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노숙자들

생각하면 가슴 아려오고 범죄를 생각하면 끔찍하고...

등록 2007.02.06 10:42수정 2007.02.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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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담요를 덮고 잠을 자는 노숙자

담요를 덮고 잠을 자는 노숙자 ⓒ 김재경


@BRI@모임이 있어 서울 충무로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탔다. 한 정거장쯤 지났을까. 갑자기 차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큰소리 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보았다. 허름한 40대 초반의 남성이 50대 남성을 향해 시비를 걸고 있었다. 겁에 질린 승객들이 자리를 피해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침, 하차하기 위해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서며 50대 남성이 시비를 피하기라도 하듯 얼른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출입구에 앉은 젊잖아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다시 시비를 건다.

"야 니들이 뭘 알아. 공단에서 죽도록 사람 취급 못 받고 소 돼지처럼 일해야 고작 80만원 받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알아. 내 이 옷(잠바)도 만 원짜리야. 니들 말이야. 펜대 굴려서 부동산이나 사고 팔아서 수억 대 만지잖아."

한 동안 혼자 횡설수설해도 아무도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그 때 뒤에 서 있던 젊은이가 "아저씨 여기서 내려요"라며 팔을 잡았다. 그는 내리지 않으려고 저항하며 발버둥쳤다.

그는 주변에서 합세하는 젊은이들에게 억지로 끌리다시피 전철에서 내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듣게 된 정황은 "뒤에서 라이터 불을 켜 서 있는 아가씨 코트에 붙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만류했던 사람들에게 차례로 시비를 걸게 된 것이라고.

옆에 앉은 50대 아주머니는 "입고 있던 코트에 불이 붙었다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치를 떤다. 세상을 향한 이유 없는 불만이 표출되어 무작위로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잠시, 3호선으로 갈아타기 전 4호선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a 박스안에 노숙자가 있다.

박스안에 노숙자가 있다. ⓒ 김재경


머리카락이 떡처럼 뭉쳐진 한 노숙자가 옆자리에 앉자 한 여성이 곤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즉시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그 자리 주변은 오래도록 아무도 앉거나 서있기조차 꺼려했다.

집을 향해 다시 4호선 지하철을 타려고 밤 10시가 넘어 회현역으로 갔다. 계단 아래에는 담요를 머리까지 덮었지만 너무 추워서 잠들지 못하는 노숙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곁에 있는 종이 박스 안에는 노숙자가 잠들어 있고, 안쪽에는 뚜껑 없는 종이 상자가 있어서 다가가 보았다. 너무 추워서 잠들지 못하는지 서너 명이 공동으로 누워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금방 욕이라도 할 태세인 노숙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너무 무서워 좀 멀리 매표소 앞에서 사진만 찍고 뒤 돌아서는데 한 노숙자가 뒤에 서 있었다. 그는 표 넣는 출입구를 일일이 밀고 다녔다.

얼마 전 한 역에서 보니 홈은 열려져 있었고, 그 통로는 노숙자들의 무임 통로인 듯 했다. 노숙자들은 그 통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추위에 시달린 노숙자들은 승객이 적은 늦은 밤이나 새벽에 지하철에 탑승하여 긴 의자에 눕거나 앉아서 몸을 녹이는 듯 했다. 그들에게 따끈한 지하철 의자는 요람 같은 곳이리라.

겨울 혹한에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하지만, 특정한 이유 없이 라이터 불을 켜서 여성의 코트에 붙이려 했던 대상 없는 범죄 유형은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a 뚜껑없는 박스안에는 여러 명의 노숙자가 함께 잠을 잔다.

뚜껑없는 박스안에는 여러 명의 노숙자가 함께 잠을 잔다. ⓒ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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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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