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 봐!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데... 닮은꼴 부자 모습에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등록 2007.01.29 13:24수정 2007.01.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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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못 속인다'는 말도 있지만 닮은꼴 부자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어찌나 신기하고 놀랍던지 무릎을 칠 때가 종종 있다.


전국에 눈 소식이 예보되어 있었지만 떠날 때만 해도 서울 날씨는 맑음 그 자체여서 아무 준비 없이 기차에 올랐던 며칠 전 일이다.

서울을 지나 논산, 익산까지도 눈발은 보이지 않았는데, 정읍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멋지다!'는 탄성도 잠깐, 노령산맥 터널을 지나고부터는 아예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폭설로 바뀌었다.

@BRI@종착역 안내방송을 들으니 갑자기 우산도 없이 눈 속을 뚫고 갈 일이 걱정되었다.

"와∼ 눈이 너무 많이 내리네. 버스 정거장까지는 한참 가야 하는데 어쩌지?"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남편에게 집에 갈 걱정을 늘어놨더니 문제없다고 큰소리를 치며 가방을 쭉 열더니 삼단 우산을 짜잔 하고 꺼내드는 것이었다.


"내가 누구냐? 이럴 때를 대비해 365일 우산을 챙겨다닌다는 것 아니냐."

갑자기 흑기사처럼 나타난 삼단 우산과 의기양양해진 남편 표정.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참, 누가 그 아빠에 그 아들 아니랄까봐 365일 우산 챙기는 것까지 닮았네. 아들 가방엔 책은 없어도 우산하고 휴지는 꼭 가지고 다니잖아."

"아들도 그래? 허허 참. 그래도 내 가방엔 책은 꼭 빠지지 않는데. 아들하고 다른 게 그거 하나구만."


부모 자식이 닮는다는 건 너무 자연스런 일이라 사실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생김새, 목소리 때로는 습관까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태어난 유복자가 생전의 아버지 버릇인 코 찡긋 대는 것까지 닮아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처럼 우리 아들도 제 아빠를 어지간히 빼닮았다.

아들이 태어나 세 살 때까지는 제 아빠랑 살지도 않았는데 돌이 지나고 제법 잘 걸을 무렵부터 방바닥에 앉을 땐 꼭 가부좌를 틀고 꼿꼿이 앉아 모든 식구들이 박장대소를 하게 하였다. 제 아빠의 평소 앉은 자세가 완전 직각의 가부좌 형태인데 그 자세를 아빠의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두 돌배기가 그대로 따라 하다니 얼마나 우습겠는가.

책을 좋아하는 아빠, 책이라면 무조건 질색을 하는 아들. 그 부분만 정반대이고 나머지는 신기할 정도로 같은 점이 많은 부자다. 우뚝 선 콧날에 두툼한 입술, 외모에서 꼭닮은 모습이다.

집안에 먼지가 떠다니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부자가 집안에만 들어서면 청소기부터 들고 설칠 때가 비일비재하고, 여기저기 나뒹구는 옷가지, 성격이 대충인 우리 집 모녀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저지레를 가장 못 견뎌 하는 것도 그 두 남자다.

정직하고 원칙적이며,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지 못하는 성격까지 닮아 한걱정인데 그래도 아들이 제 아빠보다는 조금 더 유연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혼탁한 세상에서 꼬장꼬장한 성격이 제 앞가림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는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남편은 그 칼 같은 성격 탓에 남들이 겪는 어려움의 몇 배 더 힘든 삶을 살아왔고, 덩달아 처자식까지 고행 길을 걷게 했다. 모든 부모 마음처럼 나도 내 대에선 어쩔 수 없었지만 내 자식만큼은 안락하게 살기를 소원하는데 우리 집 남자들의 '부전자전'이 뭐 그리 반갑겠는가.

원하건 원치 않건 제 아빠를 꼭 빼닮은 아들을 보자니 언제 적 남편의 선배님이 <반야심경>을 예로 들며 인간의 유전자 대물림을 설명해 주신 것이 생각난다. <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란 구절이 있다.

즉 인간은 눈, 귀, 코, 입, 몸, 그리고 색깔, 음성, 맛, 촉감으로 모든 사물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의식세계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세계는 의식계가 전부는 아니고 무의식계, 그러니까 잠재의식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세계가 비로소 완성되는데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들이 두 돌땐가? 가부좌한 모습.
아들이 두 돌땐가? 가부좌한 모습.조명자
인간성의 좋고 나쁨 그리고 각자의 능력이란 타고난 본성은 물론 처한 환경, 그리고 교육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역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전자의 인식이란다. 아무리 난폭하고 아무리 사악한 성정이 많더라도 의식적으로 선을 베풀려고 노력하고 악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려는 직심을 갖는다면 그 행위가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그만큼 양질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이 태어난다나.

뿌린 만큼 거두는 '인과응보'의 법칙. 나의 오늘이 자식의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금부터라도 잘 살아야겠다. 거짓말 덜 하고, 남에게 해 끼치지 않는 삶. 더불어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려는 보시정신이 있으면 내 자식들의 앞날에 덕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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