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도 신이 아닌 이상 모든 판결에는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무죄라고 잘못 판결할 수 있고 반대로 무고한 사람을 유죄라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그런 확률이 매우 낮기를 바란다.
지난 25일 담배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1심 재판부는 원고들(6명의 폐암환자들)의 피고들(케이티앤지)에 대한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하였다.
이 소송의 논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흡연을 한 것이 폐암발생의 원인이냐는 것이고, 둘째는 담배를 피운 것이 개인이 자율성 선택의 결과인지 아니면 니코틴 중독 때문인지에 대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담배의 유해성을 숨기는 등의 불법행위가 있었느냐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첫 번째이다. 흡연이 폐암 발생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타 논의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논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흡연과 폐암발생간의 역학적 인과관계는 존재하지만 흡연자 개개인에서 폐암발병이 흡연으로 인한 것임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흡연이 폐암을 유발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학연구 결과를 개개인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데 적용할 수 없다는 얘기는 맞는 얘기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이다.
흡연을 오랫동안 한 폐암 환자에서 폐암 발생의 원인이 흡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에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다.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인생도 살고 동시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인생도 살아서 담배를 피우는 인생에서는 폐암이 걸리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인생에서는 폐암이 걸리지 않은 경우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물론 가능하지 않은 얘기이다.
개개인에서 질병과 특정 원인과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비단 폐암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질병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외가 있다면 사고이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면 그 사람의 사망원인은 차에 치인 것이라고 개인 차원에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차에 치이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흡연과 폐암발생의 관련성을 개인차원에서는 전혀 알 수 없을까? 재판부에서는 활용하지 않았지만 역학적 연구방법을 활용하면 개개인에서 폐암 발생의 원인이 흡연 때문일 확률과 다른 원인 때문일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흡연을 오래하면 폐암발생의 위험이 10배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담배를 피운 사람에서 폐암이 발생한 경우에 90%는 흡연 때문이고 나머지 10%는 다른 원인 때문인 것을 의미한다. 흡연 때문에 폐암이 발생했을 확률이 90%인 폐암환자들에 대해서 다른 원인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심 재판부는 폐암발병의 원인을 흡연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위험요인과 질병의 관련성에 대해서 모든 법원이 1심재판부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매우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 2000명 내외의 직업성 뇌심혈관질환 환자들이 발생한다. 흔히 과로사로 알려진 질환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과중한 업무 후에 심장마비 또는 뇌졸중 등이 발생한 경우이다.
이러한 환자들을 직업성질환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업무와 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폐암과 흡연의 관계처럼 과로가 심장마비를 야기했는지 아니면 그와 상관없이 심장마비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과로와 심혈관질환의 관련성에 대한 역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과로로 인해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위험은 2배를 넘지 않는다.
즉 과로 후에 심장마비가 발생한 사람에서 과로 때문에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확률은 50% 미만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해서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면’ 인정을 해주고 있다.
일 때문에 질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을 개연성이 있는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1심 재판부의 잣대를 직업병 영역에 들이댄다면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를 제외한 모든 직업병환자가 어느 날 통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2심 재판부가 담배소송에서 다음과 같이 판결하기를 기대한다.
1. 피고들의 폐암은 흡연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이 90%에 이르므로 흡연과의 인과관계는 인정한다.
2. 피고의 흡연이 상당부분은 니코틴 중독에 의한 것이지만 본인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흡연을 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청구액의 일정부분을 감액한다.
3. 미국에서 담배회사들이 니코틴 함량을 높이고 연소시간이 긴 담배를 개발하여 중독성을 높인 사례들이 있는 것을 감안하여 정부는 담배사업법을 개정하여 담배회사들이 실제 흡연상황에서 니코틴과 타르의 흡수량을 측정하여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답을 말할 시간이 왔다. 이번 담배소송에서 판사들이 내린 판결이 틀렸을 확률은 9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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