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노릇의 '모범 답안'은 무엇일까?

[아들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다 4]

등록 2007.01.29 14:48수정 2007.01.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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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팔에 깁스를 한 채 사촌과 게임에 열중하는 아들(뒤쪽). 포토샵으로 가공했습니다.

팔에 깁스를 한 채 사촌과 게임에 열중하는 아들(뒤쪽). 포토샵으로 가공했습니다. ⓒ 제정길

아침에 독서실로 공부하러 간다고 가방을 메고 나간 아들이 느닷없이 오후에 팔에 깁스를 하고 돌아왔다. 공부하다 짬을 내어 농구를 하던 중 잘못 부딪쳐 팔을 다쳤다 한다. 의사의 진단 결과 골절은 아니고 인대가 늘어나 2, 3주 깁스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웬 농구라니…' 마음 속으로 툴툴대다가, "팔이 그래 갖고 공부는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중상이 아님을 알고 나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퉁명스레 튀어나왔다. 나도 참 못 말리는 아비임이 틀림없다. 이 판국에도 공부 걱정이 먼저라니.

@BRI@제가 앞서 올린 글 '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생각하다 1, 2, 3'에는 독자 여러분이 많은 의견들을 전해주셨다. 모두 경청할 만했고, 또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꽤 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들의 의견은 아비로서의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몇 분은 내가 느슨하다고 생각하시는 듯하였다.

'bati'란 분은 이렇게 갈파하셨다. "그냥 쳐다만 보실꺼면 기다리고 뭐고 할 것 없이 기대를 하지 마시든가, 뭔가를 기대하시고 계시면 그것이 뭔지를 아이에게 말해주시든가 하시죠. 그냥 쳐다만 보다가 눈감으시기 전에 이게 아닌데란 생각을 하시게 되면 너무 허무하잖아요?"

'껄렁이'란 분은 한발 더 나가셨다. "무지 건방지게 들리시겠지만…. 공부로서는 포기하시는 게 좋을듯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조급했다고 느끼신 분도 계셨다. '묘향산방'님은 "지난번 글을 읽고 금방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얼마를 참을 수 있을까 두 분을 지켜보기로 했거든요. 드디어 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군요. 사실은 더 두고 봐야 하는 건데요. 그걸 참을 어머님은 많지 않거든요." 우리의 느긋하지 못함을 일갈하셨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딱히 이래야겠다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일이 터졌다.


며칠 전 S대 논술고사가 있던 날이었다. 수능 4개 틀린 애의(1편 참조) 아버지와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 그는 지방에 사는데 아들이 S대 법대에 2배수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하여 논술 및 면접을 위하여 상경하였다. 그는 만나자마자 대뜸 그 일부터 물었다.

"그거 뻥이지요?"
"아니 뭐가?"
"그 있잖아요, 오마이에 올린 거."
"아, 그거…. 뻥 아냐, 뻥이긴, 뭣 때문에 뻥을 쓰겠어."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는데…. 사장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 성질 다 어디 갔어요?"


'그 성질 다 어디 갔을까' 자문하면서 자리를 주점으로 옮겼다. 평소 술을 즐겨 하지 않는 그는 그날따라 술을 자꾸 마셨다. 마시면서 씩씩대었다. 아들이 오늘 논술을 잡쳤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떨어질 것 같다고 연방 걱정을 해대다가는 또 화를 벌컥벌컥 내었다.

""내 이노무 새끼를 그냥…. 그만큼 시간을 재가며 신중하게 쓰라고 그랬는데…."

그는 아들이 옆에라도 있으면 귀싸대기라도 올려붙일 듯이 흥분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강조하였다.

그는 수능 시험 전날에도, 논술 시험 전날에도 아들을 불러 훈육(?)을 하였다고 한다. 중2 무렵부터 부부가 외출할 때에는 아이들이 게임을 못하도록 TV며 컴퓨터의 코드를 뽑아 아내의 손가방에 넣고 다닌 일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의 아들은 착하고 우직하고 성실하였다. 그 흔한 핸드폰 하나 갖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하는 아들이었으니까.

소주를 4병이나 마시고 생맥주집으로 2차를 갔다. 그는 많이 취해 있었다. 그는 취중에도 수차례 또 말하였다.

"아이들은 그냥 놔두면 안 됩니다. 몰아붙여야 합니다."

직장의 상사와 부하로 만나 30년을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낸 우리 사이를 모른다면 고깝게도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진심을 알기에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정말 그런가 보제."

이제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해일이 한차례 이 땅을 쓸고 지나갔다. 좋다는 한두 개 대학의 최종결과가 아직 남아 있고, 후속 파도가 덩달아 넘실거리긴 하겠지만 대충 금년의 쓰나미는 서서히 그 꼬리를 드러내고 있는 모양이다.

초등학교로부터 12년, 아니 유치원부터 14, 15년의 긴 세월 동안 나름대로 실력을 갈고 닦아온 개개의 전사(戰士)들은, 혹은 자기가 원하는 해안에, 혹은 자기가 원치 않았으나 근접한 해안에, 혹은 전혀 엉뚱한 해안에 상륙하여 아직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내 아들처럼 일부는 아예 금년의 상륙을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거나 또는 또 다른 상륙지를 찾아 유영을 계속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생애 최초의 사생결단의 게임이요, 피어나갈 생의 방향을 지을 수 있는 진검승부의 차디찬 세파를 뼈저리게 느꼈음이 틀림없을 일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등의 예를 들면서 '학교, 그것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맞는 말이다.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학부모들이 자식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하여 들이는 처절한 노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그래서 강남의 집값이 치솟고 그로 인해 나라의 정치 경제까지 뒤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한번이라도 돌아본다면, 그렇게 쉽게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기는 또한 어려울 것이다.

많은 공자연 하던 높은 사람들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 자식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학교에 집어넣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느낀다.

나 또한 그런 필부의 범위에서 탈피하지 못한 장삼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내 아들이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고 기대했으나, 수능이라는 첫 관문부터 기대에 어그러짐을 받아들여야 했었다. 아들의 수능 참패 이후 나는 나를 되돌아 보았다. 나의 애비 노릇의 어떤 못난 점이 아들을 원하는 해안의 기슭에 닿지 못하게 했을까?

환갑을 넘어 직장마저 은퇴한 이 나이에 나는 아들의 재수를 멍에 삼아 어쩌면 내 생의 재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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