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드디어 오전에 일어나다

[아들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다 3] 이제 슬슬 공부를 시작하려나?

등록 2007.01.03 09:35수정 2007.01.03 09: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달포만에 가방을 들고 도서관을 가는 아들과 양재천으로 운동 나가는 아내.

달포만에 가방을 들고 도서관을 가는 아들과 양재천으로 운동 나가는 아내. ⓒ 제정길

드디어 오늘 아들이 오전 중에 일어났다. 새해의 첫 근무가 시작되는 2007년 1월 2일, 사람들이 희망찬 발걸음으로 일터로 향하느라 부산한 시간에, 아들은 예의 그 함지박 머리를 더욱 부스스하게 헝클어뜨린 채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능이 지나고 48일만의 첫 오전 기상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들의 몰골이야 어떻든 간에 이렇게 제시간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내심 안도하고 작은 기쁨마저 느꼈다(내가 생각해봐도 우리 내외는 참 한심한 인간이다).

며칠 전 아내와 아들은 다투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다투었다기보다 아들이 아내의 말에 대들었다는 표현이 맞는 말이겠지만, 어쨌거나 아내와 아들은 언어의 거친 교환을 통하여 자기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었다.

@BRI@일인즉슨 이렇다. 오랜만에 아들과 조용히 드라이브를 하게 된 아내가 마음 속에 담아 있던 말을 은근슬쩍 흘리게 되었다.

"아들아, 수능 마친 지도 꽤 됐으니까 이제 슬슬 공부를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니니?"

아들의 첫 반응은 짜증이었다.


"엄마,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해. 날 좀 가만 내버려둬."
"그래도…, 엄마는 걱정이 되는구나, 날짜는 하루하루 지나가고."
"엄마,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좀 믿고 기다려 봐."


기다려보다니?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줄곧 기다렸는데도 내내 그 모양이었으면서도 또 기다리기만 하면 수가 난다고?


"이 녀석아 그래 네가 그렇게 알아서 잘해서 수능이 그꼴이었니?"

아내는 이 말이 입안을 뱅뱅 돌았으나 차마 내뱉지는 못하였다 한다. 아들은 제풀에 열이 나서 차에 내려 집으로 혼자 가겠다는 걸 달래어 근근이 목적지까지 데리고 오는데도 힘들었다니까.

사실 아들과 우리의 관계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1 첫 중간고사 때, 대다수 똑똑하지 못한 아비처럼 나도 내 아들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아비를 기쁘게 해주리라 잔뜩 기대하고 기다렸다. 알다시피 초등학교 6년 동안은 특별히 수치로 표현되는 평가제도가 없어 당연 내 아들이 우수하지 않다고 생각할만한 어떠한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중1 첫 중간고사 시험 전날 나는 아들을 불러 아주 너그럽게 인심을 쓰듯 격려의 말을 한마디 하였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아는 것만 쓴다고 생각하고 시험을 쳐. 첫 시험이니까 반에서 5등 정도만 하면 될 거야. 너는 초등학교 때 과외를 전혀 안 받았으니까, 그 정도면 나중엔 다 제낄 수 있어."

기대는 좋았고 기다리는 시간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5등은커녕 5의 5곱 만한 석차가 매겨진 성적표를 며칠 후 아들은 내 앞에 내밀었다.

너무나 어이없고 너무나 황당했다. 아들의 '영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 내외는 마치 아들의 성적표가 다른 애하고 바뀐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엄연하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우리는 얼마 동안 쉽게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a 돌아온 탕아가 되어 1년6개월을 보내야 했던 유년의 아픔이 서린 경남 거제 둔덕.

돌아온 탕아가 되어 1년6개월을 보내야 했던 유년의 아픔이 서린 경남 거제 둔덕. ⓒ 제정길

내 아버지의 아들 교육... 직접 아들을 키울수록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1958년 12월. 대한민국 남단 거제 둔덕의 겨울은 차가웠다. 학생의 신분에서 무단가출에서 돌아온 탕아의 신분으로 추락한 나는 새 신분에 걸맞은 '할 거리'를 찾아야 했다.

시골 출신이었지만 통영이라는 도시에 유학 가 있는 학생이랍시고 농사일에서 면제부를 받아온 덕에 할 수 있는 농사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게질도 낫질도 쟁기질도 어느 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겨울 들어 농한기라고는 하나 농촌생활이란 일속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게 다반사인 시골에서 일없이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거름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는 것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무언가를….

어느 날 아버지는 낯선 지게를 하나 구해 오셨다. 아버지가 사용하시는 것 말고 그것보다 조금 작은 새 지게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일 나가는 통로에 있는 아버지의 지게 옆에 기대 놓으셨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내색도 없이,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심도 없이, 한 달여를 두고 보다가 가만히 무심한 표정으로 새 지게를 장만해 오셨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초등학교도 다 못 마친 아버지는 아들을 확실히 가르치는 방법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었다. 아, 아버지!

수능 후 48일간을 내내 늦잠과 TV, 게임과 외출로 시간을 죽이던 아들이 오늘은 아침을 먹자마자 가방을 챙기더니 현관문을 나섰다. 도서관에 간다는 거였다. 아하! 아들이 드디어 공부를 시작한다는 신호인가?

우리는 내심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 그것이 망그러질 때의 허망함에 대비하여 반신반의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아마, 아닐 것이다. 몇 번 저렇게 하다가는 제풀에 또 주저앉아 엉금엉금 시간만 작살 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명색이 대학을 나왔다는 아비나, 한다 하는 대학에서 아동학을 석박사로 공부한 어미나 간에 아들 하나를 가지고 쩔쩔매고 있는 못난 아들, 며느리를 보시면 아버지는 어떻게 말씀하실까?

'네 이 못난 놈' 그렇게 말씀하실까? 아니면 평소처럼 온화하게 웃으시기만 하실까? 아들을 키울수록 아버지가 그립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