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연에 가깝게 만든 인간의 예술, 티티엔

[중국 운남 여행기 16] 다락논이 있는 웬양의 풍경

등록 2007.02.09 11:45수정 2007.02.0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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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전, 사다리 논이라는 뜻이다. 웬양 따오이슈에서 본 계단식 논

제전, 사다리 논이라는 뜻이다. 웬양 따오이슈에서 본 계단식 논 ⓒ 최성수

웬양(元陽) 가는 길

@BRI@웬양 가는 길에서는 사계절을 다 만날 수 있다. 쿤밍을 출발한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자, 이내 푸릇푸릇한 밭이 나타난다. 밭에서 야채를 가꾸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더러는 물장수처럼 장대 끝에 물통을 매달고 가는 농부도 보인다. 가만 보니 그것은 물통이 아니라 오줌통이다.


우리네 옛 농사 방식대로 사람의 오줌을 거름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풍경을 추억에 젖어 바라본다. 내가 추억에 젖는 것은, 그 풍경이 바로 내 어릴 적 고향 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야채뿐인 줄 알았더니, 딸기 밭도 있고 수박 밭도 있다. 그 밭 위로 햇살이 자락자락 내려앉는다. 차창으로 비쳐드는 햇살도 더없이 따사롭다. 전형적인 봄 날씨다. 저절로 눈이 가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나른한 봄 날씨 탓이 아니라, 내가 기억 속의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탓이리라.

그런 내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는 쉬지 않고 달린다. 차창으로 위시(玉溪)란 표지판이 지나간다. 어디 이쯤에서 내려 생의 나른한 며칠을 그냥 아무 일 없이 쉬어보고 싶도록 풍경은 편안하다. 그런 내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눈앞으로 갑자기 온통 노란 벌판이 펼쳐진다. 유채밭이다.

처음 운남 여행을 했던 몇 해 전, 나는 유채꽃밭을 보기 위해 꾸징(曲靖)에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따리와 리지앙으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그 유명하다는 꾸징의 유채밭을 보지 못했었다. 이번 여행에도 꾸징은 내 여정에 없다. 꾸징에서 2월 말에 찍었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산과 들이 온통 노란 빛으로 눈부신 풍경, 그 속에서 뒹굴면 내 몸에도 온통 노란 물이 들 것 같은 포근함. 세상 다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온통 봄빛의 세상이 사진 속에 있었다.

a 쿤밍에서 웬양 가는 길의 채소밭. 채소밭과 유채밭이 어우러진 이 길은 봄이다.

쿤밍에서 웬양 가는 길의 채소밭. 채소밭과 유채밭이 어우러진 이 길은 봄이다. ⓒ 최성수

꾸징의 유채꽃밭에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조그만 유채 벌판이지만, 나는 사진 속의 풍경을 떠올리며 차 안에서 자꾸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그것은 밖의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을 찍는 행위일 뿐이다.


위시를 지난 차는 통하이(通海)를 지난다. 길가에는 잎이 앙상하게 말라붙거나, 아예 잎조차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들이 있다. 그런 나무 옆에는 너무 짙푸르러 아예 검은 빛에 가까운 한여름의 나무들도 있다.

계절이 공존하고 있는 곳곳에는 무와 배추를 심은 밭이 있고, 비탈에서는 손바닥 몇 배쯤 되어 보이는 하얀 천 조각 같은 것을 줄에 널어 말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무말랭이다. 우리나라 무 보다 훨씬 길고 큰 무를 썰어 저렇게 큰 무말랭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상당수가 우리나라로 수출된다고 한다.


안개의 산을 지나 홍하(紅河)를 보다

지엔수웨이(建水)를 지나자 차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의 풍경은 우리네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계절은 가을로 접어드는 때쯤이다. 다만 수종이 조금 다르다. 아열대 지역이다 보니 야자수나 바나나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차는 헉헉대며 산길을 오른다. 그렇게 구비를 몇 개 돌고, 커다란 산 하나를 넘자 이제 길은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골짜기 아래를 온통 휘감고 있다. 지척이 보이지 않는다.

a 웬양 가는 길의 안개에 젖은 대숲. 대숲 너머는 천길 낭떠러지다. 어디 세상 끝으로 가는 것 같은 길.

