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32회

등록 2007.02.09 08:35수정 2007.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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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궁효의 몸은 이미 창문을 뚫고 백호각 안으로 사라졌는데 그제야 백도는 몸을 일으키며 옷에 축축한 흙물이 묻은 옷을 대충 털었다. 젖은 흙물이 그의 몸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무리 급해도 땅바닥에 눕는 적이 없을 정도로 병적으로 청결한 모습을 유지해 온 그에게 이런 모습은 확실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허나 조금 전의 위급함이나 당황한 기색은 어디 갔는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아주 미세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만족한 듯한 미소가 입 꼬리에 물려 있었다. 그는 마궁효가 처박히며 뚫어놓은 창문으로 느긋하게 뒤쫓아 들어가려는 순간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인영이 황급히 그곳에서 빠져나오며 막무가내로 일장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백도는 황급히 몸을 옆으로 두 걸음 비껴나며 진력을 실어 마주 장을 뻗었다.


@BRI@퍼---펑---!

상대 역시 앞에 걸리적거리는 인물이 있음을 보고 일장을 날렸던 것 같은데 장력이 마주치자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싱겁게도 상대와의 수교환은 단 일장으로 끝나버렸다.

“고맙군.”

무엇이 고맙다고 하는 것일까? 허나 백도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상대는 자신과의 일장교환으로 발생한 탄력을 이용해 더욱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던 것이다. 일장을 교환한 상대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안고 있었던 것 같았다.

헌데 그 순간 백호각의 천정에서 시커먼 물체 하나가 스물거리며 기어내리더니 땅 위에 납작 엎드려 사라진 자의 뒤를 쫓아 기어가는 것이 아닌가? 분명 기어가고는 있지만 기어간다는 표현이 맞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아무리 빨리 기어도 걸어가는 것보다 느리게 몸구조가 되어 있는 법이다. 헌데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한 인영이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 속도는 뛰어가는 것 보다 훨씬 빨랐다. 아니 아예 땅위를 미끄러져 간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마치 뱀이 풀숲을 헤치고 빠르게 사라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창문으로 몸을 날리던 백도의 뇌리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사충(四蟲) 중 복(蝮)?’


바로 상만천의 일접사충 중 복(蝮)이었다. 이름과 같이 살모사나 독사와 같은 몸놀림을 보이며 저렇듯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유일하게 복(蝮)일 것이다. 허나 백도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급히 창문 안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고함과 함께 또 다시 누군가와 부닥칠 뻔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멈춰랏!”

-----------

역시 옥기룡은 설중행이 상대하기 벅찬 고수였다. 운중보 내 뿐 아니라 중원을 뒤져도 전대 동정오우를 제외하면 장문위와 더불어 수위를 다툴 것이란 소문은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반드시 잡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더불어 몇 번 자신의 손을 빠져나가 내심 노기가 치민 옥기룡의 손속에는 추호도 사정이 없었다.

더구나 혈간의 독문비기인 선인천간(仙人天竿) 중 홍예금룡(虹霓擒龍)은 절정의 무공이어서 당해낼 무공이 많지 않았다. 설중행이 남들 모르게 익히고 있는 두 가지 무공이라면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몸 상태로는 완벽하게 펼쳐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 두 가지 무공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었다. 특히 운중보 안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의 몸에서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펼쳐지는 순간 많은 혼란이 올 것이고, 많은 자들이 그의 목숨을 노릴 터였다.

파팍---!

예기치 못한 기류가 설중행의 좌측 어깨를 두 번 연속하여 강타하고 그의 몸이 우측으로 미끄러져 밀려날 때 잡아채 온 옥기룡의 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진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아미파의 독문절기인 금정면장(金頂綿掌)을 펼쳤다.

빠지직---!

손과 손이 마주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 순간 설중행은 똑같은 소리가 그의 뒷머리에서 시작되어 전신을 울리는 것을 느꼈다. 화끈한 느낌과 함께 혈맥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해오고 그의 몸은 허공에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입에서 뿜어진 핏줄기가 허공에 무지개처럼 호선을 그었다.

옥기룡의 공격에 의한 타격도 충격이었지만 진기를 무리하게 끌어올리자 뒷머리부분의 혈맥이 터졌는지 아니면 막혔는지 모르지만 엄청난 충격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숨을 쉬기도 거북할 정도로 가슴에도 빠개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빌어먹을… 이것으로 끝인가?’

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일어서려는 설중행의 몸에 무언가 감기는 느낌이 들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자신의 몸을 감아 넘어뜨린 것은 아마 은사절편이었을 것이다.

와장창---!

정신이 더욱 아득해 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굉음이 들리며 창문이 부셔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이어 바닥에 무언가 묵직하게 떨어져 내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웬 놈이냐!”

날카로운 옥청량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날아 들어온 것은 바로 백도에게 하초를 채인 채 창문을 뚫고 들어온 마궁효였다. 상황을 알 수 없는 설중행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흐흐… 능형이… 나를 구하러 들어온 것일까?’

밖에는 분명 능효봉이 대기하고 있었다. 굳이 같이 들어올 필요가 없었고, 만약을 위해 설중행이 강요하다시피 한 일이었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가운데에서 그는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능효봉이라 해도 자신을 구하러 들어온들 별 수 있으랴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마궁효가 창문을 뚫고 들어온 순간 동시에 반대편의 창문도 무언가 날아 들어온 것에 의해 뚫어졌고, 그 구멍을 통해 날아들어 온 물체는 백호각 내의 인물들이 잠시 어리둥절한 틈을 타 설중행을 안아들고 순식간에 마궁효가 뚫고 들어온 구멍으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어 밖에서 가죽 북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장력이 부닥치는 소리가 분명했다. 마궁효가 날아들어 온 일로 잠시 시선을 돌렸던 옥기룡은 그 순간 사태를 깨달았다. 그의 입에서 벼락같은 호통이 터져 나오며 그의 신형은 어느새 마궁효가 뚫고 들어온 창문구멍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곳을 통해 들어오려던 백도와 마주쳤던 것이다.

“멈춰랏!”

백도는 또 다시 일장을 날리려 하였는데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허나 상대가 누군지 파악하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동작을 멈추었고 두 사람은 엉거주춤 뚫어진 창문 위에 걸터앉은 자세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형이었소?”

“어쩔 수 없었네. 마교두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거든.”

그 말에 옥기룡은 허탈한 기색을 띠었다. 그가 물은 것은 사람을 빼내간 사람이 백도 당신이었느냐는 물음이었는데 백도는 엉뚱하게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백도와 마궁효가 한판 붙으려는 순간까지 지켜보았던 옥기룡은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 충분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곳으로 튀어 나온 놈이 어디로 갔소?”

마음이 급했다. 여기서 백도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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