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등록 2007.02.07 15:15수정 2007.02.0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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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어디 여행할 계획 없는 느긋한 주말에, 아이들은 식탁 위에 놓아 둔 찹쌀떡 하나씩 입에 물고 밖으로 사라졌다. 소파 위에 길게 누워 스르르 눈을 감던 남편이 벽을 타고 오는 진동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직도 공사 안 끝났나? 그거 참 되게 오래 걸리네."

@BRI@맨 아래층 사는 이웃이, 낡은 집안을 군데군데 손을 보다 아예 전체를 뜯어 고치는 리모델링을 시작한 것이다. 그 집 뿐 아니라 집안 여기 저기 다시 손 보는 집이 늘어났다.

이 아파트에 입주한 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남편 회사에서 전세 자금을 대출 받아 신혼 둥지를 마련한 지 9년 만에 우리는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뤘다.

이 아파트에 이사오기 전, 우리부부는 곧잘 아이들을 데리고 터파기 조차 시작되지 않은 허허벌판을 찾아 오곤 했다. 타워크레인이 군데군데 박히고 단지의 외곽이 조성되는 모습을 근처 둔덕에서 바라보며 우리도 가슴에 희망을 쌓아갔다.

그렇게 지루하던 두 해가 흐르고 이사하기 하루 전날 비로소 멀리서 바라만 보던 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15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부대끼며 살다보니, 새집은 정말 궁전처럼 넓었다.


어머니는 구석구석 먼지를 쓸고 또 쓸며, 아무리 청소해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내 손을 어루만지며, 알뜰하게 살아준 것에 감사하다고도 했다. 새 가구가 놓일 자리를 구상하느라 내 가슴은 콩닥거렸고, 새로 조성된 놀이터 모래더미 속에서 아이들은 하루해가 저무는 줄 몰랐다.

그런데 그때의 그 가슴 콩닥거림이 이제 내겐 없다. 돌이켜보니, 내 집이 다 지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새 집에 이사 와서 한 동안은 넓고 쾌적함에 막혔던 가슴이 뚫리는 듯 했다.


그러나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 했나. 늘어가는 세간살이로 인해 공간을 좁히는 가구들이 슬슬 답답해 보이고, 집이 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틈을 만들기 위해 애꿎은 가구만 이리저리 옮기다보니, 벽지와 바닥에 흠이 생기고 어머니는 며느리 몰래 허접한 살림살이들을 몰래 내다버리기까지 했다.

궁전 같다며 좋아하던 그 벅차고 설레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내 손을 잡고 감격에 겨워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고마운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곧 낡아지고 싫증날 물건에 대한 욕심 단지에 하느님께서 일부러 구멍을 내 놓으셨나보다. 그러니, 채워도 채워도 늘 마음이 허전할 수밖에.

천장에 습기가 차고, 벽지색깔마저 바래져 비록 헌 집 같지만, 우리가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집이 아니던가. 새 것으로 가리고 꾸미는 것도 좋지만, 아름다운 집은 '세간'이 아니라 '사람'으로 꾸며지는 것이 아닐까.

a 따뜻한 밥상앞에서

따뜻한 밥상앞에서 ⓒ 박명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은, 가족 모두가 빨리 되돌아오고픈 '따뜻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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