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객실에서 바다가 보인다더니...

무작정 떠난 1박 2일간 바다 여행의 씁쓸함

등록 2007.02.02 15:34수정 2007.02.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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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다 가요!"


공부하느라 따끈따끈할 딸애 머리도 식혀줄 겸, 지난 주말 모처럼 가고 싶은 곳을 물었더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다'를 말했다.

@BRI@바다? 아주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비싼 휘발유 아끼려면 가까운 곳이어야 하는데, 참 멀리도 가고 싶은가 보다. 현실로부터.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떠나기엔 너무 멀고, 제자리로 돌아오기엔 시간이 빠듯해, 작정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참이다.

무작정 떠나는 사람들답게, 남편과 아이들이 달랑 손바닥 만한 가방 하나씩 들고 방문 앞에 서서, 묵을 곳을 검색하는 나를 채근했다.

"아, 그래도 글치. 가서 쉴 곳은 알아보고 가야지. 차 안에서 잘 수는 없잖아?"
"가면 다 있어."


아이들 방학인데다 주5일 근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분명 '빈 방'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승같이 서서 재촉하는 눈빛에 쫒겨, 그냥 집을 나선 여행이었다.

드디어 강릉 톨게이트를 벗어나 바다가 가까운 정동진 쪽으로 들어섰다. 날이 저물어 해변 도로 위에서조차 어둠에 잠긴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허름한 민박을 제외하니 역시 빈 방이 없었다.


몇 군데 더 돌아 다녀보니 '전 객실에서 바다가 보입니다'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근사한 건물로 얼핏 보기에도 객실이 모두 바다를 보고 있었다. 빈 방 있을 리 있나 머뭇거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프론트에 들어섰다.

"아, 손님 행운이시네요. 마침 예약 취소된 방이 딱 하나 남았는데요."

어둠속을 더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얼른 계산을 치르고 키를 넘겨받았다. 아, 우리도 드디어 내일 아침, 계란 노른자 같은 싱싱한 태양을 품에 안을 수 있겠구나. 그런데, 방에 들어서자 바다는커녕, 창문 밖으로 산사태 예방을 위해 망을 씌운 절벽이 보였다. 식구들 모두 실망하는 눈치였다.

반납하고 나가기엔 날이 너무 어두웠다. 속은 기분이 들었지만, 미리 인터넷예약을 하지 못한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으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모처럼의 즐거운 여행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아침 일찍 길을 나서, 해안을 따라 묵호항 포구를 향해 달리며 실컷 동해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용서가 되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코앞에 놓인 해변을 거닐고 돌아왔다.

"아빠, 바다가 참 좋아요. 그리고 옆으로 기차도 지나가요."

밤에 어두워 볼 수 없었던 철로가 숙소 앞에 있었나보다. 정동진역으로 향하는 철로였다. 해변에서 주워온 가리비를 씻어 가방에 넣던 딸애가 한 마디 했다.

"엄마, 우리 여기 또 올 수 있을까? 저쪽 바다가 보이는 객실에 묵은 사람들은 좋겠다."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서는데도 자꾸 되돌아보았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묵호항에 들러 아직 제철이 아니라서 자잘한 오징어회로 점심을 먹고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차창 너머로 저무는 태양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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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캡쳐

마냥 섭섭해 하던 딸애 탓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을 열어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검색해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객실 예약은 물론 객실 미리보기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의 객실은 총 49개로 모든 객실이 정동향이어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고 분명히 쓰여져 있었다. 여행후기에 들어가 보니 칭찬 일색이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객실이 몇 개 안 되면 차등요금을 적용해 손님 마음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소감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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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캡쳐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한 번 찾을 요량으로 나름대로의 의견을 적었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동종업계의 고의적인 업무방해로 간주해 '고발조치' 운운하며, 버럭 화부터 냈다. 그럴 수도 있다 싶어, 재차 신원을 확인시키고 추가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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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캡쳐

마음 씁쓸한 것은 변명과 책임전가로 불쾌하기까지 했던 숙소 측의 답글이 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계속 부드러운 말투로 업데이트 되었다는 점이다. 듣기 좋은 소리보다, '불편한' 고객의 소리에서 최고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젠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불쾌한 장소로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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