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선생님' 대신 '의사님'으로 부르자

[주장] 환자-의사의 대등한 동반 관계 필요... 그 시작은 호칭 바꾸기

등록 2007.02.14 09:02수정 2007.02.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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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의사의 전문 지식은 가치판단을 잘 해내는 것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사진은 MBC 의학드라마 <하얀 거탑>의 한 장면.

의사의 전문 지식은 가치판단을 잘 해내는 것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사진은 MBC 의학드라마 <하얀 거탑>의 한 장면. ⓒ MBC

말이 씨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만, 때로는 말이 우리들의 생각과 느낌을 규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기의 생각과 느낌이 바람직한 쪽으로 나아가도록 말을 골라 할 필요가 있다.

호칭도 마찬가지다. '청소부'나 '간호원'이라는 말은 특정 직업인을 비하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런 호칭 대신 '미화원'이나 '간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그 직업인들에게 마땅한 사회적 존중을 더 잘 표현하고 형성할 수 있었다. '대통령 각하'를 '대통령님'이라고 고쳐 부른 것도 독재 시대의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대통령-국민 관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렇다면 의사에 대한 적절한 호칭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였다. 이 호칭이 의사-환자 관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용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그 관계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만든다면 이것을 대체할 다른 호칭을 찾아봐야 한다.

환자와 의사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두 입장이 있다. 먼저 '부모-자녀 관계 모형'이 있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하듯이 의사가 환자를 위해 모든 중요한 결정을 하고 환자는 이 결정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대등한 동반자 관계 모형'이 있다. 치료 선택에 대한 최종 결정은 환자가 하되, 환자가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의사는 정보를 제공하고 같이 논의하고 때로는 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종속 불러올 수 있는 '부모-자녀 관계 모형'

이 중 오늘날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환자-의사 관계는 후자의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오늘날에는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 자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의료상황에서 대개 '건강한 삶을 되찾을 것인가 죽을 것인가'라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이 경우 의사는 굳이 환자에게 묻지 않아도 무엇이 최선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고통스럽지만 최대한 삶을 연장할 것인가, 평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효과는 크나 부작용도 큰 치료방법을 택할 것인가, 효과도 부작용도 적은 치료 방법을 택할 것인가', '비싸지만 더 효과 있는 치료 방법을 쓸 것인가, 효과는 조금 떨어지지만 저렴한 치료방법을 쓸 것인가' 등의 많은 선택지가 있고 이 중 환자에게 최선인 것은 환자의 가치관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환자가 최종 결정을 하게 해야 최선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BRI@둘째, 의사들 중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이런 비도덕적인 의사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면 환자로서는 비도덕적인 의사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종 결정을 자기가 해야 한다. 의료에서는 생명, 건강, 고통 등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문제된다. 비도덕적인 의사가 환자의 이익을 뒷전에 둔 의료적 결정을 하게 내버려두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셋째, '부모-자녀 관계 모형'은 의사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책임과 희생을 요구한다. 어린 자식 대신 부모가 결정하는 것은 부모에게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을 돌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환자 관계에서도 의사가 환자를 대신해 결정하려면 그만큼 막중한 책임의식과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한 헌신이 필요하다. 성직으로서의 의사관, 의사는 모름지기 허준이나 슈바이처 같아야 한다는 생각, 의사들의 정당한 경제적 권리 추구도 백안시하는 것이 모두 '부모-자녀 관계 모형'으로 의사-환자 관계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다수의 의사들은 무엇보다 자기가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고 다음으로 사회에도 기여하길 원해서 그 직업을 선택했다. 이런 의사들도 의사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의사들이 잘 감당해 낼 수 있는 의사-환자 관계는 바로 후자의 것이다.

의사 도움 받되 환자 스스로 생명과 신체에 대해 결정하게 해야

이렇게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가 대등한 동반자 관계라면 '의사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 이 호칭의 '선생님'에는 '환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들어가 있다. 선생님은 대등한 위치에서 협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월한 위치에서 지도하고 이끄는 사람이다. 특히 '군사부일체'라는 관념이 아직도 의식 저변에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의사선생님'은 '부모-자녀 관계 모형'과 딱 어울리는 말이다.

실제로 '의사선생님' 호칭은 '지시하는 의사-순종하는 환자'라는 관계가 공고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됐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의 의사-환자 관계는 대등한 동반자 관계로 넘어가고 있으며 또 이런 전환이 더 확실하고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이런 사회관계의 변화는 말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군·관·민'이나 '각하'라는 용어를 그대로 둔 채 군사주의적, 권위주의적 사회관계의 청산을 생각하기 힘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선생님'이란 말은 단순히 상대방을 존경하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런 의미라면 우리 사회의 매우 많은 의사들이 '선생님'으로 불려 마땅하다. 하지만 이 용어가 의사 직업 종사자 전체에게 관례적으로 쓰일 때는 '의사의 지시-환자의 순응'이라는 특정한 사회적 관계를 전제하는 다른 의미를 담게 된다. 그래서 지금처럼 '의사선생님'이라는 말이 관례적으로 계속 사용될 때, 의사는 자기가 환자를 위해 다 결정해 주고 환자는 무조건 따르면 된다는 예전의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더 쉽지 않게 된다.

"'저는 무슨 주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의사선생님은 대꾸도 안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중략) 의사선생님은 (중략) 나를 향해 '그렇게 의심이 많으면 무엇 하러 병원 오나? 맞으려면 그냥 맞지'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저는 당황했고 그래서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지만 정신을 급히 수습해서 똑바로 말해주었습니다. '아니, 초등학생도 자기가 맞는 주사가 뇌염주사인지 홍역주사인지 알고 맞는다고요. 제가 알려는 게 잘못입니까?"
(김철환 등 지음, <아픈 것도 서러운데 : 의약분업시대 환자 권리장전>, 몸과마음, 2000년)

환자들도 이 호칭을 계속 사용할 때 '의사 선생님이 못 고칠 병은 별로 없겠지'라는 환상이나 '의사선생님이 다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는 의존적 태도를 버리기가 힘들어진다. 더 나아가 자율적 결정을 원하는 환자도 이 기본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된다.

우리 문화에서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어렵게 느껴지는 대상이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묻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의사선생님'한테는 잘 묻지 못하고 바라는 것이 있어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의사가 바빠하고 귀찮아하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의 일방적 결정이 많아지고, 의사는 환자의 가치관과 상황을 환자만큼 잘 알지 못하는 탓에 그만큼 환자에게 최선이 아닌 선택이 많아진다. 결국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의료의 궁극목적이 잘 달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되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해 자신이 결정하게 하는 바람직한 환자-의사 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사에 대한 새로운 호칭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 호칭으로 '의사님'을 제안한다. '기사님', '판사님', '대통령님', '교수님' 등 어떤 직업 종사자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기 위해 그 직업명 끝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 사용법이다. 이렇게 통상적으로 '의사님'으로 부르더라도, 훌륭한 의사를 만나게 되면 환자들은 이제 그 의사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망설임 없이 '선생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말기 암환자의 자율적 선택 보장을 주장하고자 한 저의 지난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의사선생님'이라는 호칭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이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그 호칭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말기 암환자의 자율적 선택 보장을 주장하고자 한 저의 지난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의사선생님'이라는 호칭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이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그 호칭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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