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우주니어김영사
책 먹는 여우는 아이들이 좋아한다. 밤톨이(둘째아이)가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일곱 살 때, 오빠네 학교 학습정보실에 놀러간 적이 있다. 토요일 날 학습정보실을 지키는 일일사서 엄마를 따라 왔다. 그리고 아이는 <책 먹는 여우>를 아침부터 하루 일정이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 읽었다. 이제 그 학교는 자기도 다니는 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좋아하던 그 책은 1학년 방학숙제 필독서가 되었다.
독후감 숙제가 괴롭지 않고, 얼른 하고 싶어 안달 나는 책. 그 책이 바로 <책 먹는 여우>다. 이 책은 밤톨이와 친구들, 아리따운이와 야무진이가 두 번째로 토론한 책이다. 책 선택도 10권의 필독서 중에서 아이들이 선택하여 순서를 정했는데, 모두 이 책을 좋아해서 <까만 아기 양>을 읽은 다음 화요일이 오기를 무척 기다렸다. (방학동안 화요일 오전으로 시간을 정했다.)
엄마는 <책 먹는 여우>한 권, 지은이 나라를 찾을 지도책 한 권, 녹음기, 줄 없는 백지 A4 용지 여러 장을 준비했다. 아침 10시가 되자 모두 우리 집으로 책과 필통을 준비해서 왔다. 토론 진행은 엄마가 하고, 토론순서는 <까만 아기 양>할 때와 비슷하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다음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껏 쓰는 시간을 40분으로 정했다. 시간은 아이들이 먼저 20분을 요구하고(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시간을 정해보고, 또 더하기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들이 조금씩 토론하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라 엄마의 개입은 많이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다시 20분을 더 해서 신나게 썼다.
발표순서는 세 사람이 먼저 말 하는 순서가 골고루 돌아오도록 배분했다. 40분 동안 쓴 내용을 읽을 때 녹음을 한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가 발표할 때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고, 몸을 비비 꼬거나 딴 짓을 하기도 한다. 더 많이 아는 아이는 잘 하지 못하는 아이의 말을 대신 해 주기도 한다.
학교 수업시간의 상황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는 하지 않던 아주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 딸은 잘 하고 있겠거니 믿고 있던 엄마는 속으로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글을 쓸 때는 책상에 아예 엎드려 글을 쓰고, 친구가 이야기 할 때 들어주지도 않고... 그래서 오늘 토론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자세다. 써 놓은 글을 읽는 것은 바로 듣는 자세를 연습시키기 위함이다.)
각자 발표한 것으로 책 내용을 이해하고서(미리 책을 읽어오기로 약속을 했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 각자 문제를 만들어 이야기 한다.
밤톨이: "경찰이 여우를 잡아간 이야기."
아리따운이: "여우가 어떻게 책을 먹을까?"
야무진이: "여우는 어떻게 맛있는 책을 고르는 법을 알까?"
이번에는 세 사람의 문제를 모두 다 같이 이야기하기로 했다. 발표순서는 먼저 이야기 한 사람 다음 사람이 그 다음 첫 순서로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각을 방해 받음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 친구가 말을 모두 다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여유를 연습하는 시간이다.
아리따운이: "여우가 어떻게 책을 맛있게 먹는지 먼저 냄새 맡고 침을 발라보고 먹어본다. 맛있는 책을 고르는 법은 냄새를 맡아서 소금 후추를 뿌리고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경찰에 붙잡힌 후 923쪽이나 되는 책을 만들어서 살아서 감옥을 빠져 나왔다."
야무진이: " 맛있는 책을 고르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입니다.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후루룩 책을 먹어요. 책을 못 먹는 벌이 내려와서 사흘 밖에 못 사는데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연필과 종이를 얻어 책을 써서 감옥에서 빠져나왔어요."
밤톨이: "경찰에게 잡혀 간 것은 여우아저씨가 강도짓을 해서 잡혀갔다. 책을 많이 읽어서 재미있는 책을 골라서 보다가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먹은 것 같다. 냄새나 침을 묻히거나 아니면 혓바닥으로 책 한 장을 쪽쪽 빨아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는 아리따운이는 야무진이와 밤톨이가 한 이야기를, 야무진이는 아리따운이와 밤톨이가 한 이야기를, 밤톨이는 아리따운이와 야무진이가 한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내용이 짧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친구 이야기 듣고 다시 이야기 하는 시간은 정말 진지했다. 딴 짓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다 잘 듣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 아이들 모두 다 흡족했다.
