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UCC는 가이드될 수 없다

[UCC 판타지 ①] 선거 UCC와 서브리미널 UCC

등록 2007.02.15 18:04수정 2007.02.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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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UCC 전성시대다. 모두 UCC를 이야기한다. 심지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편집위원회도 동영상 UCC를 강화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UCC 자체에 대한 가능성만큼 허황되게 부풀어 오르고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든다.

UCC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판타지들이 나타나고 있다. 속된 말로 U는 간데없고 CC만 나부끼는, CC를 이용해서 어떻게 돈을 벌수 있을까를 설파하는 최근의 소위 UCC 세미나들만 봐도 그렇다. 인터넷 업계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면서 성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UCC 시대에 UCC를 구성하고 있는 허구의 판타지를 제거함으로써, UCC의 뼈와 살을 드러내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첫 번째 주제로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UCC 판타지를 골랐다. UCC는 가이드(Guide)될 수 있다는 'UCC 통제' 판타지다.

선관위, UCC를 가이드하겠다?

2007년 말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위)나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에서 UCC에 대한 '안전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얼마 전 중선위는 UCC 가이드를 발표했는데(http://www.nec.go.kr에서 읽어볼 수 있음) 중선위의 선거 UCC 가이드 중 핵심 내용은 아래 상자에 담겨 있다.

[중앙 선관위 선거 UCC 가이드 중]

선거 UCC'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UCC를 편의상 일컫는 말입니다. ‘선거 UCC'가 선거법상 규제를 받는 것은 그 표현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당선 내지는 낙선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하기 위한 의도가 포함된 경우입니다. 따라서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 개진과 의사표시를 포함하고 있는 UCC는 규제대상이 아닙니다.

※ 비록 단순한 의견개진과 의사표시라 하더라도 이를 반복하여 다수인이 볼 수 있는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계속 유포시키는 행위는 그 행위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한 행위로 볼 수 있어.규제를 받게 됩니다.

공정한 선거운영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는 중선위나 저작권법과 방송통신의 관점에서 UCC 가이드를 제시하려는 문광부를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UCC가 가이드될 수 있다는 믿음은 분명 환상이다.

특히 "그 표현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당선 내지는 낙선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하기 위한 의도가 포함된 경우"라고 규정한 것은 아직도 중선위가 UCC의 파괴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왜냐하면 앞으로 UCC 중에는 "그 표현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당선 내지는 낙선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하기 위한 의도가 포함되어 있으나, 보는 사람이 전혀 인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05년에 제작된 다음 UCC를 재생해 보시기를 권고한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패러디 음악이 가미된 평범한 시사비평형 UCC다. 얼핏 봐서는 이 동영상 자체는 어떤 강력한 정치적 주장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를 우려하는 순수한 충심에서 제작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러나 이 UCC 동영상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서브리미널(Subliminal)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UCC(이하 SUCC)다. 잘 보이지 않는 분을 위해, 숨겨져 있는 메시지의 이미지를 첨부한다.

lifepen

축하한다. 여러분의 무의식은 'FTA 반대'라는 반복 메시지를 수십 번이나 받아들였다.

서브리미널 이펙트의 판타지 또는 파괴력

인간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으나 그것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자신이 이성적인 판단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내리는 어떤 결정이 100%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병원 같은 곳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의식의 하부인 잠재영역에 특정 메시지를 가하면, 인간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서브리미널 이펙트다. 실제로 이 효과는 1957년 미국에서 진행된 한 실험 때문에 영상 미디어 분야에서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물론 이때의 실험 자체가 대조군 설정 등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영사기를 판매하기 위한 마케터에 의해 진행된 매우 조작적인 것이었다. 사실 서브리미널 이펙트는 당시 매카시 광풍과 기묘하게 결합해, 할리우드를 장악한 좌파계열 영화노조 등이 영화 미디어로 대중을 세뇌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 전형적인 정치적 프로파간다였다.

인간 잠재의식의 강력한 영향력을 믿는다고 해도, 그 잠재의식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주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서브리미널 이펙트는 실제로 가능할까? 서브리미널 이펙트가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다는 심리학계의 연구결과들도 있다(Hawkins, D. (1970). The effects of subliminal stimulation on drive level and brand preference.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7, 322~326).

그러나 서브리미널 이펙트에 대해 부정적인 실험에서조차 소수지만 일부 사람들이 확실히 자극받는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Beef라는 단어를 제시했을 경우, 실제로 소고기 구매로까지는 이어지는 확률은 낮았지만 배고픔을 의식한 실험대상자들은 나타났다. 따라서 서브리미널 이펙트는 약품의 과민성에 대한 안전성 실험과 같다. 예를 들어 97.7%의 사람들은 특정 약에 아무런 부작용도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3%의 확률로 사람이 확실하게 죽어간다면, 그 약은 시판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미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영상 미디어에서 서브리미널 효과를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방송법 시행령 2005.12.30]

제16조(잠재의식광고의 제한) : 방송광고는 시청자가 의식할 수 없는 음향이나 화면으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식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TV의 드라마, 영화, 광고에서 서브리미널 이펙트 사용은 금지되어 있고 특히 광고의 경우 심의기구의 필터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럼 UCC는 어떤가? UCC에 그런 필터링을 강요할 수 있는가? 또한 UCC가 만약 서브리미널 이펙트와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박빙의 선거를 SUCC가 좌우한다면?

