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을 장식했던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이른바 '황우석 사태'일 것이다. 그 해 가을, 한 방송사의 탐사보도로 시작된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논란은 그 이후 몇 달 동안 언론을 통하여 대서특필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 찬반의 입장이 선명하게 나뉘어 치열한 논란이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실린 '줄기세포 논문'에 대한 진위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여기에 몇몇 언론사들이 가세하면서, 줄기세포의 논란은 마치 '진실게임'의 양상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연구 결과 파생될 수 있는 가치가 수십조 원에 달한다는 근거조차 불명확한 주장을 내세우며, 줄기세포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몰아붙이기도 하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떠한 근거조차 없는 '국익의 허상'에 열광하고 있을 때, 줄기세포 연구의 성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집중적인 표적이 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황우석을 둘러싸고 온 국민들이 찬반의 입장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듯이 보일 정도였다. 어느 곳을 가던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황우석으로 모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줄기세포나 테라토마와 같은 전문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체계적인 과학적 지식을 갖추기란 쉽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는 각종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을 자신의 입장에 맞추어 재삼 거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황우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다 하는 태도 여하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게 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당시의 언론들은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서 합리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보다, 황우석 연구팀의 일방적인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몇몇 언론사를 제외한 대다수의 언론들은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마침내 그해 12월, 황우석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줄기세포는 없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TV를 통해서 방송되기에 이르렀다.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황우석의 기자회견은 그때까지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복 불능의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 역시 줄기세포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황우석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황우석이 이끄는 과학자 집단의 비과학적인 연구태도와 윤리 의식의 부재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황우석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정치인과 사회 유력층 인사들의 적극적인 후원도 한 몫을 했다.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고, 황우석이 주장한 연구 성과를 아무런 검증 없이 대서특필했던 대다수 언론들의 무조건적인 보도 행태는 문제를 확산시키는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결국 이 삼자가 철저히 결합해서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황우석 사태'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엄청난 세력에 맞서, 고군분투하며 잘못을 바로잡고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먼저 줄기세포 진위 문제에 대해서 최초로 문제 제기를 했던 제보자 부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주었던 사회 단체와, 그것을 방송으로 내보내고자 취재에 나서서 마침내 프로그램을 방영했던 'PD수첩' 팀 역시 우리 사회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던 존재들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사이언스>에 게재한 '줄기세포 논문'의 조작 여부를 실증해 냈던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수많은 과학도들이 없었다면, '허위'에 기초한 '황우석 신화'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대해서 음으로 양으로 응원해 주었던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양식을 지닌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는 대중 속에 흩어져 있는 존재들이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 나서주는 사람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실증하는 척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황우석의 기자회견 이후, 해당 방송사의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라는 제하의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그리하여 결국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논란은 사실상 종결되면서, 그 처분이 검찰의 수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한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한껏 집중시켰던 줄기세포의 논란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주된 관심거리가 아니다.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열성적'인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황우석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를 옹호하는 '열성적'인 활동은 일반 대중들과 유리된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 이에 관한 책을 다시 읽기 전까지, 나 역시 황우석 사태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줄기세포 진위를 밝히기 위한 보도의 중심에 섰던 한학수 PD가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을 재구성해서 펴낸 책이다.
책의 제목인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는 탐사보도가 있던 2005년 12월 15일 저녁 9시 뉴스에서 앵커가 뉴스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꺼냈던 말이라 한다. 지금은 '줄기세포가 없다'라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사실을 전해야만 하는 것은 뉴스 앵커에게도 대단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사실이라 여겼던 일이 마침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느꼈던 심정을 드러낸 표현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진실의 힘'은 끝내 '거짓의 실체'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줄기세포의 진위에 대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지은이는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진실! 그것은 여리고 쉽게 망가져서 이 거친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힘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481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야만 했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황우석 사태'는 단지 사람들의 호기심 거리로만 끝나서는 안 되며, 이로 인해서 우리 과학계의 연구 풍토가 한 단계 성숙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당시의 믿음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다시 이리저리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보기도 했지만, 자연계 실험실의 환경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몇몇 보도를 제외하고는 과학계의 연구 풍토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황우석 연구의 재개를 주장하며 몇몇 유명 인사들이 주도했던 '난자기증 운동'의 이면에 숨어있던, 난자 채취의 위험성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성과로 꼽을만하다. 이는 실험실 내에서 암묵적으로 자행되었던 인권 침해와 여성 건강권 문제에 대해서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황우석을 제외한 사태의 관련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하여 하나씩 복권되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줄기세포의 진위에 대한 제보를 했던 과학자 부부는 그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 그 이후 지금까지 1년여 동안 실직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던 사람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연구 윤리를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현실. 