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아들 간병 중 완성한 '열정의 책'

[책 뒷이야기] <조용한 열정, 반기문>의 저자 이하원

등록 2007.02.04 10:50수정 2007.02.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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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7년 동안을 지근 거리에서 취재해 온 한 기자가 있었다. 그는 반 총장이 외교부 차관이던 2000년부터 한승수 UN 총회의장 비서실장(2001), 본부 대사(2002년), 청와대 외교보좌관(2003년), 외교부장관(2004년), 그리고 국제연합의 수장이 되기까지를 근접취재를 할 수 있었다.

기자는 2001년 반 총장이 외교부차관에서 해임됐을 때 원고지 50매 분량의 기사를 <월간조선>에 기고해 그의 낙마를 아쉬워했다. 주변의 힐난도 있었다. 장관도 아니고 차관 낙마를 뭘 그리 크게 다루느냐는. 그러나 기자에겐 특별한 마음이 있었다.


기자가 2001년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입학지원 때 선배 자격(84년 졸업)으로 추천서를 써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등 취재원 이상의 인품을 그에게서 발견한 탓이다.

기자의 바람대로 반 총장은 외교관으로 복귀했고, 대망의 8대 UN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기자는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 특집기사를 준비했고, 기사가 나간 지 며칠 후, 퇴직 후 출판사를 운영하는 신문사 선배의 전화를 받는다.

반 총장 스토리를 책으로 한번 써보라는. 그래서 탄생한 책이 <조선일보> 정치부 이하원 기자가 후배와 함께 쓴 <조용한 열정, 반기문>이다.

@BRI@책을 통해서 알았지만 반 총장은 충주의 수재였다. 집안은 부유했지만 인심 좋은 아버지의 '실패한 빚보증'으로 이내 가난해진다. 반 총장의 삶은 마치 지어낸 것처럼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충실히 따른다. 게다가 반 총장의 부인인 유순택 여사는 소박하고 입이 무겁다. 그리고 빠듯한 살림이지만 착실한 내조로 집안을 세운다.

이 책보다 이틀 앞서 출간된 아주 비슷한 책이 있다. 둘 다 반 총장의 성공에 맞춰 준비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YTN 정치부(외교통상부 출입) 신웅진 기자의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라는 책이다. 이 역시 반 총장을 가까이서 봐온 기록이다.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비슷하다.


지금 서점가에서 이들 서적이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유를 들여다 보면 세상은 여전히 평범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는 매력이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가난한 수재의 성공 스토리가 진부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많이들 찾는 걸 보면. 한편으론 반 총장의 수더분한 매력일지도 모른단 생각이다.

실은 책의 서평보다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다름 아닌 저자인 이 기자에 관한 것이다. 나와는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고 또 같은 연배 모임이기도 하다. 이 기자 자신이 알면 불편해 할지도 모르지만 책의 탄생 뒤에는 이 기자 개인에겐 힘들었던 일이 참 많았다. 그렇기에 책이 세상 빛을 본 것은 반 총장의 당선만큼이나 값진 일이다.


아버지는 치매·폐렴 합병증, 아들은 백혈병 투병

a 교회 친구들이 마련한 작은 책 사인회를 하고 있는 <조용한 열정, 반기문>의 저자 이하원 기자.

교회 친구들이 마련한 작은 책 사인회를 하고 있는 <조용한 열정, 반기문>의 저자 이하원 기자. ⓒ 유성호

이 가정에 고난이 닥친 것은 지난해 8월 2일. 하나뿐인 아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가 나왔다. 백혈병. 그날 밤, 이 기자는 멀리 제주도에 단기선교를 위해 머물고 계시는 목사님께 전화를 한다.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나 역시 그때 제주도에서 소식을 듣고 같은 아비의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는 그날 이후 매일 새벽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리고 직장을 마치면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아들을 간호했다.

그는 언제나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고, 아들의 병세를 중간 중간 기도하는 이들을 위해 알려줬다. 그 사이 혈소판 헌혈을 통해 아들과 피를 나눈 성도(聖徒)들이 생겨났고 '피의 번제'가 하늘에 닿았는지 9월 하순경에는 병세가 호전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하원 기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졸업. 1993년 <조선일보>(32기) 입사 후 사회부, 국제부, 수도권부 등을 거쳐 1999년부터 정치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0년 외교부를 출입한 지 1개월 만에 외교부 차관으로 임명된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처음 만나 취재를 시작했다. 이어 2004년 외교부 취재를 두 번째 시작 한 후, 보름 뒤에 대통령 외교보좌관에서 외교부 장관으로 영전한 반 사무총장을 다시 만났다.

2006년 외교부를 세 번째 담당하면서, 반 장관의 UN 사무총장 선거운동 및 당선 과정을 취재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될 때 경선과정을 취재했으며, 2005년 한나라당 취재팀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남북한과 미국, 변화하는 삼각관계>(2004년, 나남)가 있다.
이어 10월에는 3차 항암치료를 무사히 끝냈고 대망의 11월에 모든 항암치료를 마치고 연말에는 스키까지 탈 정도로 건강한 아이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사이 6년간 치매에 걸린 아버지까지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병하랴, 직장에 나가랴, 취재하랴, 기사 쓰랴, 남는 시간에 책 쓰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내색 한번 없이 만나면 언제나 아들 일에 대해 감사함을 연발했다.

그러면서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싶다는 것을 사인을 부탁한다는 명목으로 각자 구입키로 했다. 1월 마지막 주일인 28일. 오전 9시 예배를 마치고 조촐한 책 사인회를 열었다.

이 기자는 연방 쑥스럽고 밑바닥이 드러날까 두렵다며 어려워했지만 그의 노력의 소산물을 격려하고 싶은 친구들의 마음을 그가 헤아렸다.

"유성호 형제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복된 2007년 되시길. 李 河 遠"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이 기자 아버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향연 72세. 이 기자는 올 초 폐렴에 걸려 중환자실에 3주간 입원했다가 소생 가능성이 없어 집으로 모신 지 1시간만에 평안히 주무시는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책 제목에 올려진 '조용한 열정'은 반 총장과 이 기자가 공히 나눠 써도 되겠단 생각이 들은 것은 문상을 다년 온 후였다. 이번 책은 힘들었던 만큼 의미 있는 성과물인 셈이다.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에게 질 좋은 자양분 같은 책이 될 듯하다.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조용한 열정, 반기문 - 외교관을 꿈꾸던 소년에서 UN 사무총장까지, 개정판

이하원.안용균 지음,
기파랑(기파랑에크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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