웬양 가는 길의 안개에 젖은 대숲. 대숲 너머는 천길 낭떠러지다. 어디 세상 끝으로 가는 것 같은 길. ⓒ 최성수

길 가로 아름드리 야자수들이 가로수로 서 있는데, 그 큰 야자수조차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야자수 아랫도리에 하얗게 페인트칠을 해 놓았는데, 휙휙 지나가는 그것들이 마치 안개 속을 지키고 있는 신령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허공중에 커다란 검은 막대기가 휙 지나간다. 대나무다. 안개는 온통 세상의 모든 것을 감출 듯 몰려 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순식간에 안개 속을 벗어난다. 아직도 제법 높은 산 위이다. 그렇다면 내가 달려온 길은 얼마나 아득하게 높은 것이었을까? 안개속이라 그저 안개 위만 달려온 것 같지만, 그렇게 아슬아슬한 산 벼랑을 거쳐 왔다니!

아득한 발아래에 붉은 강물이 골짜기 사이를 흐른다. 홍하(紅河)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곳이 바로 홍하 하니족 이족 자치주다. 그러니 저 강이 바로 이 지역의 상징인 셈이다.

계곡 건너편 산 위에 큰 저수지가 있다. 그 아래쪽으로 계단식 전답이 늘어서 있다. 산 꼭대기에 저수지가 있는 것도, 그 물로 아래쪽에서 농사를 짓는 것도 신기하다. 한동안 차에서 내려 홍하 건너편 마을을 바라보며 걷는다. 처음 보는 건너편의 풍경에 모두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볼 웬양의 계단식 논의 전주곡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a 홍하를 내려다보며. 산 위에 저수지가 있고, 그 아래 논밭이 있다. 계단식 논의 구조를 보여준다.

홍하를 내려다보며. 산 위에 저수지가 있고, 그 아래 논밭이 있다. 계단식 논의 구조를 보여준다. ⓒ 최성수

다시 차를 타고 산을 다 내려가자 신 웬양인 난사(南沙)다. 길 양 옆으로 늘어선 야자수가 남국의 정취를 한껏 보여주고 있는 깨끗한 도시다. 구 웬양이 너무 높은 고산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새롭게 개발했다는 신 웬양은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다. 우리는 그대로 구 웬양을 향한다.

안개 속의 도시, 웬양

웬양은 온통 안개에 젖어 있다. 신 웬양에서 거의 직선으로 가파르게 올라온 곳에 자리 잡은 웬양은 좀처럼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 시간은 7시 경이지만, 도시 곳곳은 안개로 감추어져 있다. 바로 앞을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광장 저 편으로 서 있는 나무도 희미하게 형체만 보일 뿐이다. 식사 후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꼬치구이 집에 가서 짜디짠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꼬치를 먹는 내내 안개는 마치 비구름처럼 몰려든다. 안개 속에서 술을 마시고, 안개 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안개 속의 이야기는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전해지는 비밀처럼 눅눅하게 녹아있다.

a 저녁 무렵의 웬양 시내. 광장에 서 있는 나무가 안개 속에 흐릿하다. 도시는 온통 안개다. 지척 분간이 안 된다.

저녁 무렵의 웬양 시내. 광장에 서 있는 나무가 안개 속에 흐릿하다. 도시는 온통 안개다. 지척 분간이 안 된다. ⓒ 최성수

웬양은 산비탈에 이루어진 도시다. 우리로 치면 강원도 태백시의 철암 같은 도시다. 산꼭대기에 모여 거처를 마련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리라. 그래서 한 발 잘못 디디면 곧장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몇 잔의 술을 마시고, 안개에 취해 비몽사몽의 정신으로 숙소에 돌아온다. 안개 속을 헤맸는데, 빗줄기 속을 돌아다닌 것처럼 머리는 온통 물기로 젖어있다. 간단히 머리를 말리고, 난방장치라고는 전기담요뿐인 침대에 눕는다. 온 몸에 한기가 돈다. 방이 추운 때문이 아니라, 난생 처음 보는 첩첩 안개에 마음이 짓눌린 탓이리라. 그 밤 내내 나는 안개속에 둥둥 떠다니는 꿈을 꾸었다.