이른바 '황우석 사단'에 속했던 이들이 복권된 이후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다는 기사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주장대로 '피해자'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자신들의 행위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면, 그에 대해서 진심 어린 반성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실직의 고통을 겪고 있는 제보자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그들이 다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으며, 비로소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취재 과정 내내 어려움을 겪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끝내 진실을 밝혀준 지은이와, 학자적 양심을 위해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로 인해 1년여 동안 실직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제보자 부부의 행동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걸음만 뒤에 서서 바라보면 너무나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일조차도, 스스로의 신념에 의해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가 있다. 이러한 태도를 일컬어 '자기 확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어떠한 합리적인 의견에도 쉽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특정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상식'이라고 부른다. 상식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상식은 사람들의 경험과 검증 속에서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되게 된다. 특히 일반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줄기세포의 진위'에 대한 문제 역시 찬반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 속에서, 우리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가 전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 상식의 힘은 별다른 위력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은이가 처음 이 문제에 대해서 제보를 받았을 당시,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제보의 내용을 듣고서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식의 저항'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34면)고 적고 있다. 그러나 차츰 취재가 진행되는 동안, 지은이가 처음에 느꼈던 '상식의 저항'이란 것은 줄기세포 연구팀에서 일방적인 발표로 인하여 형성된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진실이 무엇인가는 아직 밝혀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적어도 황우석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성과의 상당 부분이 허구로 쌓여진 '신기루'였음은 이제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고 생각된다. 물론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분야의 모든 연구 성과를 부정해서도 안 되고, 부정할 수도 없다.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을 과학도들에게는 진심으로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학자적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명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활동이 과연 과학의 발전을 위하여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실상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기묘한 사안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어느 한쪽의 비상식적인 주장이나 행동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의 합리성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논리를 자의적으로 펼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근거로 합리적이지 못한 내용을 확대하여 재생산시키는 언론과 정치 세력들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논리가 아무런 비판 없이 통용되고, 그러한 주장을 펼친 사람들이 대학 교수·정치인·과학자·언론인 등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가 한 생명과학자를 만나고 나서 한 다음의 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징표로 받아들이고 싶다. "앞으로는 원칙과 상식을 지켜 온 수많은 각계 원로들이 진정으로 후학들에게 존경받으면서 두텁게 사회적 층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129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황우석과 그 주변 사람들보다, '원칙과 상식'을 위해서 자신의 예견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오로지 진실만을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사회, 그리고 그들의 말이 진실임이 확인되었을 때조차도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기도 하는 현실이 너무도 아프게 느껴진다.
황우석을 둘러싼 거대한 세력들의 '공작'에 의해서 'PD수첩' 팀이 어려움에 처하고, 이미 제작된 방송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에 놓여있었던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가슴 한구석에서 안타까움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방송국 내부의 사람들로부터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때, 지은이는 '진실의 힘'을 마음속에 새기며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말한다. "강철같은 신념을 가진 제보자 K와 B, 야인 고수 '어나니머스'와 익명의 과학도들, 거센 외풍을 막아 준 최씨 삼 형제, < PD수첩 >을 물밑에서 지원해 준 과학자 그룹과 의인들, 양심을 지키며 결사해 준 뜻있는 기자들, 그리고 여전히 공개할 수 없는 인물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취재와 방송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6면)라고.
또한 지은이의 방송 내용에 공감하여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수많은 과학도들은 진정 과학이 무엇이고, 과학자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준 존재들이었다. 지은이의 말처럼 아마도 그들이 없었다면, 줄기세포 논문 조작의 진위는 결코 쉽게 밝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황우석에게서 잃었던 과학에 대한 신뢰를, BRIC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과학도들의 자세를 통해서 넉넉히 회복하고도 남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과학계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최근 그동안 직장에서 쫓겨나 실직 상태에 있던 제보자 부부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펼쳐, 모금된 돈을 그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아울러 지속적으로 모금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렇게 우리 사회의 정의와 양심은 굳건하게 살아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 "황우석 파문이 전 국민의 생명과학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166면)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회자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에 대한 일종의 맹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사람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누군가가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한 마디에 수긍하는 것은 아닌지.
'황우석 사태'는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에 일대 반성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로 하자. 과학의 발전과 국가적 명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폐해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실험실 내에서 발생할 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단 한사람의 인권까지도 챙겨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논문의 내용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록된 학술지의 등급을 따져 연구의 성과마저도 차별화 하는 학계의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온 국민을 뜨겁게 달구었던 황우석과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은 이제 급속도로 식어버렸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가 남긴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사태가 종결되었다고 생각했을 뿐, 여전히 황우석이라는 코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론과 그 추종자들의 활동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황우석 사태'를 다룬 이 책의 출간과 그로 인해 발생한 각종 언론의 뜨거운 반응이 그것을 뚜렷하게 실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는 '황우석 사태'가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쉽게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도 다시 한번 냉정하게 따져볼 때이다. 그리하여 황우석 개인이 아닌, 우리 과학계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새겨 보자.
"황우석 사태는 우리 국민에게 잊힐 수 없는 상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의식을 돌아보고 제도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기억하는 역사는 우리 삶을 한 단계 성숙시킨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파할 뿐 기억하지 않는다. 그 귀한 기억을 지우려 한다. 이제 돌아봐야 한다. 상처만 안고 가는 건 바보다. 그리고 고칠 건 고치자."(곽병찬, '황우석 사태 잊을 건가', <한겨레> 2006년 12월 6일자)
덧붙이는 글 | 한학수,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사회평론, 2006)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사회평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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