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목수라니, 너무 억울하잖아"

장목수의 목조주택 이야기

등록 2007.02.03 12:35수정 2007.02.0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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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청호가 바라다 보이는 데크

대청호가 바라다 보이는 데크 ⓒ 장승현

요즘 겨울이라 일이 없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일을 해주었다. 대청댐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네 집인데 대청호가 바로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을 사서 살고 있었다.


이젠 이 친구도 나이가 들고 하니까 집에 돈을 들이고 자녀들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졌나보다. 이 친구가 대전에 살다가 대청호로 이사온 건 5~6년 전인 것 같다. 내가 도시를 탈출한 시기와 비슷하다.

아이들 교육을 고민하던 친구는 특히 시골학교가 맘에 든다고 했다. 한 반에 아이들이 10명이고, 학교 운동장이 잔디로 되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다 넘어져도 걱정이 없다고 했다. 그 중 가장 좋은 건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a 주춧돌 공사

주춧돌 공사 ⓒ 장승현

이제 아들이 커서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고, 지리산에 있는 작은학교란 대안학교에 입학신청을 해놓고 있는 상태다. 지리산에 있는 작은학교는 아이들이 12명 정도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생활을 하고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하여튼 내 이야기의 본론은 이게 아니고 이 친구네 집을 고쳐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대청호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곳은 그린벨트로 묶이는 바람에 집을 맘대로 짓지 못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필지가 아주 좁게 나누어져 있었다. 전망을 좋게 하기 위해 경사진 축대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앞마당이 좁은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원래는 그 앞마당에 잔디를 깔고 살았다. 하지만 마당이 좁고 경사진 곳에 있으니 마당보다는 거실에서 나갈 수 있는 데크가 필요하다고 해서 데크공사를 하러 갔던 것이다.


a 데크 골조작업

데크 골조작업 ⓒ 장승현

문제는 현관 부분에 돌로 계단을 깔았는데 이걸 방부목 마루판으로 깔기 위해서는 우선 돌에 구멍을 뚫어서 박거나 아니면 돌을 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데크공사보다도 더 어려운 난공사였다.

그리고 친구네 집이라 군더더기 공사가 이것저것 생기기 시작했다. 물받이 공사, 칸막이 공사, 책꽂이 공사, 창틀 인텔리어 공사 등 이것저것 하다보니 날짜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집과 친구네 집은 1시간 거리에 있어서 오고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중간 중간 눈이 오거나 몸살이 나면 일을 진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늘어지니까 친구 딸아이는 "아빠, 저 아저씨들 엄청 게으른 것 같어, 일하는 시간도 얼마 안 되고 아침도 늦게 일을 시작하고"라고 아빠에게 말했다.

엄마·아빠가 출근을 하고 나면 점심을 차려주는 딸이 항상 우리들 일하는 걸 주시하고 감시했나 보다. 아들이 6학년 졸업하고 딸은 중학교에 다니는데 방학이라 둘이 집에만 있나보다.

a 게으른 목수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

게으른 목수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 ⓒ 장승현

그 이야기들 듣고 얼마나 눈치가 보이던지 그 딸내미가 있을 때는 망치질도 더 열심히 했고 점심 먹고 방안에서 쉬는 것도 눈치가 보여 밥을 먹자마자 일을 시작하곤 했다. 일도 진도가 쭉쭉 나가는 일 먼저 하게 되고 몸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아쉬운 건 열심히 일을 할 때마다 그 딸내미는 학원에 간다, 친구집에 간다 없어지고 좀 난감한 일이 있어 늘어지고 우리들이 바빠 늦게 도착하거나 하면 그 딸내미가 점심을 차려준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초짜목수는 "이건 안되겠네, 포기해야지 딸한테 인정받기는 글렀고, 어차피 게으른 목수들이라고 찍혀버렸으니까 그냥 하던 대로 그냥 일해야겠네"라고 말했다.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우리가 일당쟁이도 아니고 조금 천천히 하면 어때. 그래도 난 텔레비에 나온 잡분데 너무 하잖아."
"딴 소리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괜히 딸내미 들으면 일도 못하는 것들이 말만 많다고 해. 얼렁 열심히 하자고. 딸내미가 거실에서 보고 있는 걸."

a 창틀 인테리어 공사

창틀 인테리어 공사 ⓒ 장승현

공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 게으른 목수들이라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왜 그 딸내미한테는 우리가 게으른 목수들로 보였는지 궁금했다. 겨울이라 일이 없었고 친구네 데크공사를 해준다는 생각에 너무 편하게 마음을 먹은 건 사실이다.

공사가 작다보니까 자재 공급하기도 힘들었다. 이것저것 필요한 건 조금씩 구하다 보니까 번거롭기도 했고, 사람도 많이 투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직접 시간을 내서 일을 하는 바람에 진도도 많이 나가지 못했다. 날씨도 추웠다 눈이 왔다 하니까 일이 늘어진 건 사실이다.

하여튼 게으른 목수라는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데크 일을 하루빨리 마무리 하고 이 공사를 정리해야 했다. 사실 게으른 목수는 아닌데, 너무 억울했다. 그런데 친구 딸내미한테 한번 찍혀버렸으니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게으른 목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a 게으른 목수들이 완성한 데크

게으른 목수들이 완성한 데크 ⓒ 장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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