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신하에게 바치는 항복문서

[태종 이방원 42] 혁명전야 7

등록 2007.02.14 16:14수정 2007.02.1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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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변환기에 줄서기에 바쁜 신하들

이성계 진영은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접수했다. 도당(都堂-도평의사사)에 혁명지휘부를 설치한 군부세력은 정몽주를 추종하는 잔존세력 제거작업과 공양왕 고사작전에 들어갔다. 정몽주 없는 저항세력은 무력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유생들의 성토는 궐 밖에서 끊이지 않았지만 조정의 신하들은 줄서기에 바빴다.


"김진양의 죄는 참형(斬刑)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순군옥(巡軍獄) 제조가 형률에 따라 김진양을 참형에 쳐해야 한다고 이성계에게 보고했다. 순군옥 군사들이 보주 감옥에 갇혀있던 정도전을 학대하고 죽이려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인데 방향을 바꿔 돌아선 것이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쫓아가기 마련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이성계가 만류하고 나섰다.

"내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다. 김진양은 몽주의 사주(使嗾)를 받았을 뿐이니 어찌 함부로 형벌을 쓰겠는가?"
"그렇다면 마땅히 호되게 곤장을 쳐야 될 것입니다."

김진양이 정몽주의 사주를 받았지만 충신들을 모함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역설적이게도 정도전과 조준을 악행으로 심문하고 그것도 모자라 처형하려는 모사를 꾸몄던 순군옥 조직원들은 누가 어떠한 형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할지 의문이다.

"이미 이들을 용서했는데 어찌 곤장을 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김진양은 이성계의 반대로 형벌을 면하게 되었다. 죽을 목숨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신하의 병문안을 나서는 임금님

고려의 마지막 대들보 정몽주마저 떠난 고려는 허허벌판에 공양왕 혼자 남아 있는 격이 되었다. 그것마저 충성을 바치는 수족이 다 잘린 혈혈단신이었다. 공양왕은 외로웠다. 압박해 들어오는 혁명세력이 두려웠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공양왕이 숭교리 이성계의 집을 방문했다. 격에 어울리지 않은 방문이다. 명분은 언어장애를 일으켜 병석에 누워있는 이성계의 병문안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공생의 길을 찾아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공양왕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였다. 이제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와 공존하거나 자멸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병문안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공양왕은 사예(司藝) 조용(趙庸)과 이방원을 불렀다.

"내가 장차 이 시중(李侍中)과 더불어 동맹(同盟)하려고 하니, 경(卿) 등이 내 말을 시중에게 전하고 시중의 의견을 듣고서 맹서(盟書)를 초(草)하여 오라."

기가 막힌 명령이다. 임금이 신하와 동맹을 맺겠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군주의 체통은 어디로 갔을까? 공양왕은 체신과 권위 따위는 버린지 오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원을 부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날개 꺾인 군주에게 방원은 태산 같은 바위였다. 이성계를 거론하지만 방원과 동맹하자는 복심이다. 방원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방원이다.

"맹세는 족히 귀한 것이 아니며, 성인(聖人)이 싫어하는 바입니다. 열국(列國)의 동맹(同盟) 같은 것은 옛날에 있었으나 임금이 신하와 더불어 동맹(同盟)하는 것은 경적(經籍)의 고사(故事)에 근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조용(趙庸)이 역사적인 고사를 들어 나직하게 말했다. 방원은 흐름을 지켜볼 뿐이었다.

"다만 이를 초(草)잡으라 이르지 않았더냐."

공양왕은 성화를 부렸다. 이성계의 의중을 파악해 보라는 것이다. 성사여부는 차후 문제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못해 이성계를 찾아갔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네가 마땅히 임금의 명령으로써 글의 초(草)를 잡으라."

이성계는 난처했다. 이 상황에서 이성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성계는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아직까지는 군신관계가 엄존한다. 공양왕은 임금이고 자신은 그 임금의 신하이지 않은가. 이성계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조용을 돌려보냈다. 조용은 이성계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궁으로 돌아와 혼자서 초를 잡아 공양왕에게 올렸다.

군주가 반란을 일으킨 신하에게 바치는 항복문서

"경(卿)이 있지 않았으면 내가 어찌 이에 이르겠는가? 경의 공과 덕을 내가 감히 잊겠는가. 황천(皇天)과 후토(后土)가 위에 있고 곁에 있으니 대대로 자손들은 서로 해치지 말 것이다. 내가 경에게 믿음이 있는 것은 이 같은 맹약이 있기 때문이다."-<태조실록>

항복문서다. 군주(君主)가 신하에게 바치는 어천가(御天歌)다. 군주가 신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의 목숨과 자식들의 생명을 구걸하고 있다. 서글픈 일이다. 조용(趙庸)이 초 잡은 것을 공양왕에게 바쳤다. 혁명 상황이 아닌 평소 같으면 목이 달아날 문장이다. 공양왕은 속은 쓰리지만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좋다."

공양왕의 재가를 받은 조용(趙庸)이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받들고 대전(大殿)에서 물러났다. 이성계 사저로 향하는 조용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던 공양왕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대궐 기둥에 얼굴을 묻었다. 용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 심정은 신하에게 항복문서를 보내는 군주만이 알리라.

조용이 이성계를 방문하여 임금의 뜻을 전했다. 이성계는 도리가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가 아니라기보다도 역성혁명의 수순을 밟고 있는 이성계 진영에서는 일고의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조용은 사관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는 사초(史草)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기를 도와 왕으로 세운 공도 보답하지 못했는데 임금이 시중(侍中)을 도리어 해칠 마음이 이미 싹텄으니 천명(天命)이 이미 가버리고 인심(人心)이 이미 떠났으므로 구구한 맹약(盟約)은 믿을 수 없게 되었다.”-<태조실록>

혁명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사천리로 진행하라

공양왕의 화평제의를 거절한 이성계진영은 연일 대책회의를 열었다. 보주 감옥에서 풀려난 정도전과 유배지에서 돌아온 조준도 합류하여 활기를 띠었다. 이제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는 일만 남았는데 어떻게 하느냐? 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남은과 조인옥이 방원에게 말했다.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이미 정해졌는데 어찌 빨리 왕위에 오르기를 권고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대사(大事)이니 경솔히 말할 수 없다.”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알고 있는 방원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면전에서 구두로 간청하면 물리칠 것이 뻔한 일. 아버지가 거절하지 못할 계책이 필요했다. 남은(南誾)으로 하여금 추종자들에게 서명을 받아 오도록 했다. 정도전, 조준, 조인옥, 조박 등 52명의 서명을 확보했다.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52인의 연판장을 마련했으나 아버지의 진노(震怒)가 두려워 감히 올리지 못했다. 방원은 아버지의 제2부인 강씨에게 추종자들의 뜻을 전하여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강씨 역시 대노가 겁이나 고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방원이 아니다. 방원은 남은 등에게 일렀다.

“마땅히 즉시 의식(儀式)을 갖추어 왕위에 오르심을 권고해야 될 것이다.”

역시 혁명아 방원다운 발상이다. 번거롭게 추대와 사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즉시 즉위식(卽位式)으로 직행하자는 생각이다. 혁명은 생략의 미학일까? 생략의 권력학일까? 이로부터 송악산 아래 태조 왕건으로부터 시작하여 475년 붙어있던 '고려'라는 문패를 떼고 '조선'이라는 문패를 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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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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