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주의자 시인, 이문재의 삶과 글

[서평] 느림의 미학이 있는 글 <이문재의 산문집>

등록 2007.01.25 15:19수정 2007.01.2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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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산문집> ⓒ 호미

"첫 산문집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이 품은 메시지는 1990년대 이후 내가 견지해 온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글은 시작노트 같고, 또 어떤 글은 시 해설 같기도 하다. 내게 시와 산문은 아주 가까운 혈연이다. 나는 시를 통해 이 비인간적인 문명의 급소를 발견하고, 그 급소를 건드리고 싶었다.

내 시에 내장되어 있는 문제의식에 물을 묻혀 번지게 한 것이 이 책에 실린 글이다. 문명은 산업자본주의 문명이고, 그 문명의 급소는 느림의 단순함, 걷기, 언플러그, 슬로 푸드, 농업 같은 것들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롤로코스터를 타고 과잉과 결핍, 연속과 단절이라는 양극점을 오르내리는 산업 문명의 옆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첫 산문집을 내면서 그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는 시인 이문재의 말이다. 글머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글 전면에 흐르고 있는 물줄기는 느림이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고, 생태학적인 삶의 추구이다. 그리고 문명의 찌꺼기에 소멸되어 가고 있는 그의 내면적인 고백이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표출되어 있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조금은 가볍게 임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생각과 마음을 바로잡아 갔다. 그의 글 속에는 나의 이야기도 있었고, 우리의 이야기도 있었다. 허나 무엇보다도 날 사로잡은 것은 생각할 '꺼리'였다.

그래서 천천히 읽었다. 아주 천천히 읽어내려 갔다. 그리고 밑줄을 그었다. 어떤 글은 입속으로 몇 번씩 읊조렸다. 그의 글은 가벼움도 무거움도 아닌 공감이라는 말로 다가왔다. 그것은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상의 틀을 벗어나 자연과 근본적인 삶의 문제들이 하나의 화두로 일관되게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니터는 텔레비전에서 컴퓨터,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수시로 우리의 시작을 묶어두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는 것에서 시작해 컴퓨터를 끄는 것으로 끝난다. 모니터에서 모니터까지가 하루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모니터 속에 갇혀 지내는 현대인의 일상을 통해서 은근히 문명의 이기의 포로가 되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꼬집고 있다. 그래서 그는 플러그를 뽑고자 한다.


왜 그럴까. 플러그를 뽑고 모니터를 덮어버리면 사람이 보이고 자연이 보이기 때문이다. 모니터는 세상을 열어놓았지만 사람을 가두어 버렸다. 첨단문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도시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면서도 자연을 그리워한다. 아니 추억한다.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그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BRI@"열 명 중에 여덟, 아니 아홉 명 가까이가 도시에서 태어나는 지금과는 달리, 불과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열에 예닐곱은 저 자연이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자연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겨울에도 '실내'는 거의 없었다. 얼음판으로, 눈 쌓인 앞산으로 뛰어다니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양달에서 구슬치기를 하거나 자치기를 했다. 제기를 차거나 연을 날렸다. 그러다가 다시 들로 달려 나가 논둑에 쥐불을 놓았다."


그가 이 글을 쓸 때가 40대 중반, 나 또한 그 나이에 있다. 따라서 그가 추억하는 고향의 모습은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세대들에겐 하나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이해가 아니라 공감이라 말로 다가온다. 그의 아날로그에 대한 애착이나 나의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단순히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 대한 어린시절의 추억은 도시적 삶에 대한 반성으로 흐른다. 이런 마음은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흐른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식들을 데리고 청송의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한다. 각자의 방이 있는 아파트의 단절에서 단칸방의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또 이런 아버지의 작은 소망은 작은 단칸방에서 몸 부비고 느꼈던 육친의 아늑함을 자식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남편의 마음이고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문재의 글집에는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 욕심 부리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저녁 군불처럼 나릇나릇 피어오른다.

"느림은 빠름을 전제하고 빠름에 저항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림이 단지 속도의 테뒬에 가두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모든 대안적 문화가 느림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느림에서 돌봄이 나오고, 나눔이 나오며, 더불어 살기가 나온다. 돌봄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고, 뭇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다."

느림은 이문재의 화두다. 빠름이 온갖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느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역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느림에서 삶의 평화와 원형을 찾고자 한다. 시인 이문재도 그렇다. 그래서 이문재는 이렇게 말한다. 느림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체득하고 실천해야 할 절체절명의 삶의 방식이라고.

글을 읽는 내내 난 이문재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의 글은 환경, 몸과 마음, 사소한 일상, 현대문명사회의 맹점, 인간과 문명과의 관계가 강으로 흐르는 몇 가닥의 시냇물처럼 연결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읽다가도 짐짓 숨을 고르기도 하고, 또박또박 마음에 밑줄을 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문재 산문집> 글쓴이 : 이문재  값 : 10000원

덧붙이는 글 <이문재 산문집> 글쓴이 : 이문재  값 : 10000원

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호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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