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 오르차를 부탁해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 여행 33

등록 2007.02.13 11:56수정 2007.02.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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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희

[아이스크림 공장 2층 살림집 풍경]
[아이스크림 공장 2층 살림집 풍경]왕소희
아이스크림 공장 집에서 묵게 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초코바로 아침을 시작해서 저녁은 아이스콘으로 마무리하기. 1층은 아이스크림 공장, 2층은 살림을 하는 구조로 된 이 곳은 프리티네 집이었다. 그녀는 인도 전통춤 댄서로 마투라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를 집에 머물게 해 주었다.

이집의 장남, 고빈씨는 내게 아이스크림 공장이 있는 1층을 구석구석을 구경시켜주었다. 여러 개의 거대한 통이 있었는데 통 하나를 열 때마다 기절할 뻔했다. 때가 가득 낀 통에 잿빛 물, 그 위에는 페트병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얗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내는 거지!'

난 기겁을 하며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 막대를 내뱉곤 했다.

"여기 있는 아이스크림은 모두 네 거야! 메이. 하하하. 그러니 마음껏 먹어!"

고빈씨는 활짝 웃으며 하얀 색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꼭지를 틀어 콘 위에 잔뜩 얹어주었다. 그러면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고빈씨네 아이스크림을 물고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길 가엔 수많은 순례자들이 오고 갔다. 마투라. 사랑의 땅. 이곳은 크리슈나가 태어나고 청년기를 보낸 곳으로 위대한 성지다.


아이스크림 공장 근처 야무나 강가에는 옷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원숭이들이 살았다. 녀석들은 신발을 훔쳐 달아나길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무에 걸어놓고 절대 내 주지 않았다. 맛있는 과자를 사가지고 와서 유혹해도 소용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화내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이유가 있다. 이 나무에 크리슈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BRI@고피(소치는 소녀)들은 아침마다 야무나 강에서 목욕을 했다. 이때 크리슈나가 나타나 그녀들의 옷을 훔쳐다 이 나무 위에 걸쳐두고 돌려주지 않았다. 지금 나무 위의 원숭이들처럼. 그의 장난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즐겁게 웃었다. 크리슈나는 장난을 좋아했다. 그런 크리슈나가 어느 날 소젖을 짜는 라데를 사랑하게 됐다.


"라데! 라데!"

오직 마투라에서만 인사를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크리슈나가 라데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이름마저 잊었다는 걸 사람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기심 없는 순수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잊고 초월적인 사랑을 나누게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크리슈나 신을 부를 때 라데를 불러야 했다. 그래야만 크리슈나가 알아들었으니까. 크리슈나가 얼마나 라데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크리슈나는 그런 신이다. 사랑의 신.

그리고 우린 그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크리슈나는 어쩌면 우리를 도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크리슈나에게 오르차를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마투라에는 사회봉사단체들이 많았다. 람은 우리를 후원해 줄 수 있거나 모델이 될 만한 단체를 찾아내어 방문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외국인이 세운 한 단체를 찾아 갔을 때였다.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된 그는 이스콘(힌두 집단의 하나) 승복을 입고 온화한 표정으로 우릴 맞이했다. 발에 이마를 대는 람의 존경 표시에 그도 엎드려 절을 받았다.

"쉽지 않아요. 인도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지만 돕기가 쉽지 않은 나라예요. 구호물품을 외국에서 지원 받아도 세관에서 통과시켜주질 않죠. 구호물품에도 엄청난 세금을 물리기 때문에 우린 결국 그걸 모두 버려야했습니다."

노인의 말은 별로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의 머리 위에는 인도 수상이 찾아와 악수를 나눈 사진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도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튼 우린 그저 시작한 일을 맺고 싶을 뿐이었다.

[야무나 강가에서 꽃 등불을 파는 소녀]
[야무나 강가에서 꽃 등불을 파는 소녀]왕소희
그날 밤 우리는 강가 주변 골목을 돌아다녔다. 사원이 많은 곳이라 맨발로 다니는 게 편했다. 성지인 마투라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원 같다.

골목길엔 꽃향기가 떠돌고 있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꽃과 파르샤디(신에게 바치는 공물)를 파는 노점들이 가득했다. 나는 성수에 젖은 발에 꽃잎을 붙인 채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진정으로 이국적인 풍경들은 처음으로 내가 낯선 나라에 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라데. 크리슈나의 연인. 마투라, 바르사나엔 그녀의 성이 있다. 우리는 이제 라데 라니 신에게로 갈 것이다. 크리슈나는 역시 귀가 어두울 지도 모른다. 그를 돌아보게 하려면 그의 연인 라데를 불러야 할 것이다. 아니, 실은 라데. 그녀가 우리를 여기로 불렀다.

왕소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maywang.co.kr  행복닷컴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maywang.co.kr  행복닷컴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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