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31회

등록 2007.02.08 08:22수정 2007.02.0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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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 임해서 만용을 부리는 짓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있더라도 삼초를 양보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만용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운중보의 교두인 단양수 마궁효에게 삼초를 양보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흡…!"


@BRI@조금 전 큰소리를 치며 마궁효에게 모욕을 주었던 백도의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느긋하게 팔짱까지 끼었던 여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어차피 양보한 삼초에 승부를 보겠다는 듯 일초부터 단양수 중 사초식인 단망식(斷網式)을 펼쳐 백도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게 만들더니 이초엔 금사선장(金絲線掌)의 절초인 사련추혼(絲聯追魂)으로 허공에 빽빽한 장영(掌影)의 폭풍우를 만들었다.

상대의 반격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수비를 도외시한 그의 공격은 본래의 위력보다 두 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듯 보였다. 만약 백도가 약속을 어기고 반격을 해온다면 그 역시 위험을 감수해야 할 터였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백도가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 큰 경계는 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는 백도의 신형이 폭풍우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뛰면서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그의 입에서도 간간이 다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파파팟팟---!

백도의 펄럭이던 옷깃이 마궁효의 공격에 찢겨져 나가고 장영이 스치는 순간 가루로 화했다. 백도의 양발이 쫙 벌려지며 땅 위에 내려앉았다가 상체를 마저 숙이며 옆으로 한 바퀴 돌면서 이장이나 뒤로 물러나자 백호각 벽 쪽 가까이 까지 밀려나 더 이상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위기의 순간에 가까스로 마궁효의 공격을 피한 백도는 버릇처럼 도집을 잡았지만 약속한 것이 있음을 잊지 않았는지 출수하지는 않았다.


'후후… 네 놈은 우리 교두들이 가르치는 무훈십이조(武訓十二條)를 망각한 사실에 대해 통탄할 것이다.'

무인으로서 가져야 할 열두 가지 조목 중 한 가지가 절대 만용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는 절대 놓치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 마궁효는 교두답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삼초(三招)…!"

마궁효는 약속을 상기시키듯, 또한 기회가 주어진 마지막 초식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듯 짧게 외치며 백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건방진 놈! 이번 초식까지는 피해다오. 다음 초식은 네 가슴에 품(品) 자를 새겨 줄 테니.'

주어진 삼초 안에 백도를 꺾었다면 아무런 위신도 서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삼초가 지난 다음 백도가 쓰러진다면 완벽한 승리는 되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비난에 대한 변명은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파팍---!

수도를 빳빳하게 세우고는 그의 쌍수가 빠르게 교차되며 때리고 밀며 잡아채 가는가 하면 요혈을 찌르고 있었다. 단양수 초식 중 가장 무섭다는 천궁식(穿穹式)이었다. 진기를 실은 마궁효의 수도(手刀)는 바위도 두부처럼 꿰뚫거나 으스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으음…!"

나직한 신음과 함께 백도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막고자 한다면 막을 수는 있겠지만 공격을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막는다 해도 후속대응을 할 수 없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는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피해나갔다. 이번 초식만 무사히 피해 보자는 생각인 것 같았다.

사실 백도는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키가 큰 편이었다. 그럼에도 저리도 유연하게 몸놀림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동안 수련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는 숙이거나 젖히고, 자세를 낮추거나 옆으로 비틀면서 피해나갔는데 그때마다 마궁효의 수도가 살짝 스쳐지나갔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허나 그는 마궁효의 마지막 변화를 피하기 위하여 뒤로 물러나다 보니 백호각의 벽에 등이 닿아 더 이상 물러날 수가 없게 되었고, 내리치는 마궁효의 수도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빠박---!

바싹 마른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잠시 엉켜들었다가 마궁효의 신형이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엉켜 든 짧은 순간 세 번의 변화를 보였는데 백도의 얼굴이 굳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약간 손해를 본 것 같았다.

"제 사초!"

마궁효는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자신만의 수법을 보여줄 시기였다. 암수(暗手)에 불과해도 따질 이유가 없었다. 마궁효는 자신의 수도에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으로 백도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주었다고 판단했고, 그 타격은 백도의 움직임을 잠시 묶어둘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마궁효는 재차 득달같이 백도에게 달려들면서 오른 쪽 수도로 백도의 좌측 어깨를 내리치면서 왼손을 앞으로 미는 듯 싶었는데 그것은 이상하게도 상대에게 손등을 보이는 괴이한 동작이었다.

'이제 갈 시간이다! 건방진 놈.'

내심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백도는 막는데 급급해 미처 도를 뽑지도 못하고 왼손에 들린 도집으로 치켜올리며 내리치는 자신의 우수를 막으려 했다. 가슴이 훤히 빈 상태. 순간 그의 좌수가 뒤집어지며 손바닥이 백도 쪽을 향했다.

츠팟---!

무언가 한 순간에는 알아볼 수 없는 세 개의 조그만 물체가 백도의 가슴을 향해 품자 형으로 뿌려졌다. 날아간 물체는 사실 수도(手刀)를 익히는 인물들이 손가락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대개 금으로 만든 한 치 길이의 원통형 금속으로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것이었다. 헌데 그것을 암기처럼 쏘아내자 너무나 무서운 암기로 화했던 것이고, 특히 이 순간에는 치명적인 암기가 된 것이다.

워낙 근접해 있었고, 손을 뒤집는 순간 쏘아나간 것이라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백도의 몸은 백호각의 벽에 기대어 있었기 때문에 물러나면서 피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마궁효는 확신했다. 자신이 이렇듯 정교한 암기수법을 익히고 있으리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을 터이고, 실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 수법은 자신의 마지막 구명줄이자 필살기였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 극히 위험하지 않는 한 사용하지 않으리라 했던 수였다. 사실 이런 수법이 알려진다면 이후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백도는 자신에게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만일 승부를 본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대였다. 더 이상 그의 위명을 높이는데 교두들이 희생될 수는 없었다. 눈에 자신이 쏘아 보낸 물체가 백도의 가슴에 박히고 있었다.

"………!"

그러나 그 광경은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갑자기 백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하초(下焦)에서 느껴지는 맹렬한 고통이 그의 입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아악-----!"

마궁효의 몸은 허공에서 한바퀴 돌면서 백호각의 창문에 처박히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하초에서 느껴진 맹렬한 고통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자신의 몸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르고 있었고, 어떻게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와장창---!

백도는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위기에 처한 그는 백호각을 벽을 이용해 스르륵 몸을 뉘어 마궁효의 공격을 피했고, 그 순간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누운 채 훤히 비어있는 마궁효의 아래쪽을 발로 올려 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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