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어린 수용소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프레모 레비의 기록물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서

등록 2007.02.05 18:47수정 2007.02.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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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 돌베개

인간은 보통 때에는 모두 평등과 존엄성을 지닌다. 하지만 수용소에 처하게 되면 달라진다. 그것도 광기 어린 전쟁과 살육이 소용돌이치는 포로수용소에서는 그 어떤 평등도 그 어떤 존엄성도 사라지게 된다. 있다면 오직 짐승처럼 생산성의 도구나 아니면 폐기물처럼 취급받는 것뿐이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갇힌 인간의 모습이 바로 그와 같다. 서로 살을 맞대고 잔다 한들 거기에 온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같은 날 함께 일을 했더라도 땀의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그저 생산성 증대를 위한 수단물일 뿐이요, 힘과 진이 다하면 가스실로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프레모 레비의 기록물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2007)는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그의 10개월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서, 어떻게 감옥 생활을 했는지, 동료들끼리 대하는 모습들은 어떠한지, 그 상황 속에서 인간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를, 사선을 넘어선 그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는 1919년 북이탈리아 토리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시절 이탈리아에서도 '인종법'이 반포되어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몸소 겪어야 했다. 일반 학우들도 그와 가까이하지 않았고, 교수들도 그를 학생으로 여기질 않았다. 힘겹게 대학을 졸업하고 반 파시즘 운동에 접근할 무렵, 1943년 12월에 체포되고 만다.

@BRI@체포 직후 그는 곧바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으니, 유대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런데 대부분 유대인들이 곧바로 가스실로 끌려가 살해되었지만, 그는 당분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으니 젊고 건장하다는 것이요, 그것은 노동력과 생산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만일 그가 나이가 들었거나 허리를 쓸 수 없는 병약한 노인이었다면 곧바로 그도 가스실로 보내져 살해됐을 것이다.

"그는 자기 번호의 마지막 세 자리 숫자인 018로만 불릴 뿐이다. 인간만이 이름을 가질 가치가 있으며 눌아흐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 자신도 자기 이름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정말 그런 것처럼 행동한다. 말할 때, 바라볼 때, 완전히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60쪽)

이는 눌아흐첸이라는 같은 감방 동료를 향해 칭하는 말이다. 그가 엄연한 사람이건만 그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은 그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죄수번호만을 기억할 뿐이다. 물론 그것은 동료들에게서 비롯된 일이 아니다. 그 감방을 지키는 책임자에게서 그리고 히틀러에게서 비롯된 일이다. 그것만이 인간을 통제하고 취급할 수 있는 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그들이 느끼는 인간이란 그 어떤 존엄성도 그 어떤 자유도 없다. 있다면 고작 환상 속을 헤매는 곤충의 허물 같은 것뿐이다. 인간이라는 육신의 탈을 벗어 던진 채 그 영혼만이라도 어린 시절이나 행복했던 그 시절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까닭에서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유를 꿈꾸지 못하면 그야말로 살아갈 희망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진흙투성이의 누더기를 입은 굶주린 도둑으로, 사기꾼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뒤섞어, 우리가 이런 굴욕을 당해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판단한다. 그들 중 우리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에게 우리는 '카체트', 중성 단수명사일 뿐이다."(186쪽)

이른바 수용소 밖의 민간인들이 수용소 안의 죄수들을 그렇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감옥 밖의 민간인들은 감옥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무슨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당시의 불문율이었다. 그 무지만이 그들 자신을 지켜내는 방어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스 당국도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들은 '학살'을 '최종해결책'이라 꾸며댔고, '강제이송'이 아니라 '이동'으로, '가스실 살해'가 아니라 '특별처리'라는 허울좋은 구실을 붙여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일들이 모두 거짓으로 알려질 경우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전 군대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 까닭에 히틀러나 SS대원들이나 카포들, 그 휘하의 언론들은 한통속이 되어 그 같은 패륜적인 죄를 저질렀으니 어찌 그들을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된 희생자의 수는 150만 명이다. 그 중 90퍼센트는 유대인이었고, 그곳 이외의 수용소 등지에서 희생된 자를 합하면 600만 명이 넘는다. 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것은 1945년 1월 27일이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사람들 중 5만 8000명은 퇴각하는 독일군에 의해 연행돼 죽었다고 한다. 그 연행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7000명이었는데, 프레모 레비도 그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무쪼록 광기 어린 전쟁과 살육이 난무하는 포로수용소에서 인간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 그 속에서 10개월간을 살다 나온, 그래서 힘겹게 살아남은 한 인간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그 실체를 들여다보길 바라며, 오늘 우리 시대에는 다시는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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