다락 논, 가장 자연에 가깝게 만든 인간의 예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다. 여전히 도시는 안개에 젖어 있다. 어제 밤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안개다. 일출의 계단식 논을 보기 위해 뚜어이슈(多依樹)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짙은 안개에 제대로 계단식 논을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기사는 연신 앞 유리의 물기를 닦아내지만, 금방 다시 안개로 점령된 창에는 김이 가득 서린다.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숲인지 알 도리가 없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길을 걸어,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분 때문일까? 마음 한 켠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한 없이 쓸쓸해지기도 한다.

a 안개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계단식 논. 더 기다려야 아름다운 풍경은 나타나는 법이다.

안개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계단식 논. 더 기다려야 아름다운 풍경은 나타나는 법이다. ⓒ 최성수

그런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차는 끝나지 않을 듯한 안개를 헤치며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풍경이 보이지 않으니 끝도 알 수 없다. 이대로 달려 하늘 위로 솟구칠 것만 같다. 콩 나무를 타고 하늘에 올라갔던 동화 속의 잭처럼 우리는 안개를 타고 어쩌면 하니족의 신이 살고 있는 하늘나라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를 그렇게 올랐을까? 갑자기 안개가 엷어진다. 발 아래로 우리가 지나온 안개의 숲이 뭉긋거리고 있다. 안개에 떠밀려 드디어 뚜어이슈에 도착한다.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그곳에도 역시 안개다. 다만 아래쪽에서 보던 안개와 달리 좀 엷다. 잘 하면 계단식 논을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안개 속에 정물처럼 서서 산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사진작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더니, 모두들 값비싼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어떤 것은 한 짐도 더 될 것 같다. 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 험한 길을 찾아와 저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안개 속으로 흐릿하게 계단식 논이 보인다. 그러나 대단치 않다. 전체가 아니라 눈 앞의 일부만 보이기 때문이리라.

a 곡선과 물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다.

곡선과 물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다. ⓒ 최성수


a 드디어 햇살이 비치고, 계단식 논의 모습이 선명하다. 저 아름다운 곡선, 저 아름다운 물빛. 말문이 막힌다.

드디어 햇살이 비치고, 계단식 논의 모습이 선명하다. 저 아름다운 곡선, 저 아름다운 물빛. 말문이 막힌다. ⓒ 최성수

얼마를 그렇게 기다렸을까?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눈 아래로 라이스 테라스가 점점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 많은 논 중 한 곳에 붉은 햇살이 조금씩 내려 비추더니, 어느 순간 눈 아래로 안개가 다 걷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논들이 드러난다.

햇빛이 비쳐 논은 마치 유리 같기도 하고, 얼음 같기도 하다. 그러나 유리도 눈도 아니다. 논배미마다 받아놓은 물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 빛나며 고운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 가득 받아놓은 논의 경계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이 저렇게 고운 곡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나는 하염없이 눈 아래로 펼쳐진 논의 풍경을 바라본다.

저렇게 빛나는 수면(水面)을, 저렇게 부드러운 논둑을, 나는 평생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저 논둑의 곡선과 논의 맑은 물은 이곳에서 오랜 세월 깃들여 살아온 하니족의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풍경을 먼 여행길을 떠나와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내게는 잃어버린 마음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은 아닐까?

다시 안개가 덮인다. 그 사이 나는 잠시 언덕을 내려와 논 가까이로 가 본다. 가까이 가 본 논도 부드럽고 아름답다. 흐릿한 안개 속으로 나무 한 그루가 논둑을 지키듯 서 있고, 논은 마치 우리네 토담을 두르듯 돌과 흙을 섞어 둑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고샅길을 걷는 논둑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걸어본다.

a 가까이 가 본 계단식 논. 안개 속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어쩌면 내 마음이 저 나무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가까이 가 본 계단식 논. 안개 속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어쩌면 내 마음이 저 나무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 최성수

머리 위에서 '툭' 빗방울이 한 점 떨어진다. 둘러보니 논 이곳저곳에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고 있다. 비 인줄 알았더니 비가 아니다. 안개가 너무 짙어,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

한동안 논둑길을 걷다 다시 언덕 위로 올라온다. 계란을 파는 하니족 아이들이 사람들 속을 돌아다닌다. 손이 시려 계란을 몇 개 산다. 한 개 1원, 아주 따뜻하다. 까먹기보다 손에 쥐고 시린 기운을 쫓는데 그만이다.

내려다보니 안개는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며 라이스 테라스의 모습을 자꾸 바꾸어 놓는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어쩌면 자연을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라이스 테라스가 그렇다. 인위적이되 인위적인 것을 극도로 배제하고 자연을 닮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리라.

