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운하 토론장인지 정치집회장인지

[현장 스케치] 푸른한국 주최 '한반도대운하 쟁점 대토론회' 5장면

등록 2007.02.08 10:00수정 2007.08.3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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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자료집 1000부 동났다"

심상치 않았다. 7일 오후 1시 50분께, 포럼 푸른한국이 주최한 '한반도대운하 쟁점 대토론회'가 열리는 프레스센터 1층 로비에 들어서니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혹시 이들이 모두 국제회의장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엘리베이터를 탄 뒤 20층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10여명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20층으로 직행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열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있다. 젊은 여자 5~6명은 기다란 부스 앞에 앉아 4개의 방명록을 펼쳐놓고 사람들을 맞이했고, 그 옆으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의 화한이 눈에 띄었다. 물론 회의장 앞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회의장 안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행사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350여 좌석은 꽉차있다. 좌석에 앉지 못하고 뒷자리에 서 있는 사람만도 어림잡아 70여명. 좌석 양 옆에도 각각 20~30여명씩 서 있었다.

"800~900명 정도 온 것같다. 자료집을 1000부 찍었는데 동났다."

토론회 관계자의 말이다. 유력 대권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내건 경부운하에 쏠린 이목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했다. 좌석 앞쪽으로는 한나라당 박찬숙, 송영선 차명진 의원과 현승일 전 의원 등이 앉아 있다.

#장면 2 "정치적 의미 부여하지 말아달라"... 그러나


웅장한 음악과 함께 일출 장면이 비춰지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선택, 한반도대운하' 동영상이 상영됐다.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물의 흐름이 생기고, 세상이 시작됐다"는 멘트로 시작됐다. 이어 17개 노선, 3000km에 달하는 경부운하 노선도가 나오고 배가 운하를 통과하는 환상적인 시뮬레이션이 거대한 화면에 펼쳐지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한반도대운하는 단순한 뱃길이 아닙니다, 국민정서를 순화하고 국민통합의 길이자 국운융성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정치적 함의'가 물씬 풍겼다. "21세기 워터웨이, 한반도대운하를 건설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며 10여분간의 동영상은 끝이 났다. 한반도대운하를 대체 누가 건설하겠다는 것인지?


이어 연단에 오른 인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좌장격인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그는 포럼 푸른한국의 상임고문이기도 하다. 이 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언론 등에서는 선거 관련해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면서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있는 것이니 이를 토론하자는 것"이라고 토론회 취지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여름 수해 때 20여일간 전국을 돌며 복구작업을 했다"면서 15분동안 국토개조의 필요성을 느꼈던 당시 소회를 밝힌 뒤 이같이 말했다.

"과거부터 정치의 큰 덕목은 '치산치수'였습니다. 대운하를 통해서 국토를 크게 손질하고 나라 기운을 일으켜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줄 때입니다."

a 7일 오후 포럼 <푸른한국>이 주최한 '한반도대운하 쟁점 대토론회'가 열린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이 방청객들로 가득 차 있다.

7일 오후 포럼 <푸른한국>이 주최한 '한반도대운하 쟁점 대토론회'가 열린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이 방청객들로 가득 차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a 이재오 의원과 송영선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자리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

이재오 의원과 송영선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자리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장면 3 "이명박 전 시장 때문에 우리 연구소 활력 넘친다"

"오늘 선관위에서 난리를 쳤다. 미리 경고하더라. 지금도 회의장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을 것이다."

잠시 회의장 바깥으로 나갔다가 행사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몸조심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정치적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교수님들의 단점이 이겁니다. 너무 많이 준비해서 너무 많이 발표하려는 것. 노무현 대통령 닮지 마세요."(토론 사회자인 이영해 한양대 교수가 발표 시간을 지켜달라고 독려하면서)

"이명박 시장이 (경부운하를) 내걸어서 요즘 우리 연구소 활력이 넘칩니다."(발제자 노창균 목포해양대 교수)
"그 말은 선거법 위반입니다."(사회자가 노 교수의 말문을 막자)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목포에서 올라와서 제가 흥분했나 봅니다."(노 교수)
"오늘 이명박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온 것 같애."(회의장 바깥 의자에 앉아있는 아줌마들의 대화)
"이건 전초전이야.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해."(각 학회에서 온 듯한 할아버지들끼리 명함을 주고 받으며 하는 말)

