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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 여러분의 무의식은 'FTA 반대'라는 반복 메시지를 수십 번이나 받아들였다.
서브리미널 이펙트의 판타지 또는 파괴력
인간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으나 그것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자신이 이성적인 판단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내리는 어떤 결정이 100%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병원 같은 곳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의식의 하부인 잠재영역에 특정 메시지를 가하면, 인간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서브리미널 이펙트다. 실제로 이 효과는 1957년 미국에서 진행된 한 실험 때문에 영상 미디어 분야에서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물론 이때의 실험 자체가 대조군 설정 등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영사기를 판매하기 위한 마케터에 의해 진행된 매우 조작적인 것이었다. 사실 서브리미널 이펙트는 당시 매카시 광풍과 기묘하게 결합해, 할리우드를 장악한 좌파계열 영화노조 등이 영화 미디어로 대중을 세뇌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 전형적인 정치적 프로파간다였다.
인간 잠재의식의 강력한 영향력을 믿는다고 해도, 그 잠재의식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주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브리미널 이펙트는 실제로 가능할까? 서브리미널 이펙트가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다는 심리학계의 연구결과들도 있다(Hawkins, D. (1970). The effects of subliminal stimulation on drive level and brand preference.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7, 322~326).
그러나 서브리미널 이펙트에 대해 부정적인 실험에서조차 소수지만 일부 사람들이 확실히 자극받는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Beef라는 단어를 제시했을 경우, 실제로 소고기 구매로까지는 이어지는 확률은 낮았지만 배고픔을 의식한 실험대상자들은 나타났다. 따라서 서브리미널 이펙트는 약품의 과민성에 대한 안전성 실험과 같다. 예를 들어 97.7%의 사람들은 특정 약에 아무런 부작용도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3%의 확률로 사람이 확실하게 죽어간다면, 그 약은 시판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미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영상 미디어에서 서브리미널 효과를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 | [방송법 시행령 2005.12.30] | | | | 제16조(잠재의식광고의 제한) : 방송광고는 시청자가 의식할 수 없는 음향이나 화면으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식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 | | | |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TV의 드라마, 영화, 광고에서 서브리미널 이펙트 사용은 금지되어 있고 특히 광고의 경우 심의기구의 필터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럼 UCC는 어떤가? UCC에 그런 필터링을 강요할 수 있는가? 또한 UCC가 만약 서브리미널 이펙트와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박빙의 선거를 SUCC가 좌우한다면?
선거는 치사한 것이다. 대선을 10여 개월 앞둔 지금은 특정 정파가 독주하고 있지만, 1997년에도 2002년에도 이기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빙의 승부일수록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고 얼마든지 구차하고 치사해지는 게 선거다. 실제로 2002년 대선에서 자식들에게 용돈으로 표를 매수하라고 대놓고 노골적인 사설을 쓴 품위 없는 논설의원도 있었다. 그런 수준의 논설위원이 지금은 노무현의 품위를 논하고 있다는 것이 지독한 아이러니지만.
박빙의 승부라면 만약 서브리미널 이펙트의 판타지를 신뢰하는 어떤 사람, 굳이 후보 진영의 운동원이 아니더라도 그냥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동영상을 만들 기술을 보유한 평범한 이용자라면, 아주 거대한 효과가 아니라 딱 2.3% 정도만 효과가 있기를 바라고 CC를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다. 방금 든 이 2.3%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이긴 득표율 차이이기도 하다. 겨우 57만표다.
그리고 현대처럼 과격한 마케팅 전쟁 환경에서 1957년의 실험처럼 57.5%나 18.1%의 매출 증가가 아니어도 2.3%의 확실한 성과가 있다면 선거 마케터들은 서브리미널 이펙트를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거기에다 중선위의 선거 UCC 기준이라면 얼마든지 피해갈 구멍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대선일이 마침 겨울이니 겨울 레포츠를 빌미로 젊은 층의 투표율이 떨어지면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진영이 있다고 치자. 이 진영에서 스키동영상이나 겨울 스포츠 동영상을 올리면서 그 안에 이런 서브리미널 메시지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