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교회(목사 장병용)는 상가 2~3층에 세들어 사는 작은 교회다. 이 교회도 어느덧 교인 수가 100명을 넘어서면서 건축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한참 좋은 분위기에 찬물은 끼얹은 사람은 담임 장병용 목사였다. 그는 건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공간이 좁으면 조금 넓은 곳을 임대하면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많고 많은 게 교회인데, 똑같은 교회 하나 더 지어 뭘 하느냐. 차라리 합병하지"하는 '독설'까지 퍼부었다.
그러던 장 목사가 여행을 다녀와 마음을 바꿨다. 외국의 장애인아트센터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다가 '우리 교회가 이런 곳을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교인들에게 "교회의 본질을 담을 수 있는 건축이라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장애인을 위한 건물을 건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부 교인들은 반대했다. 그런 일은 장애인 단체가 하는 일이고, 교회는 그들을 지원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사회사업이야 예배당을 지은 다음에 해도 된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회자됐다. 논의를 거듭할수록 장 목사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도 늘었지만, 교회를 떠나는 이들도 생겼다.
"한국교회는 참 지독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 하나를 바꾸는 일,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하자는 데 이렇게 많은 정력을 쏟고 싸워야 한다. 이런 일에 온 신경을 쓰며 매달릴 때 참 외롭다."
긴 설득 과정 끝에 등불교회는 장애인아트센터를 건립하기로 결의하고 땅을 물색했다. 가난한 교회가 무리하지 않고 땅을 매입하는 과정도 설득 과정만큼이나 길었다. 땅을 조금씩 구입해 110평을 얻는데 4억 원이 들었고 4년이 걸렸다.
이후 6년 동안 장애인아트센터를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바자회를 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도종환·박노해·정호승 시인과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양 등을 초청해 문화행사를 개최해 지역문화운동을 지속해 나갔다.
장애인과 함께 공동생활 계획
10년에 걸쳐 준비를 마치고 올해 3월 첫 삽을 뜬다. 장애인아트센터는 11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300평 짜리 건물이다. 장 목사는 1월 말 건축가들과 함께 일본의 장애인 문화예술 단체 '하나아트센터'를 방문해 연대와 협력을 구할 예정이다. 장 목사는 "장애인을 위한 공간은 늘 허름하다는 인식을 없애고 싶다,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고 예술적인 차원에서도 뛰어난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1층은 주차장과 안내, 2층은 장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문화카페가 들어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3층은 장애인을 위한 미술작업실, 4층은 예술치료실과 음악 레슨실 등 세미나실을 마련한다. 5층에는 장애인이 공동 생활할 수 있는 집이고 6층은 게스트하우스다.
장 목사는 "5층에서는 오갈 데 없는 장애인 서너 명을 포함해 10명 안팎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지하는 공연장과 전시장 등 다목적 공간이 들어선다. 일요일에는 예배 장소로도 활용할 생각이다.
장애인아트센터는 등불교회 입장에서는 선교의 현장이다. 그렇지만 종교 색채를 철저하게 빼낼 생각이다. 장 목사는 "문화 자체에 예수의 정신이 담겼다고 보기에 굳이 하나님을 언급하고 성경 구절을 붙이고 기독교 용어로 덧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등불 같은 공간이었으면"
등불교회가 짓는 장애인아트센터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델이다. 지금까지는 장애인의 생존을 위해 직업 교육이나 의료, 재활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장 목사는 "장애인도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장애인을 위한 문화 공간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장애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쉽게 까먹는다. 장애인들도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문화가 뭐 특별한 건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게 인간다움이다. 그렇지만 장애인에게는 신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내린 선물조차 받을 권리가 차단되어 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장애인들을 자주 본다. 신이 주신 능력을 잘 발휘하면 대단한 족적을 남길 친구들인데, 하필 우리나라에 태어나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직업 훈련만 받다가 떠날 뿐이다."
장 목사는 그가 만났던 장애인 예술가들을 열거했다. 그리고 등불교회가 장애인아트센터를 한다고 알려지자 곳곳에서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아직 들어서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벌써부터 장애인들에게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다.
"이런 교회 하나쯤 있어도 좋지"
장애인아트센터가 제대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일들이 많다. 당장 땅을 담보로 3억 원을 대출 받고, 후원회에서 2억 원을 모금해 착공할 생각이다. 이외에도 완공까지는 15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시공사를 정하지 않고 돈을 모은 만큼만 공사하기로 해 완공 예정일 올해 10월에 정확히 맞춰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돈을 모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장애인 시설이 마을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웃을 설득하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남았다. 그렇지만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 눈치다. 기다리고 설득하는 일에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그래서일까 교인들도 그를 닮아가고 있다.
등불교회와 함께 장애인문화예술운동에 참여하는 장애인그림공간 '소울음' 소속 청년이 '코끼리 다리'라는 희귀병을 앓자, 등불교회는 건축 기금 가운데 1000만 원을 치료비에 보탰다. 땅 사고 남은 돈의 3분의 1을 떼어 쓴 것이다. 장 목사는 "우리 교회는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짓는데, 센터 건축이나 사람 몸 살리는 일이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인들도 흔쾌히 승낙했다. 이 청년의 치료받는 이야기는 지난 1월 22일 MBC '닥터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됐다.
현재 300여 명으로 구성된 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도부민 회장(우드브리지), 재미기업가 심영애 씨가 공동회장을 맡았고 판화가 류연복, 장애인그림공간 '소울음' 최진섭 원장, 배우 김갑수 등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고진하, 박남준 같은 시인, 임의진 양재성 같은 목사들, 김중 김병화 같은 화가 등이 자문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장 목사는 장애인아트센터의 이름을 '아름다운 등불'이라 지었다. '내 안의 등불을 밝혀 그대 안의 선함이 피어나기를' 희망하면서. 장 목사는 말했다. "많은 교회들이 자기 교회의 성장만을 위해 힘을 쏟는데, 이런 교회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교회를 돕는 사람들도 조금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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