#장면 4 "학술단체 줄세우기, 불법 선거운동 아닌가"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대운하에 대한 찬성, 반대 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찬성일색이었다. 대신 플로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인사는 김웅진 협성대 교수(한국물류학회장), 정동양 한국교원대 교수, 김대모 중앙대 교수 등 3명이다. 3명의 발제자들이 각각 물류, 환경, 일자리 창출 등의 측면에서 경부운하를 찬성한다는 기조를 발표했고, 토론자들도 대동소이했다. 김웅진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대운하와 관련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나 언제든 새로운 변화는 거센 반대에 부딪치게 마련"이라며 옹호했고, 정동양 교수도 "물길을 트는 것은 경제성 이외에도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킨다"고 경부운하 건설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플로어에서 메모형식으로 제출된 의견은 반대 일색이었다. "왜 대운하 패널이 찬성 일변도로 진행되는 것이냐"는 항의성 질문에 대해 사회자는 "주최측에서 접촉을 했는데 환경운동연합 등은 거부해서 모시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것인가" "독일 RMD 운하는 물류량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데 그런 얘기를 들어보고 발제를 한 것이냐" "강변을 직선화시키면 유속이 빨라져서 비가 많이 올 때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 "낙동강, 한강의 교각 숫자가 100개 이상이다, 1개 교량을 건설하는 데 500억원이 든다는 것을 전제하면 다리만 만드는 데도 5조원이나 소요되는 것 아닌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급기야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활동처장이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어떤 환경단체가 토론회 참석을 거부했다는 것이냐. 단체 이름을 밝혀달라. 이날 토론회에 앞서 자료 공개를 요청했는 데도 거부하지 않았나. 이런 비학술적 토론을 벌여놓고 학술단체를 줄세우기 하는 것, 이건 불법 선거운동 아닌가."

잠시 뒤 사회자는 "선거법 위반 우려가 있어서 발표자료와 동영상까지 선관위에 제출했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허가해줬다"면서 "5월 경에는 (경부운하) 반대론자들을 포함해 찬반토론을 열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a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장면 5 "정치집회 노골적으로..." "경부운하 가능성 알게됐다"

토론회가 끝난 뒤 회의장 바깥에서 기자와 만나 짧게 인터뷰한 두 사람의 상반된 촌평.

"황당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정치집회를,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할 수 있는지. 토론이라는 것은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욕하는 토론을 했다면 토론회도 아니고 건강한 논의도 아닙니다. 이런 분들의 지지에 의해 대통령이 되고자 하려는 분의 의도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이걸 누가 정치행사가 아니라고 보겠습니까. 내일 언론 반응을 보면 알겠지요. 더 나쁜 것은 이런 정치적인 비학술행사에 학회(전국자연보호중앙회, 전국포럼연합, 한국물류학회, 한국SCM학회, 한국맑은물보전협회, 아시아태평양환경NGO해한국본부, 한국지역산업진흥학회 등 토론회 후원사를 지칭하면서)들을 주욱 연명했어요. 결국 학회들을 정치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바람에 의해 왔다갔다하는 학회도 문제지만,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세과시하거나 이 부실한 계획에 권위를 잇겠다고 하는 정치세력들,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염형철 처장)

"사업비가 22조 들면 일자리 80만개 창출된다는 것은 전문가들은 잘 모르잖아요.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번 토론을 통해 확실하게 (경부운하의) 가능성을 알았습니다. 평소에 국가적 프로젝트가 있어야 나라의 큰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많이 공부했습니다.

(염 처장이 제기한 불법선거운동 의혹 주장에 대해 묻자) 사전에 선관위 다 검토했어요. 어떤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때 그 때 사회적으로 관심있는 이슈에 대해 토론한 건데요.

(반대토론자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발제자는 당연히 찬성 입장에서 얘기할 것이고, 토론자나 플로어에서 질의응답이 나오다보면 자연스럽게 반대토론이 될 줄 알았다."(이재오 최고위원)

후기 "이명박 대운하 프로젝트 시동"

이날 저녁 인터넷에 뜬 각 언론사의 토론회 관련 보도기사를 훑어 봤다.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이명박측, '대운하 프로젝트' 공론화 시동/토론회 개최… "수질악화 등 환경 파괴는 오해" 주장(한국일보)
"대운하 수송비 8조 9천억 원 절감"(YTN)
이명박 대선공약 '한반도 대운하' 토론회 열려(CBS)
李, 한반도 대운하 `띄우기' 박차(연합뉴스)


염 처장의 말은 비교적 적중했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달라"는 이 최고위원의 부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주최측은 토론회도 아니고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천명했으나, 실질적인 쟁점토론은 없었다.
#경부운하 #한반도대운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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