일에 대해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히고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 과정이 없다면 이번 법원의 판결은 단지 판결문이 적힌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셋째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보면, 이번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인혁당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 내용면에서 과거 인혁당 사건과 다를 바 없는 '빨갱이 사냥'이 이른바 '1등 신문'에 의해 당당히 벌어지고 있다.
보수 언론이 사상검증과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 대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이에 편승해 수사기관과 법원이 진보적 인사나 단체를 탄압하고 처벌하는 일들이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전교조 서울지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북한의 선전물을 올린 교사 두 명이 구속된 사건만 봐도 그렇다.
이번 전교조 교사 구속 사건은 교육부나 <조선일보> 사이트를 비롯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북한 관련 자료를 문제 삼은 점에서도 시대착오적이고, 신분이 확실하고 도주위험이 없는 전교조 교사를 구속까지 시켰다는 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다 죽어가는 국가보안법의 생명연장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빨갱이 사냥'에 열심인 보수신문
'빨갱이 사냥'이나 '안보장사'를 내놓고 벌이는 신문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런 신문의 여론몰이에 편승해 수사실적을 올리는 기회로 삼는 수사기관과 재벌 및 정치인에게는 약하면서도 반인권적인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에게는 유난히 엄격한 법원이 버티고 있는 한 우리는 아직 '인혁당의 시대'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아직도 멀쩡한 사람 잡는 국가보안법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 그 국가보안법은 법원이 전교조 교사를 구속하게 만들었으며, <조선일보>가 여전히 전교조의 '친북 세뇌'를 국민이 일어나 막아야한다고 선동하도록 만들었다. 30여년 전에 비해 바뀌지 않은 것이 아직 많다.
이번 인혁당 무죄 판결이 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조그마한 디딤돌일 따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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