선거는 치사한 것이다. 대선을 10여 개월 앞둔 지금은 특정 정파가 독주하고 있지만, 1997년에도 2002년에도 이기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빙의 승부일수록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고 얼마든지 구차하고 치사해지는 게 선거다. 실제로 2002년 대선에서 자식들에게 용돈으로 표를 매수하라고 대놓고 노골적인 사설을 쓴 품위 없는 논설의원도 있었다. 그런 수준의 논설위원이 지금은 노무현의 품위를 논하고 있다는 것이 지독한 아이러니지만.

박빙의 승부라면 만약 서브리미널 이펙트의 판타지를 신뢰하는 어떤 사람, 굳이 후보 진영의 운동원이 아니더라도 그냥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동영상을 만들 기술을 보유한 평범한 이용자라면, 아주 거대한 효과가 아니라 딱 2.3% 정도만 효과가 있기를 바라고 CC를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다. 방금 든 이 2.3%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이긴 득표율 차이이기도 하다. 겨우 57만표다.

그리고 현대처럼 과격한 마케팅 전쟁 환경에서 1957년의 실험처럼 57.5%나 18.1%의 매출 증가가 아니어도 2.3%의 확실한 성과가 있다면 선거 마케터들은 서브리미널 이펙트를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거기에다 중선위의 선거 UCC 기준이라면 얼마든지 피해갈 구멍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대선일이 마침 겨울이니 겨울 레포츠를 빌미로 젊은 층의 투표율이 떨어지면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진영이 있다고 치자. 이 진영에서 스키동영상이나 겨울 스포츠 동영상을 올리면서 그 안에 이런 서브리미널 메시지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lifepen

아주 극소수, 그 중 특히 젊은 계층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서 12월 19일 57만명의 절반만 투표하지 않게 무의식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인터넷상에서 악플을 달거나 특정한 홍보 UCC, 비방 UCC를 '펌질'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키보드 워리어 활동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설령 적발된다고 해도, 키보드 워리어는 선거운동원이 아니라 '나는 스키동호회 회원'이라고 우길 수도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중선위의 모니터링은 이미 자신들이 규정한 겉으로만 보이는 '선거용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UCC'에만 집중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니 아무도 특정 진영의 메시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외국의 몰래카메라를 무단으로 펌한 UCC에 동영상에 자신이 영향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무방비 상태에서 SUCC를 이용한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나 모니터링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게 SUCC가 난무하게 될 2007년 대선에 과연 중선위가 달랑 'UCC 가이드' 하나 내놓고 공정한 대선관리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2002년 대선 때도 젊은이들을 돈으로 매수하라는 사설에도 손 놓고 있던 중선위다.

SUCC가 퍼져나갈 때 중선위가 어떤 가이드나 법적 근거로 SUCC를 차단할 수 있겠는가? 선거법으로는 못 막는다. 서브리미널 메시지의 성격과 특징을 규정한 선거법은 없으며 그런 선거법이 올해 대선 때까지 과연 정리되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가장 큰 문제는 서브리미널 메시지가 스테가노그라피 형태나 디지털 워터마크의 형태를 띠고 있을 때 과연 그것을 어떻게 막고 어떻게 금지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서브리미널 프로그래밍은 인지하지 못할 상태의 메시지를 유저의 무의식에 주입하는 것이다. 서브리미널 메시지와 디지털 워터마크의 기술적 구성은 본질적으로 같다.

문광부에서 준비한다는 가이드로도 못 막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방송법 시행령은 방송광고에 한정된 것이고, 국회에서 통합방송법 통과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유저가 만드는 UCC에 대해서 방송 콘텐츠에 준하는 법률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중선위는 인정해야 한다. SUCC의 예처럼 UCC는 절대로 가이드될 수 없는 성질의 콘텐츠라는 것, 그리고 공무원들이 '우린 이런 가이드 만들었으니까 이것 이외엔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면피하려는 회피심리가 밑바탕에 있지 않은가를!

가이드로는 UCC를 막을 수 없다. UCC는 권력구조를 바꾼다. 아니 바꿨다. 서브리미널 이펙트가 방송에서는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소수의 엘리트가 내렸다면, UCC에 서브리미널 이펙트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은 다수 대중의 합의와 참여(서브리미널 UCC를 발견하는 즉시 신고 등)가 아니면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UCC 통제 판타지는 이미 붕괴됐다. 공무원은 UCC를 가이드할 수 없다. 아니 사실은 UCC가 공무원을 가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 (www.lifepen.net)에 연재되고 있는 것을 기사체로 정리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 (www.lifepen.net)에 연재되고 있는 것을 기사체로 정리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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