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를 타고 고현시장으로 향하는 할머니가 곤한 잠에 빠져있다.배창일
지난 4일 어둠이 자욱한 경남 거제시 남부면 쌍근마을.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던 시내버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었다. 새벽 5시 50분 쌍근에서 출발해 탑포, 율포, 거제면, 사곡 등을 돌아 고현으로 향하는 첫 시내버스가 출발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새벽 시간,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탑포마을에 도착하니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두 명의 할머니가 버스를 맞았다.
"어제는 허들시리 추웠는데 오늘은 날이 마이 풀맀네". 봇짐을 한가득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오른 두 할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늘의 첫 손님들이다.
구불거리는 비탈길과 오르막길을 지나던 시내버스가 이내 멈춰 섰다 3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태웠다. "할매요, 잘 들 주무셨지예". 익숙한 얼굴인 듯 할머니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율포마을에 도착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승강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목도리와 면장갑으로 중무장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젊은 아주머니가 서둘러 버스에 올라탄다.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얼굴을 보자마자 말부터 건넨다. 버스 안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졌다.
"어데 간다꼬 이리 일찍 버스를 탔소?"
"거제장에 떡국거리 뺄라고 간다아입니꺼, 쫌만 늦게 가도 많이 기다리야 해서 첫차 타고 갑니더".
어느새 손님들로 가득 채워진 버스 안. 반가움과 안부를 묻는 말들이 엔진소리를 뚫고 이어진다. 조용하던 버스 안이 이내 얘기꽃으로 가득해졌다.
아직도 정은 살아있네
@BRI@시내버스가 출발한 지 30여분이 지났다. 차량은 어느새 동부면 동호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6시 17분. 어느덧 한가했던 버스가 새벽 손님들로 가득했다.
빈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반대편 차선에서도 차량들의 불빛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는 손님은 없어도 타는 손님들은 줄을 이었다.
"어머이, 내가 차비 냈응께나 고마 타이소". 동부면에 도착하자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버스에 먼저 오르며 뒤따르던 할머니를 보고 말한다.
"아이고, 내가 낼 낀데 만다꼬 니가 내고 그라노".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앉아서 갈 자리가 부족했지만 이내 "할매요, 이리 와서 앉으이소"라며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삼성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고맙소, 거제면까정만 앉아 가께"라며 할머니가 자리에 앉았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훈훈한 시골인심이 새벽을 달리는 버스 안에는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스피커를 타고 노사연의 노래 '만남'이 잔잔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