이제 엄마와 함께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책 먹는 여우>가 주인공이니 여행은 마치 코스요리를 맛보는 것처럼 한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이 책의 재미를 알아서 구석구석 맛을 보고 마음속으로 맛있게 먹고 있었다.
@BRI@지은이는 프란치스카 비어만이다. 독일 사람인데 태어난 곳은 발음하기 어려운 빌레펠트다. 독일어로 써 놓은 이 책이 재미있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 말로 옮겼는데 우리나라 말로 옮긴 사람은 김경연이다.
주인공 여우아저씨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먹는다. 토끼도 아니고 닭도 아닌 책을 먹는 여우는 책에서 지식도 얻고 허기도 채운다. 그러나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고프다. 책 살 돈이 없는 여우아저씨는 '몽땅다전당포'에 가구를 맡기고 그 돈으로 책을 산다. 어느 날 코에 종이냄새가 솔솔 풍겨와서 그 곳을 찾아가보니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여우는 지리책은 역겹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러시아문학쪽 아주 특별히 멋진 책은 소금과 후추를 툭툭 톡톡 뿌리고 먹으려고 할 때 사서에게 걸렸다.
글 속에는 러시아문학책이 어떤 책인지 안 나오지만, 그림에선 선명하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보인다. 엄마는 목소리도 우렁차게 읽어준다. 동화책 속 그림은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내용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처럼 그림도 잘 파악하면 책 내용이 더 풍부해진다. <책 먹는 여우> 역시 그렇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장편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왜 특별히 맛있는 책인지를 알려면 이 아이들이 고등학생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여우가 먹은 특별히 멋진, 맛있는 책 정도면 될 것이다.
사서에게 걸린 여우는 출입금지 당하고, 신문지, 광고지, 헌 종이 수거함에서 종이를 골라 먹는다. 여우는 탐스러운 털이 윤기를 잃고 소화불량에 걸린다. 여우는 길모퉁이 서점에 가서 24권의 책을 강도짓으로 마련하곤 일곱 번째 책을 먹으려는 순간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간다.
여우가 받은 벌은 '독서절대금지'고 '물과 빵'만 나왔다. 여우는 연필과 종이를 얻어 자기가 직접 글을 썼다. 연필에서 생각이 줄줄 나오는 것처럼 잘 썼다.
여우는 어떻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책을 썼을까? 여우는 온갖 종류의 맛있는 책, 특별한 책, 끝내주는 이야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만일 여우가 안 좋은 책, 쉬운 만화책만 읽었거나 아무 책도 안 읽었으면 글이 나왔을까? 소화불량 걸리고 윤기 없는 털을 가진 모습처럼 정신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모습들. 지은이가 이 책을 쓴 목적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지루해 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책이 재미있으니 먹어도 바닥나지 않는 넉넉한 음식이다.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등장인물들을 분석했다. 책을 읽어보면 간단한 낱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이다.
여우: 꾀돌이, 장난꾸러기, 소심한 여우.
사서: 확실하다. 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하는 아줌마. 무섭다.
경찰관: 정확하다. 뚱뚱하다. 나이가 많다.
교도관: 훌륭한 빛나리아저씨. 연필을 훌륭하게 깎았다. 여우를 잘 도움. 웃겨요. 여우를 알아 봄. 여우는 자기 소설가 기질도 몰랐는데.
토론이 모두 끝난 후 밤톨이가 방학숙제를 하는데, 별명 붙이는 것으로 했다. <도서관>을 읽고 나서는 엘리자베스 브라운과 여우가 똑같다고 하더니, 세종대왕 책을 읽고 나서는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눈도 나빠지고 건강이 나빠졌다고 하니, 여우와 세종대왕은 또 똑같다고 한다.
[별명 붙이기]
번호/사람/별명/그 이유는요?
1/여우아저씨/책벌레/책을 좋아하고 책을 너무 많이 먹어서/
2/사서아줌마/똑똑이/책을 지키기 위해 여우아저씨를 출입금지 시켰다.
3/빛나리아저씨/빛나리/머리가 빡빡이라서
4/경찰아저씨/배불룩이/배가 뚱뚱해서/
5/서점주인/못난이/지키지 못하고 책을 빼앗겼다.
늦은 밤 밤톨이는 자고 홀로 앉아 녹음테이프를 틀어보니, 아이들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얼굴에 가득 찬다. 두 친구에게도 복사해서 주었으니 음성만 들어도 부모들 역시 나와 같으리라. 사진과는 다른 그 순간의 아이들 목소리. 자꾸 듣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김경연 옮김
주니어김영사/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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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여우 (예스 특별판)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김경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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