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푹 빠져 살았던 1년, 행복했다

다른 일 뒤로 하고 영화에만 '고정' 320편 훌쩍

등록 2007.02.11 14:36수정 2007.02.1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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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는 영화에 미친 1년이었다. 우연히 <비포 선 라이즈>와 <비포 선셋>이라는 세트영화를 보고 홀딱 반해서 '영화란 것이 이런 것인 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읊어 대며 보고 또 봤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노트를 하나 마련해서 괜찮은 영화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줄거리며 감상을 적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 70여 편 적고나니 벅차고 귀찮기도 하거니와 하나의 영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영화로 넘어가고 싶어 잠시의 짬도 내기가 싫었다.

@BRI@그래서 나중엔 번호를 매겨가며, 내가 본 영화들의 제목만 노트에 적기로 하였다. 특별히 괜찮은 영화엔 별표를 쳐가면서…. 그렇게 나날이 가속도를 내며 비디오만 보고 있는 엄마가 지겨운지 큰애는 연속으로 두 편씩 볼 때면 어김없이 닦달하곤 하였다.

"엄마, 이젠 제발 비디오 좀 고만 봐라. 고만 볼 때도 되지 않았나?"
"야, 엄마는 영화만 보는 게 아냐. 영어 배우려고 영화 보는 거야."

애고 어른이고 '영어'란 말만 나오면 주눅 드는 세상이라 그런지 우리 집 큰애도 나의 '영어론'에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영어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해서 겸사겸사 도랑치고 가재 잡고.)
"그라믄 빨리 배워서 영화 고만 보든지."

녀석은 또, 어쩌다 비디오를 본 후 노트에다 번호와 제목을 적는 나를 볼 때면,


"엄마 몇 편까지 볼 거야?"
"글쎄 넉넉잡아 300편은 봐야 하지 않겠어? 300편쯤 보고나면 고만 볼 테니 깝치지 마셔용."
"정말 300편만 보고 고만 봐야 된데이."

너무 가볍고 작아서 어디 올려 놓을 수가 없어 방바닥에 그냥 놓고 본 이 tv로 200편은 족히 보았지 싶다. 의외로 작으니 집중이 더 잘되었다.
너무 가볍고 작아서 어디 올려 놓을 수가 없어 방바닥에 그냥 놓고 본 이 tv로 200편은 족히 보았지 싶다. 의외로 작으니 집중이 더 잘되었다.정명희
그러던 어느 날 인가, 큰애의 친구가 놀러 왔는데, 나는 마침 마음에도 들고 귀에도 들어오는 영화 속 대사가 있어 몇 번이고 입에 익을 때가지 소리 내어 반복하였다. 그랬더니 녀석들의 대화가 웃겼다.


"야, 니네 엄마 지금 뭐하니?"
"몰라, 영화 보면서 영어공부 한다나."
"야, 니네 엄마 지금 영어로 막 뭐라 뭐라 하는데?"
"몰라, 저러다 미국 갈란지."

아무튼 남편이고 애들이고 지청구를 넣을 때마다 '잉글리시' 한마디로 면죄부를 얻곤 하였다. 그러다 한계상황이 왔다. 동네의 작은 비디오가게가 확보한 비디오의 세계가 좁은 것도 좁은 것이지만 어느새 연말이 다가오니 한해를 마무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300편 고개도 넘어 320여 편에 이르자 비디오 본다며 등한시한 다른 일들도 생각나고 하여 스스로에게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주문을 걸었다. 큰애 또한 엄마의 노트에서 300넘은 숫자를 보자 '이제 그만'하면서 약속 지킬 것을 강요하였다.

'아이고, 그래 좀 쉬자….'

뭐, 하여간 영화에 미친 1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겨우 300편으로 영화에 미쳤다는 표현을 쓰고 나니 부끄럽다. 다만 변명하자면 영화에 미쳤다는 내 표현은 비로소 좋아하게 되었다는 의미라고나….

영화타령 하다 보니 생각나는 분이 있는데 '전혀' 그럴 것 같아 뵈지 않던 철학자 김용석 교수가 영화를 좋아하고 1천 편씩이나 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뿐인가, 연말에 본 <로멘틱 홀리데이>에서 영화 예고편 제작사의 사장인 아만다(카메론 디아즈 분)의 집 한쪽 벽면을 점유하고 있던 DVD 숲을 보고는 부러움으로 꺼억!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나는 언제쯤 이들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소장할 수 있을 까나. 우좌간, 지난한해. 영화가 있어 내 삶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화가 계속 있어줄 것이기에 인생길, 이보다 더 미더운 친구가 있을까 싶다.

좋은 영화 만나는 지름길....<교육방송>

아이들과 함께 교육방송을 보다보면 교육방송이 보여주는 신실함에 감탄할 때가 많은데 영화에 관해서도 교육방송의 선택은 여느 방송국에 비해 탁월하였다.

매주 토요일 초저녁의 <세계명작 드라마>는 ‘명작’이나 ‘전기’를 영화화 한 작품들을 보여주는데 청소년들이 보았을 경우 공부와 감동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영화프로이다.

그리고 토요일 밤에 방영되는 <세계의 명화>도 세계의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일요일 낮의 <일요시네마>도 좋고 일요일 밤의 <한국영화 특선>또한 한국 영화의 과거사가 궁금한 분이라면 챙겨볼 만하다.

즉, 달리 비디오 빌려볼 것 없이 교육방송이 소개해주는 영화만 꾸준히 보아도 다소 시간은 걸릴지언정 세계의 명작, 명화의 정수를 맛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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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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