라이스테라스, 중국 말로는 티티엔(梯田)이라고 한다. 사다리 논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다락 논, 계단식 논이다. 가파른 산지에 계단 형태로 만든 작은 논들을 뜻하는 말이다.

웬양의 계단식 논은 아이라오산(哀牢山)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3074미터인 아이라오산 아래에는 홍하가 흐르고 있다. 이 홍하의 물이 수증기가 되어 산 위로 피어오르면 안개가 된다. 아열대 기후 지대라 늘 따뜻한 기온과 산 위의 찬 공기가 만나 안개가 되는 것이다. 이 안개가 빗방울처럼 떠돌며 물을 만들어내고, 비와 안개비가 섞여 높은 산에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낸다.

물이 그것이다. 물은 온갖 식물들을 무성하게 만들고, 다시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고, 논으로 흘러들어 식량을 생산해 낸다. 그래서 높은 산지임에도 이곳에는 물이 풍부하고, 경작지가 없는 산에 풍부한 물을 이용해 논 농사를 짓기 위해 하니족은 오랜 세월에 걸쳐 계단식 논을 만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갈 줄 아는 지혜를 이곳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a 당겨서 찍어본 계단식 논의 아름다움. 나는 저 중 작은 논 하나를 앞으로 가슴에 품고 살아갈 지 모른다.

당겨서 찍어본 계단식 논의 아름다움. 나는 저 중 작은 논 하나를 앞으로 가슴에 품고 살아갈 지 모른다. ⓒ 최성수

어떤 곳은 산 전체가 온통 계단식 논이다. 오후에 가 본 멍핀(勐品)의 풍경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구름이 걷히고 온전히 산 아래가 다 내려다보이는데, 보이는 곳은 모두 논이다. 그 논에 물이 가득하다. 숱한 세월 동안 저 논을 만들어놓은 인간의 노력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 또한 이 계단식 논에서 볼 수 있으니, 어쩌다 마주치는 하니족 사람들이 꼭 이곳 논처럼 순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려 120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웬양의 계단식 논, 강물이 안개를 만들고, 안개는 비를 만들고, 비는 물이 되어 흘러 고산지역 산림을 무성하게 만들고, 그 고산 산림의 작은 물줄기들은 인간의 마을로 흘러들어 식수가 되고, 논을 적신다. 그 논에서 난 곡식으로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저 하니족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씨가 부드러운 논의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는 상업 자본이 몰려들어, 일 년에 몇 천 위안 벌이도 안 되는 논농사를 포기하고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버렸다는 웬양. "흐르는 물이 비옥함을 준다(流水施肥)"는 그들의 말처럼, 웬양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보여주던 곳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점점 차 밭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손때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깨트리고, 결국은 인간만의 세상으로 만들고 만다.

언제 다시 이 곳을 찾을 날이 있을까? 그때는 어쩌면 빛나는 논 대신 푸른 차나무만 쓸쓸하게 안개에 젖어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애틋한 생각에 젖어 계단식 논을 뒤로한 채 다시 웬양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살아갈 날 내내 나는 내 마음 속에 웬양의 작은 계단식 논 하나를 품고 살지도 모르리라.

삿갓 다랑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농부에게 산 속에 정말 조그만 논이 하나 있었단다. 삿갓을 쓰고 모를 심던 농부는 새참을 먹느라 논에서 나와 삿갓을 벗어놓고 잠시 쉬었단다. 그런데 다시 일을 하려고 보니 자신의 논이 갑자기 없어져 버렸다. 한참 농부는 자신의 논을 찾았지만 도무지 논은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논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한 농부가 놓아 둔 삿갓을 들었을 때, 논은 삿갓 속에 숨어있었단다. 그래서 삿갓 다랑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웬양의 계단식 논을 떠올리면 내 마음에도 삿갓 다랑이 하나 있는 것 같다. 그 수많은 논들 중에서 부드러운 곡선 가운데 숨어있던 작은 논 하나, 그것은 어쩌면 내 삶의 등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 그 빛나면서 아득하던 웬양의 논이여! 자연이 삶이 되고, 삶이 자연이 되는 아름다운 순환의 땅이여!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웬양 라이스 테라스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더 많은 웬양 라이스 테라스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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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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